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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롱뇽 Jan 19. 2023

골키퍼, 날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며칠 전 인스타그램 좋아요의 신기록이 경신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우승한 메시의 게시물이었다. 2023년 1월 19일 기준 7491만 좋아요 인데 믿기지 않는 수다. 전 세계인이 환호한 메시의 우승만큼이나 우리나라의 드라마틱한 16강 진출도 뇌리에 깊게 남은 월드컵이었다.


카타르 월드컵을 결승전까지 챙겨본 사람이라면 의심의 여지없이 현대 축구에서의 골키퍼의 중요성을 알 것이다. 우리나라가 포르투갈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둔 뒤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엔 포르투갈전 직후 가나-우루과이전에서 가나 골키퍼 로렌스 아티 지기의 후반전 막판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하지만 동네축구에서 골키퍼란 축구 못하는 친구들의 전유물이다. 그건 나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생 당시의 나는 큰 키 말고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꼬맹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했는데, 전학 이전의 학교가 조금은 특이했다. 명문 축구부가 있는 학교도 아니면서 매주 월요일마다 학교 축구부의 주말 축구리그 경기 결과와 함께 하이라이트를 전교생에게 보여주었다.


당시엔 그것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고 축구부에 대한 동경심까지 갖게 되었다. 부푼 마음으로 축구를 시작해 봤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원체 운동신경이 없던 터라 멋진 슈팅은 고사하고 공을 발에 맞추지도 못했다. 전학 후에도 상황은 같았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골키퍼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축구를 너무 못했으니까.



골키퍼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골키퍼를 잘하는 원리는 딱 하나였다. 내 몸을 버리는 것. 내 몸을 버리고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던져버리면 그게 골키퍼였다. 처음엔 아파트 놀이터의 폭신한 메트 위에서 몸을 날려봤고 학교 운동장의 맨땅 흙에서 몸을 날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프진 않았냐고? 아프긴 했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공중에서 0.1초에서 길게는 1초가량 붕 떠있을 땐 희열마저 느껴졌다. 낙하 후의 고통은 낙하 후에 아파하면 될 일이었다.


실제로 골키퍼는 이정도 높이까진 뛰어야 세이브가 가능하다. 출처 ter stegen instagram

다행히 신은 나에게 골키퍼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능력을 남겨주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엔 학교 주전 골키퍼를 맡을 수 있을 실력이 되었다. 이후엔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중학생 당시엔 선수제의를 받았었고 실제로 선수생활을 깊게 고민해 본 기억도 있다.


그만큼 난 골키퍼에 진심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선수는 대부분 공격수다. 메시, 호날두, 마라도나, 손흥민, 조규성 등등.

그럼에도 등번호 1번은 골키퍼들이 도맡는다. 심지어 FIFA(국제축구연맹)는 등번호 1번을 오로지 골키퍼에게만 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존재감도 없이 팀의 맨 뒤에 서있는 골키퍼가 왜 1번을 도맡을까.


골키퍼는 특이하다. 축구의 포지션 중 유일하게 손을 쓸 수 있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의 목적은 공을 움직이는 것이지만, 골키퍼에겐 공을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유니폼도 혼자만 다르다. 골키퍼는 필드 위의 괴짜 같은 느낌이 있다.


골키퍼는 경기를 이기게 할 순 없지만, 골을 막음으로써 지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잘할 땐 누구도 몰라주지만 못하면 바로 실점으로 이어진다. 경기가 끝난 후 사람들의 기억 속엔 멋진 골 장면과 공격수의 세레머니가 있다. 그곳에 골키퍼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그렇기에 골키퍼를 하는 나에게 등번호 1번의 의미는 남다르게 와닿는다.

등번호 1번은 누구도 몰라주지만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팀의 최후방에서 팀을 패배로부터 수호하는 이에 대한 존경의 숫자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이 속한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등번호 1번을 부여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골키퍼를 하면서 배운 점은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다. 난 종종 이런 소리를 들었다. “너는 안 막아도 될 것까지 다이빙하네”, “오버액션하지 마. 그런 건 발로도 막겠다.” 하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다이빙은 조그마한 동작으론 어림도 없다. 크게, 높게, 멀리 뛰어야만 공에 닿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더 큰 부상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높은 다이빙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날아오는 공은 변수가 많다. 수비수에 맞고 굴절될 수도 있고 둥그런 머리로 하는 헤딩은 말 그대로 무작위로 날아온다.


단 1% 확률이라도 공이 골대로 날아올 수 있다면 몸을 날려 대비를 해야 하는 것. 그것이 골키퍼다. 흘러갈 공에 다이빙을 하는 나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내가 보이지 않고 남들이 나의 노력을 몰라줘도 나에게 날아오는 다음 공에 기꺼이 내 몸을 날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들이 무어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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