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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Oct 04. 2023

10월, 무언가를 정리하기 좋은 계절

정리하고 싶은 마음의 짐이 있나요?





사람이 좋고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 마음이 가장 어렵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내 마음인 듯하다.



내 마음 속에서 엄마는 늘 정리정돈되지 않은 짐 같았다. 굉장히 무겁거나 부피가 큰 것도 아닌데, 생각지도 못한 깊은 곳까지 번잡하게 흐트러져 있어 일상 곳곳에서 눈길을 마주하게 되는, 그런 사소하지만 꽤 신경쓰이는 짐 말이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에는 '엄마가 만약에 내 또래였으면 우리는 절대로 친해질 수 없었을거야. 상극이야.' 같은 말도 서슴없이 했고, 아이를 가졌을 때는 '절대로 내 아이는 엄마에게 맡기지 않겠다.'고 말도 안되는 선언을 했으며, 늘 나의 새로운 다짐 목록에는 '죽어도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거야.'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 뿐일까. 몹시도 미성숙하고 마음이 위태로웠던 시절, '내가 이대로 죽어버리면 엄마가 슬퍼할까. 그러면 조금은 후회할까.'같은 밉살스러운 생각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 속에 쌓인 엄마라는 짐은 더 정신없이 흩어질 뿐, 조금도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결혼하기 전, '엄마를 엄마로 바라보지 말고, 한 여자로써 한 번 바라보는 건 어떻겠느냐'던 아빠의 말씀 덕분이었다. 오랜 시간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아빠는 엄마가 되기 이전의 엄마의 삶에 대해 본인이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내게 설명했다. 살아오는 내내 불편했던 엄마의 모습들 중 극히 일부가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심리학을 전공하면서였다. 딸의 마음 말고, 심리학자의 마음으로 엄마라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들만큼은 풀 수 없이 꼬여 있는 것만 같았던 문제들이 조금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은 짐이 되었다.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본 엄마가, 엄마의 삶이, 엄마의 마음이 몹시 애처롭기도 했다. 



세 번째는, 내가 엄마가 되고 난 후였다. 2016년 12월, 아이를 낳았다. 엄마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새로운 역할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고 지치던 순간, 나는 왜 그토록 밉던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 내 아이만큼은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으니 절대로 엄마에게는 맡기는 일이 없을 거라던, 엄마의 숨결이 아이에게 닿는 걸 상상하는 것조차 소스라치게 싫었던 내가, 그때, 그 순간 왜 그토록 엄마가 그리웠을까. 엄마가 된 그 순간부터 나는 매일매일 엄마를 생각했다. 정리정돈되지 않던 그 짐을, 보고 싶지 않아 구석에 쳐박아두어도 이상하게 불쑥불쑥 눈에 보이는 게 못내 힘들었던 그 짐을 내 스스로 끄집어내는 날이 많아졌다. 적극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 속에 떠오르는 엄마를, 자연스레 그려지는 지난 날의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된 엄마를, 그 당시에는 미처 나에게 해 주지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내 아이에게 넘치듯 쏟아내는 엄마를 그저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엄마가 온전히 이해되는 날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채 백일도 되지 않았던 때, 아이를 하루종일 맡겨도 아무런 근심 없고, 마음이 편한 유일한 대상이 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된 이후로, 아이가 커가는 순간마다 나는 과거의 엄마를, 그 때의 나를 만나는 날이 잦아졌다.






어느덧 아이는 태권도장에 혼자 가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 표현에 따르면 '엄마와 같이 가면 우당탕탕 걸어가는데' 혼자 가면 그렇지 않아 좋다고 했다. 태권도장은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데다 집에서 보면 가는 길이 다 보일만큼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저 혼자 나서서 여유롭게 주변을 즐기고 홀가분한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는 것이 얼마나 신명날까 싶어 웃어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늘상 출발하기 전에 묻는 것이 있었다. 


'엄마, 오늘도 나 가는거 봐 줄거야?' 


아이도 안다. 거실 베란다에서 내려보면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다 보인다는 것을. 


'그래, 이제는 날씨가 많이 추워서 가는 내내 창문 열어 손은 못 흔들어 주지만, 계속 보고 있을거니까 걱정마' 


처음에는 아무리 자유가 좋다 한들 혼자 움직이는 것이 불안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래서 걱정을 덜어주려 늘 엄마가 보고 있으니 괜찮다는 말도 항상 덧붙였다. 그러다가 오늘, 내가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항상 엄마가 가는 길을 봐 주면 좋겠어?' 


아이가 눈을 도록, 굴리더니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응! 엄마가 보고 있으면 너무 좋아! 오늘도 보고 있어, 알았지?' 


순간 말문이 막혀 가만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아이는 저만치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며 손을 흔들었다. 






바닥을 짚고 일어나 베란다 창가로 향했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1층 현관을 빠져나간 아이가 총총총 인도를 따라 걷는 게 보였다. 내가 창을 열지 않으면 저 멀리서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텐데, 저만치 걷던 아이는 몸을 돌려 내 쪽으로 크게 손을 한 번 흔들고는 쿨하게 다시 태권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눈물이 흘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가 살던 집에서도 베란다 창을 통해 엄마가 나의 동선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나의 동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숨이 막혔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내 아이의 길을 눈길로 따라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관심이자 사랑인 동시에 걱정이었는데, 그 때의 어린 나는 엄마의 그 눈길이 부자연스러운 관심이자 간섭인 동시에 불필요한 불안이라고 받아들였다. 오롯이 나의 눈길을 관심과 사랑으로 받아주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때의 내가, 그 때의 엄마가 불현듯 떠올라 내내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남들과 조금 다른 형태로 사랑을 쏟아내는 엄마가 불편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왜 내 엄마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어쩌면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베베 꼬여있었던 것은 어린 날의 내가 아니었을까.



오늘,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또 한 번 엄마라는 마음의 짐이 1만큼 정리되었다. 아니, 실은 무작정 엄마를 미워하기만 했던 내 마음의 짐이 1만큼 정리되었다. 그 동안 엄마가 내 마음 속에서 자꾸만 번잡하게 흐트러지고 내 마음 속에서 정리정돈 되지 않는 짐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그 짐에 이름표를 잘못 붙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가장 어려운 것은 내 마음이었다. 엄마에게서 답을 찾으면 안 되는 문제였다. 흩어진 짐들에 이름표를 다시 붙인다. 앞으로 조금은 정리가 쉬워질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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