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의 처절한 외침
영화 <다음 소희>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니는 '소희'(김시은)가 콜센터 현장 실습생으로 근무하며 부당한 대우를 받고 감정 노동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크게 2막으로 구분되어 전반부에는 실습생으로 근무하던 소희를, 후반부에는 소희의 죽음 이후 그 흔적을 찾아가는 형사 '유진'(배두나)을 다루고 있다. 두 가지 시점을 모두 활용한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제삼자의 위치에서 소희와 유진을 바라보며 어린 소녀가 저수지 깊은 곳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 보다 더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게 한다. '다음 소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고 제목을 짓게 되었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떠올리면, 영화의 이러한 구조는 영화가 '소희'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인 듯하다.
영화는 2017년 실제로 발생했던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것을 본 정주리 감독이 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로 만들기 위해 정주리 감독이 실제로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의 책을 참고하고, <그것이 알고 싶다> PD와 함께 사건을 조사했다는 제작 비하인드는 영화 속 형사 유진의 모습과 비슷하다. 즉, 영화에서 유진이 다른 시간이지만 소희와 같은 공간을 살아보고 소희 대신에 무책임한 어른들과 사회 시스템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모습은 이 사회에서 희생되고 있는 어린 청춘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정주리 감독의 제작 의도가 투영된 것이다.
영화는 연습실에서 홀로 춤을 연습하는 소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제 현장 실습생으로 근무해야 해서 더 이상 연습실에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안무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자꾸 같은 부분에서 넘어진다. 현장 실습생으로 지내는 소희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 넘어짐이 계속되어도 소희는 이에 좌절하지 않는다. 소희는 춤 연습을 끝낸 뒤 친구와 먹는 맛있는 곱창과 화장품 구경 등 사소한 것에도 웃음이 멈추지 않고, 불의엔 참지 않는 밝고 당찬 아이다. 좋아하는 춤을 이제 추지 못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처음 출근한 콜센터 현장은 정신이 없고 첫 콜부터 무례한 고객을 응대해야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배우겠다며 열정적인 태도로 임한다.
하지만 사회는 안타깝게도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일하는 현장 실습생을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다. 회사는 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하도록 하여 근로기준법을 교묘하게 피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고, '실습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센티브를 제때 제공하지 않는다. 보상은 빼앗고 책임만을 떠안기는 시스템은 당연한 권리를 용기 있게 요구하는 소녀에게 이 모든 것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한다. 그렇게 밝았던 소희의 얼굴엔 점점 더 어두운 그늘이 생기고 그 어떤 어른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상태를 보여주는 듯한 시린 맨발 위에 드리운 한줄기 빛을 따라가 저수지에 몸을 내던지는 것을 택하게 된다. 소희가 다시 밝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사실 소희도 '다음' 타자였다. 소희 이전에 부당한 업무 환경과 감정 노동에 관해 내부 고발을 하고 자살을 했던 팀장 '이준호'(심희섭)가 있었다. (이 역시도 실제 사건에서 존재했던 인물이다.) 준호 이전에도 몸을 갈아 넣었던 수많은 희생양이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개인을 값싸게 고용하여 노동의 무한 굴레에 가둔 뒤 필요가 없어지면 그대로 버리는 사회에서 개인의 절규는 무력하다. 무엇이 무수한 청춘을 그렇게 쓰이고 버려지는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로 만들었을까. 그 시작이 어디였을까.
소희의 죽음 이후 유진은 소희의 발걸음을 다시 밟아보며 그 시작을 찾아본다. '대기업 취업'이라는 결과에만 치중하여 하청의 하청이란 실상을 애써 외면했던 학교,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는 콜센터 현장, 소희가 무슨 일 하는지, 하다못해 소희의 취미마저 전혀 알지 못했던 집안, 소희가 애정의 땀을 흘리던 연습실.. 그 누구도 '나는 잘못한 게 없다'며 도망치는 어른들 사이에서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소희와 같은 무고한 어린 사람들을 만나고 유진은 소희가 뚫고 나아가지 못한 사회의 장벽을 하나씩 허무는 시도를 한다. 어린 학생이 어떤 취급을 받든 지 간에 일단 어디든 취업을 시켜서 실적을 내어야 하는 학교, 그러한 학교에 취업률에 따라 지원금을 주는 교육청 장학사,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게 만든 교육부. 과정이 어떠하든 일단 실적을 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는 작은 희생을 눈감게 만들었고 개인을 등 돌렸으며 이 모든 부당한 사회 구조의 연쇄를 견고히 만들었다.
그렇기에 소희를 뒤늦게나마 따라가며 소희의 목소리를 대신 내고자 했던 유진, 그 한 어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런 걸 네가 왜 신경 쓰냐'라는 상사의 말에 나니까, 경찰이니까, 어른이니까 신경 써야 한다고 했던 유진은 홀로 외롭게, 그리고 처절하게 '다음 소희'는 없어야 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 소희인 것처럼 보이는 태준에게 '힘들면 말해도 된다'고, '나에겐 그래도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유진이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지나간 청춘을 애도하고 앞으로의 소희들의 희생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유진'과 같다. 어차피 이렇게 된 사회 속에서 악습을 받아들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어른들 사이에서 이 영화는 책임을 지려하고 악습의 꼬리를 자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유진의 상사처럼 '그런 걸 네가 말해서 뭐 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영화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계속 망치로 부수는 시도를 하면 벽은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있다. <다음 소희>를 보는 우리는 장벽을 부수는데 실패한 소희 한 명, 유진 한 명이 아닌 그 장벽 자체에 시선을 돌려 돌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어른으로서 그동안의 소희들을 기리고, 다음 소희를 막는 방법이다. 영화의 마지막, 유진의 따뜻하고도 슬픈 눈길이 닿은 소희의 춤 영상에서, 소희가 넘어지고 넘어지던 그 부분을 끝내 깔끔하게 성공해 낸 것처럼, 이러한 영화의, 어른의 시도가 마침내 비로소 제 역할을 해낼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진심을 다해 영화 <다음 소희>를 보고 어른으로서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