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urStellar May 30. 2024

어쩌다, 요리

- 요리의 즐거움을 찾다

‘요섹남’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요섹남은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섹시하다는 말은 성적 매력이 아닌 멋지다는 의미라고 한다. TV나 SNS에서 요리하는 남자 연예인이나 세프들은 대중들로부터 부러움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보통 남자도 필살기 요리 몇 가지 정도는 할 주 알아야 요즘 남자 축에 낄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해야 할 것도 많고 갖추어야 할 것도 많은 요즘 젊은이는 힘들겠다 생각하면서, 나이 든 것에 처음으로 안도했었다.


신조어는 그 세태를 잘 반영한다. 요섹남에서 요리는 더 이상 가정에서 어머니나 아내가 하는 여성의 영역이 아니라, 남성도 해야 하는 일이며, 그런 남성이 멋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주방에서 남성의 역할은 설거지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보조적인 역할이었다. 요리를 한다면 가끔 주말에 이벤트성으로 한 두 번 기분 내는 정도였다.


요섹남에 숨은 뜻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생각한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요리하는 남자를 멋있다고 칭송하는 여성의 관점이다. 주방에서 보조 역할만 주로 하던 남성에게 요리를 하는 본격적인 주연 역할도 해달라는 주문이다. 주방에서 남녀의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요리는 그래도 여성이’라는 인식이 있다. 요리하는 멋진 남자는 요리를 둘러싸고 있는 마지막 편견의 장막을 걷어 냈다. 남성도 엄마나 아내가 하는 요리에 못지않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두 번째는 요섹남이 되고 싶거나,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남성의 관점이다. 지금까지 어머니나 아내가 해주는 음식만 받아먹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이제는 직접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내가 해 먹겠다는 능동적인 자세이다. 남녀별 역할 분담은 거의 사라졌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팍팍한 현실에 이제 누군가가 차려주는 음식만 먹는 시절은 지나갔다. 요리를 하는 것은 이제 취미나 사치가 아닌 생활을 하기 위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되었다. 혼자서 먹더라도 제대로 먹으려면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저 배고픔을 잊기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 이왕이면 맛있게, 멋지게, 폼나게 제대로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더 소중해졌다.


나처럼 요즘 사람이 아닌 사람은 여전히 요섹남이 낯설다. 낯설기보다는 어렵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주방에서 남녀 역할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거지나 다른 것들은 잘할 수 있는데 요리는 어렵다. 바깥에서 사 먹는 음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집에서 차려주는 음식은 그저 아무 소리 안 하고 잘 먹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라 생각했다. 아내나 나나 같이  일하는 처지라,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주제를 넘어서는 일이다. 아내 또한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항상 열심히 식탁을 차렸다. 여유 있는 주말이라고 해서 나에게 요리를 해달라는 요구도 거의 없었다. 아내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나름 서로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 요리를 해 보겠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요리는 나와는 조금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리에 무관심한 것은 식탐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요리의 본질은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지만, 요즘은 요리 맛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요리를 잘하려면 맛을 잘 알아야 한다. 맛에 민감하고,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맛에 대해 그다지 민감하지 못하다. 평범한 미각에 평범한 음식을 즐길 뿐, 맛에 대한 욕구도 없고, 음식에 대한 갈망도 크지 않다. 차려 주는 밥상에 충분히 만족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직접 만들어 먹어 볼까라는 생각을 거의 해 보지 않았다. 그런 나의 습성에 아내 또한 식사 준비를 해 달라는 요구도 거의 없다 보니, 요리에 더 무관심하게 된지도 모른다.


