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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14. 2024

에세이: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사람들하고 있을 때 나는 좀 다른 사람이 된다. 강의실에서의 나는 꽤 (실로 심각하게 꽤!) 점잖다. 라디오 진행자에 가까운 나긋한 음성을 장착하고 장난스러운 말투나 농담은 생략하며 오랜 세월 묵은 각질처럼 묻어있는 사투리도 눈치껏 한 걸음 물러난다(그래서 어느 지역에서도 듣지 못하는 강의용 말투가 탄생했다.). 두터운 사회적 가면을 쓰다 못해 무지막지한 두께의 외투를 여러 겹 껴입은 셈이다. 학생들은 사적인 공간에서의 나를 결코 알 수가 없다. 친밀한 이들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을 보면, 학생들은 놀라워할까 아니면 오히려 친근하게 느낄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어 전혀 알 길 없고, 앞으로도 절대로 보여줄 마음도 없지만(공과 사는 구분하자.) 괜히 나만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간직한 것만 같은 이 기분이 좋다. 



그럼 친밀한 이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는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지 묻는다면? 물론 아니다. 아주 얇고 넓은 천으로 만든 갑옷 하나는 두르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집에서 자유로이 있다가도(설령 나체였더라도) 집 밖으로 나설 때면 완전히 헐벗고 나가지 않고 기본적으로 갖춰 입어야 할 옷들을 입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심리적 거리에 따라 실크 잠옷 차림이기도, 얇은 가디건을 껴입은 간절기 코디 정도이기도 하다. 같은 사람이더라도 어떤 날은 시원한 여름 옷차림으로, 또 다른 날은 조금 두께 있는 초겨울 옷차림으로 마주하기도 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 부는 오늘 계절 바람에 따라, 오늘 온도에 따라 조금은 다른 무게의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그러니 온전히 나체 상태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남편도, 아이도 속옷 정도는 걸치고 만난다(가끔은 더 입기도 한다.). 훌훌 모든 것을 벗어던진 나의 내밀한 모습은 오직 거울 앞에서만 존재한다. 나만 아는 나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웃음 가득한 티셔츠를 꺼내 입기도 하고, 냉소적인 트렌치코트를 둘러 입기도 하고, 약간의 백치미를 더한 속옷을 두르기도 했을 그 다채로운 순간의 나. 조금 모자란 듯, 조금 과한 듯 무언가를 입은 나는 나체의 나와는 결코 똑같을 수 없지만 다양한 두께의 옷 안에 들어가 있는 그 알맹이는 언제나 똑같은 나였다. 그러니 내가 오늘 당신을 만나러 나가며 입은 옷보다는, 그 안에 숨은 내가 당신을 만나기 위해 단장하고 집 밖으로 나섰다는 사실을 조금만 더 반겨 주기를. 나의 사소하고 귀여운 비밀을 아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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