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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Apr 17. 2024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면 외롭지 않아요.

4월 16일. 오늘은

2024년 4월 16일의 이야기입니다. 


매일 아침 우리 교실에서는 기분으로 출석체크를 합니다. 

학교를 등교하자마자 교실 앞 칠판에 그날의 기분단어를 자신의 이름칸에 붙입니다. 아이들이 붙인 기분자석을 보고 1교시가 시작되면 그날의 기분이 왜 그러한지를 묻습니다. 


"어제 학원 숙제를 다 해놓고 자셔 뿌듯해요."

"오늘 학원이 많아서 우울해요."

"비가 와서 체육을 못할 까봐 걱정했어요."

"아침 등굣길에 친구와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했어요."

"동생과 싸웠는데 저만 혼나서 억울했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런 대답을 합니다. 주로 학원에 관해서 힘듦을 토로하거나, 주말을 기다리거나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간혹 가다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함께 그 기분을 나누게 되지요. 


"슬펐어요. 왜냐하면 오늘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니까요." 


딱, 한 아이가 이야기했습니다. 안 그래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지요. 


"그랬구나. 맞아. 벌써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흘렀어요." 


지금도 기억합니다. 치과 진료를 기다리면서 보게 된 뉴스 속보를 보며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요. 

차디찬 바다밑에 곱디고운 아이들이, 잘못도 하지 않은 아이들이 잠겨버렸다니. 


"단원고 기억교실에 가면 단원고 아이들이 사용했던 교실 그대로를 재현해 놓았다고 해요. 

칠판에 낙서 그대로, 사물함, 책상, 가방이 걸린 그대로, 

그들이 살아있었던 그때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구나.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어야겠지. 그리고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그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잘 살아갔으면 합니다. " 


작은 이 한마디가 어떤 씨앗으로 심길까 싶습니다. 


우연하게 사회시간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배우고, 6월 민주항쟁으로 6.29 민주화 선언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배웠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교과서로 배울 때는 지식으로서 이해합니다. 과거의 사건을 스토리로 기억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생동감 있는 영화로 역사를 배울 때 아이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 1984를 잠시 보여주었습니다. 


"선생님, 저게 진짜예요? 진짜 군인들이 저렇게 한 거예요? "

"선생님, 이한열 열사 사진이 진짜인 거죠?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과정을 보며 답답해했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는 장면에서는 숙연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모두 이런 국민들이 있어서예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누리는 자유와 평등. 법으로 보장된 인권이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다 보니 아침부터 마지막 수업을 끝날 때까지, 

죽음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제법 나이 있는 어른이지만 나 역시 그 무거움과 진실됨을 전달하기에

너무나 가벼운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음에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마음에 담긴 것을 표현해 내고 전달하는 능력이 여전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오늘 알림장 댓글에는 감사한 일 3가지를 적어보세요."라는 미션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살아있음을 감사하였고, 평안하게 걱정 없이 살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불평과 불만보다는 행복함을 느끼고,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아는 우리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내년에, 또 후년에,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아이들에게 

진실과 감사를 더 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끝까지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길이 외롭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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