나 역시 맛있는 음식이 좋다. 풍성하게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면 군침이 돈다. 하지만 너무 정성을 쏟은 음식을 먹을 때는 미안스러워 부담스럽다. 사람의 공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보면 한편 대단하기도 하고, 한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소고기는 그냥 구워도 맛있는데, 갖가지 재료를 넣고 오랫동안 숙성한 양념으로 재웠던 불고기를 먹을 때는 맛이 맛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유명 세프가 TV에 나와 온 열정으로 음식 만드는 것을 보면 보는 내가 더 힘들다. 옛말에 ‘애 볼래? 밭 맬래?’하면 밭 맨다고 한다는데, 나에게 ‘애 볼래? 팥빵 100개 빚을래?’ 묻는다면 나는 애 보는 쪽을 택할 것이다.


내가 요리에 대해 처음부터 무관심하거나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나도 요리에 열심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서울에 직장이 있어 주말 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려 주말마다 집에 오려고 애를 썼다. 짧은 주말 이틀 동안 무슨 생각이었는지 시간을 쪼개어 제빵 학원을 다녔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유해한 첨가물이 적은 과자나 빵을 먹이려고 하다 보니 직접 만들자는 발직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주말 아침 일찍 학원에 가서 빵 굽는 법을 배웠다. 집에서 설탕과 트랜스 지방이 적은 빵과 쿠키를 만들었다. 맛이 좀 떨어졌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만든 거라고 맛있게 먹었고 아내도 흐뭇해했다. 주말에는 가스 오븐이 쉴 새가 없었다. 빵과 쿠키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 라자냐 등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열정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직장을 집 가까운 곳으로 옮기면서 주말 부부가 끝나면서부터였다. 집에서 회사를 다니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주말 부부 시절에는 집은 온전한 휴식의 공간이었고, 집을 떠나면 온전한 일터였다. 그런데 집에서 회사를 다니니 일과 휴식이 완전히 분리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서 요리와 같은 일은 자연히 멀어졌다. 늦게 들어오면 아내가 밥상을 차리고, 주말이 되어도 예전처럼 빵을 굽는다던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주말부부 시절 보다 시간은 더 많아졌지만, 나는 게을러졌다. 그새 아이들도 많이 자라 아빠가 구워주는 빵을 예전처럼 기대하지도 않았고, 아내가 차려주는 식사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요리와 점차 멀어졌다. 주말마다 뜨거웠던 가스 오븐은 어느새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한번 멀어진 사이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퇴직 후 시간이 많아도 여전히 요리와 나는 소원한 관계를 유지했다. 아내를 출근시키고 운동을 한 후 지인을 만나 점심을 하거나, 아니면 혼자라도 맛있는 메뉴를 골라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그렇게 하루하루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학교를 졸업한 큰 아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큰 아이는 집에서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집 가까운 독서실에 장기간 등록하고, 점심, 저녁을 집에서 먹고 왔다 갔다 했다. 아내는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점심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큰 아이 점심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아이는 엄마가 미리 준비해 둔 점심을 먹거나 혼자 점심을 마련해서 먹고 다시 독서실로 갔다. 나는 여전히 아침 운동과 밖에서 점심을 먹는 일상을 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매번 집에서 먹는 것도 지루할 때쯤 가끔 밖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비싼 외식 물가도 부담도 되고, 먹을 것도 마땅치 않아 집에서 아내가 준비해 둔 점심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내는 저녁에 그다음 날 두 사람의 점심을 미리 만들어야 하는 일이 더 생겼다.



처음에는 아내가 미리 만들어 둔 카레를 데워서 같이 먹었다. 일하는 아내에게 삼식이가 될 수 없어 내가 점심을 해보자 마음먹었다. 첫날은 큰 아이랑 같이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은 일주일에 한 번이 가족룰이다. 내일 점심은 뭘 먹지? 뭘 준비해야 할까? 점심 먹는 것이 고민이 되었다. 그나마 쉬운 스파게티부터 해보자. 면을 삶고 냉장고에 있는 토마토소스만 비비면 되니 그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지. 냄비에 물이 끓으면 스파게티 봉지에 씐 대로 면을 삶고 소스에 비벼 접시에 담아 점심을 준비했다. 잘 만들어진 소스 덕으로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아끼고, 맛도 모지라지 않은 일석삼조의 만족스러운 점심식사였다.


