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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 Aug 24. 2023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사실 오래 전, 나는 일부러 이 책을 읽는 것을 피한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쓴 유명한 작품이라 나 빼고 모든 사람이 읽었을 것 같은 위기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사실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세상 돌아가는 일을 꿰뚫은 작가가 ‘가르침을 받으러 오라.’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머지않아 내 호기심에 굴복하듯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가 막히게 옳은 선택이었다. 많은 고민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던 10대의 나. 그 때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왠지 모르게 끌렸던 먼지 가득했던 책. 그 순간의 선택 덕분에 한 뼘 성숙해진 지금의 내가 있고, 이렇게 이 책을 가지고 한 편의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아직도 읽지 않은 이를 위해,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소개해 보려 한다.

첫째, 이 책은 독자에게 자유를 준다.
스페인에 무어인을 데려왔다는 자유를 상징하는 바람 ‘레반터’. 이 책은 독자를 ‘레반터’에 태워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보낸다. 도서관, 방구석, 일터 그 어디에서 이 책을 읽더라도, 독자는 세계를 여행하듯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기묘한 소설은 그만큼이나 흡인력이 뛰어나다. 한 번 책을 펼치면 소설 특유의 매력적인 분위기에 빠져, 다음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머지않아 다시 책장을 넘기게 될 것이다.


‘책이 선물하는 자유’. 이것은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고등학생 시절을 상기시킨다. 나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 내신 공부와 입시 준비에 치여 오랜 시간 책을 멀리했었다. 반복되는 일과에 지쳐갈 때쯤 아주 소심한 일탈을 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수능 공부와 무관한 책 읽기’였다. 갇혀있는 일상에 익숙했던 나는 그 작은 책 한 권이 선물해 준 여행과 같은 경험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여행은 공항에 가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가에 꽂혀있는 책 한 권 한 권마다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당장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간절한 일탈을 꿈꾸는 누구에게라도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은 이유다.

둘째, 독자의 꿈을 상기시킨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어떤 망설임도 변명도 없이 자신의 꿈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남았을까? 당장 해야 할 일, 먹고 사는 문제에 치여 꿈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조금은 허황되고 철없는 단어로 자리잡아가는 듯하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언제고 되묻는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중인가? 당신은 꿈을 잊었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은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피라미드를 보는 것이 꿈인 산티아고, 메카로 순례를 가는 꿈을 품고 평생을 살아온 크리스털 가게 주인, 그리고 끝내는 꿈을 가슴에 묻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택한 팝콘 장수까지. 작가는 동화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빌어, 타인의 평가와는 무관한 ‘나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독자에게 일깨우려고 노력한다. 온 마음을 다해 소망하고 노력하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거듭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모든 이가 그만의 자아의 신화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꽃피울 기회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나라는 사람의 자아가 광활한 우주 가운데에서도 목적과 색채를 가지고 빛을 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찾아내고 노력하고 소망하는 과정으로 내 자아의 신화가 꽃을 피울 것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일깨워 준다.

셋째, 거듭 읽을수록 감상이 풍부해진다.
이 책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한 번 읽어서는 안 된다. 어느 문학작품이 안 그렇겠느냐만, 이 신비로운 이야기에는 허투루 등장하는 인물 한 명이 없다. 산티아고와 만나는 모든 인물과 사건은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며 독자에게 그 존재감을 확고히 각인시키는 인물이 있는가하면, 책장을 덮은 뒤에 이름조차 가물가물 할 만큼 짧게 지나가버리는 인물도 있다. 그 인물들이 지니는 수많은 비유와 상징을 알아차리고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듭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처음으로 이 책을 읽은 뒤에 내 감상은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부자가 되는 이야기’였다. 몇 년이 지나고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었을 때에는 그보다 조금 발전하여,  ‘산티아고가 꿈을 찾아 모든 걸 포기하고 사막으로 가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책을 읽고는 마침내 ‘자아의 신화를 이루려는 한 인간의 이야기’ 라고 정리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조금 더 성숙하고 심오한 감상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거듭 읽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감상을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이 책의 아쉬운 점을 비판해 보겠다.


첫째, 미신적이며 종교적이다. 종교의 색채가 짙은 글이 주는 특유의 신비롭고도 평화로운 분위기는 읽는 이의 성향에 따라 장점일수도, 단점일수도 있다. 물론 가톨릭이나 이슬람교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책을 읽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오히려 책의 중간중간, 적절한 비유와 재치 있는 설명으로 무교인 독자들도 줄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장치들이 잘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분위기와 문체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는 선뜻 추천해주기는 어렵다.

둘째, 산티아고는 후반부에 느닷없이 사랑에 빠지며, 사랑으로 이 소설은 마무리된다. 사실 나는 사랑 타령을 참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듯 사랑 이야기로 급하게 끝맺음해버리는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를 봐 왔다. 공을 들여 인물을 묘사하고 사건과 갈등을 꾸민 뒤 마법 같은 사랑으로 갈등을 해소해버리고는 행복한 결말로서 사랑의 힘을 정당화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괜스레 찜찜해진다. 지금까지 읽은 멋진 서사가 사랑과 같은 추상적이고 상투적인 결말을 위한 도구였다니, 속이 상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시대, 국가, 그리고 개개인의 정서에 따라 사랑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형태는 다를 것이다. 첫 눈에 반해 마법같은 사랑에 빠지고, 두 번째 만남에 청혼을 하는 이야기가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낭만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자아의 신화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사랑’이 가졌다는 데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이 책에 여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니, 산티아고가 파티마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후반부의 분위기가 급작스레 전환됐다는 점이 아쉬웠다고 언급하지 않았나? 파티마가 여성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파티마는 이 이야기에서 여성이 아닌 도구다. 산티아고의 자아의 신화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중심인물 중 하나인 파티마 이외에도, 이 책에 등장하는 몇 명 되지 않는 여성들은 점잖은 방법으로 대상화되고 조롱당하며 남자들의 이야기에 간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나는 여성을 ‘아내’, ‘딸’, ‘운명적 만남의 대상’ 이전에 ‘인간’으로 본다. 이 책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그의 자아의 신화를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어디에도 자아의 신화를 이룩하는 여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은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멋진 배필이거나, 집시 등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 글쎄, 산티아고의 꿈을 풀이해준 노파 정도를 조력자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노파를 줄곧 의심하다가 '남자'인 살렘의 왕을 만나 보물의 존재를 납득하고 나서야 피라미드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주인공 산티아고, 살렘의 왕, 영국인, 연금술사, 심지어 산티아고가 양치기로서의 삶을 택하도록 허락해 준 아버지까지 이야기의 핵심 인물은 모두 남자다. 이 또한 성인이 되기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이 책의 이면이다. 희망과 꿈과 용기를 주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묘한 괴리를 느껴온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책을 많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얻은 영감을 전달해주고자, 같은 감동을 느끼고자 이 책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자아’를 잊게 하는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누구도 자신의 삶을 신화라고 말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인지할 틈조차 없이, 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자 아등바등 노력하는 자들에게 이 책은 ‘너의 삶 또한 신화’라고 얘기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운 밤을 보내는 수많은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 주려 노력한다. 


나는 매번 집에서, 학교에서, 세상에서 영영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에 괴로울 때마다 책장에 숨은 이 책, 나의 보물을 찾는다. 그리고 내 삶의 방향을 잊거나 잃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얘기해주는 것이다.

너의 삶은 너의 꿈을 위한 신화다! 내가 꿈을 위한 노력이 내 꿈을 잊게 만들도록 허락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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