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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Jun 27. 2024

모든 존재는 경이로 향한다.

내가 꿈꾸는 여행

경외란 우러러보면서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드는 심리적 순간.      


대커 켈트너는 [경외심]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눈과 입이 벌어지고, 무의식적으로 탄성을 내뱉는 반사적인 반응, 나아가 눈물이 맺히며 감탄할 때 우리는 경외의 마음으로 진입한다고 말했다.


 동그라미가 선명한 크고 밝은 노란 달을 본 적이 있다. 스무 살 필리핀의 어느 한 외곽도시에서 칠흑 같은 밤을 밝히는 보름달을 보고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물건을 보느냐 깜짝 놀랐었다. 그 달이 얼마나 크고 노란지. 내가 있는 곳과 닿을 듯 떠 있는 달을 보며 달토끼와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그 빛이 얼마나 훤하게 세상을 비추는지 달빛에 비추어 글을 읽었다고 하는 선조들의 말이 믿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그러한 달을 본 적이 없다.


 제주도의 동쪽 해변을 따라 숙소로 돌아가는 중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혀보고자 계획도 없이 들른 어느 높은 정자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다 일렁이는 물결 속에서 남방 돌고래 떼를 보았다. 제주도를 돌고 도는 작은 돌고래에게 바다는 넓은 무대였고 즐거운 놀이터였고 신나는 운동장이었다. 보랏빛 방울을 튀기며 멀어져 가는 돌고래들에게 나지막이 잘 가라고 외쳤었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보며 고요해지는 순간도 있다. 슬렁슬렁 바람은 불어오고 호수에 잔물결이 더해지면 주홍빛 띠를 두른 하늘을 쳐다보는 그 순간 나는 사라지고 오로지 빛과 따스함만 남는다. 경이의 순간이다.     

 내가 꿈꾸는 여행은 남기고 싶은 장면과 느끼고 싶은 감동이 있는 여행이다. 경외를 느낄 수 있는 여러 순간이 있겠지만 나는 자연의 품 안에서 그를 바라볼 때 경외심을 느낀다.      

  

 가장 먼저 가고 싶으면서도 선뜻 가기 두려운 곳은 역시 사막이다. 보아도 보아도 끝이 없는 모래언덕인 곳에 침낭 하나 펴고 모닥불가에 앉아 깊이를 알 수 없는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몇 개 인지 셀 수도 없는 별을 보며 잠드는 일.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남미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도 좋겠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땅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곳에서 탄지로가 깨끗한 자아를 만나듯 나의 심연을 마주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될 듯하다. 그곳에서 느낄 경이는 또 다른 경외심을 불러오지 않을까?      


 또 사막이 아니라면 오히려 물이 많은 곳이면 좋겠다. 언젠가 본 세계 테마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노르웨이의 피오르가 나왔다. 피오르의 옆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사우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사우나집에서 땀을 뺀 뒤 바로 피오르로 뛰어들 수 있었다. 차고 깊은 빙하의 물을 내 피부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이 함께 경이감을 체험할 수 있다면 기꺼이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으리라.      

 

 매년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떠나지만 경외심이라는 감동을 목표로 여행을 계획해 본 적은 없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재미있는 놀거리가 있는 곳이 주요 목적지였고 그러한 여행은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움이라는 추억을 남겼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꿈꾸는 여행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신비와 미지를 향한 열린 마음으로 어머니 자연의 품에 안겨, 설명할 수도 없고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잃게 되는 그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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