매일 스파게티만 먹을 수 없다. 어제와 다른 점심 메뉴가 필요했다.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내 안에 감춰져 있었던 것 같은 요리의 본성이 서서히 나타났다. 멸치로 국물을 만들고, 대파를 쫑쫑쫑 칼질하고, 우동 면을 삶고, 마트에 파는 튀김 새우와 쑥갓을 올린 우동을 내놓았다. 그냥 대충 인스턴트 우동을 기대했던 큰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아빠 제대로인데? 여느 일식집 새우튀김 우동 못지않아요.” 맛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주얼은 내가 봐도 그럴듯했다.


한번 달아 오른 요리의 열기는 청룡열차 달리 듯 가속이 붙었다. 내일 점심을 생각하고, 어떤 요리를 해보자 결정하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요리를 했지만, 몇 번 하다 보니 한번 보면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다. 순서를 정하고 동시에 여러 동작을 할 수 있어 요리 시간도 줄었다. 칼질 솜씨도 조금씩 좋아졌고, 양념과 간에 대해서도 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간단한 면요리만 하다가 점차 영역을 넓혔다. 김치볶음밥, 채소 볶음밥, 소고기 볶음밥으로 진화를 했다. 면, 볶음밥으로 돌려 치기에는 일주일은 길었다. 새로운 점심 메뉴를 개발해야 했다. 서울 직장 시절 점심으로 자주 먹었던 된장찌개가 생각났다. 그냥 된장찌개가 아닌 차돌박이가 풍성하게 들어간 된장찌개의 맛이 기억에 떠올랐다. 내일 점심은 된장찌개를 하겠다고 했을 때 큰 아이는 시큰둥했다. 그래도 아빠가 해주는 것이니 맛있게 먹을게요라는 말을 하면서.



생각대로 레시피는 어렵지 않았다. 호박, 양파 등 채소를 깍둑 썰어 준비해 놓고, 차돌박이를 중불에 뒤적거리다 같이 볶은 후 육수 넣고 된장을 풀면 끝. 이렇게 간단한 요리가 구수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보글보글 된장이 끓으니 맛있는 냄새가 집안 가득하다. 점심 먹으러 온 아이가 와 맛있는 냄새다라고 하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부엌으로 들어왔다. 밥솥에서 뜨거운 밥을 밥그릇에 퍼고, 김이 모락모락 하는 된장국을 국자로 담아 식탁에 올렸다. 된장국 하나로 점심으로 충분하지만 섭섭하게 보여 몇 가지 찬도 같이 내놓았다. 점심으로 늘 면이나 볶음밥을 먹었는데 밥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맛이 좋아 큰 아이도 놀랐다.


두 사람이 먹고도 된장국이 많이 남았다. 요리 양조절까지 맞추기에는 갈 길이 멀다. 다행히 남은 된장국을 저녁에 아내가 맛을 볼 수 있었고, 주말에 집에 온 막내도 맛볼 수 있었다.


코로나 시절에 ‘돌밥’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밖에도 못 나가고 집에 틀어 박혀 돌아서면 밥 때라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 아내의 고충을 이르는 말이다. 코로나 때가 아니라도 일상의 끼니를 준비하는 이의 노고를 말로 한들 무엇하겠는가? 직업으로서의 요리사 역시 마찬가지다. 부엌에서 음식을 위해 몸을 쓰는 행위는 경이로운 일이다. 요리가 주는 즐거움과 가치가 없다면 힘든 노고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매일 점심 요리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처음 힘들 줄만 알았던 요리가 지금은 즐거워졌다. 내가 만드는 음식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먹고 즐겁다면 칼질로 팔이 아프더라도, 만두 빚는 손가락이 아프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싱싱한 재료가 요리가 되어 그릇에 담기는 마술 같은 과정도 즐겁고, 무엇보다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 기쁘다.


큰 딸 덕분에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이제 요섹남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요보남(요리를 하는 보통의 남자)’ 정도는 된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