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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sterday Jan 24. 2023

고 1,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연말.

단순하고 충동적인 첫 시작.

나는 2023년, 올해로 18세가 되는 평범한 여고생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작년 말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우리 가족의 인생은 정말 당황스럽고도 느리게, 또 경황없이 흔들리고 있다.


저 문장 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뒤바뀐 인생을 다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아버지는 살아계신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고 의문을 가진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우리 아버지는 식물인간 상태다. 병상에 누워, 정말 기본적인 반사신경만 지니고 있는. 눈을 깜빡이지만 초점이 없고, 자가 호흡이 가능하지만 산소를 넣어주어야 한다. 나는 17살의 끝자락에, 그러면서도 18살의 처음에 서있는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의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사고가 나기 이틀 전 밤 나는 아버지에게 놀러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건 서울에서 개최되는 모 영화의 시사회였다. 영화와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는 그 허락에 엄청 신이 나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고가 난 당일 저녁, 나는 휴대폰을 하던 중에 집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소음이 쉽게 들어올 만한 주택가이기 때문에 그게 우리 집의 큰일이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집에 함께 있던 두 살 터울의 오빠에게 방금 그게 무엇이었냐고 물었고 오빠는 시원한 대답을 내놓진 못했다. 그런 대답을 내놓을 때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빠가 그것에 대해 그런 대답을 내놓은 것은 별 거 아니기에 한 말이겠거니 하고.

 그렇게 또다시 휴대폰을 하던 때에 오빠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평소 서로의 방에 들르는 건 웬만한 사유, 또는 가벼운 장난 정도가 아니라면 하지 않는 나이가 된 터라 의아함을 가진 것도 잠시, 오빠가 말문을 텄다.


"아빠가 사고 났대."


정말 솔직하게 터놓자면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이번만은 아니었다. 그때는 정말, 진심으로, 천운이었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어느 정도 치료하면 낫지 않겠나 하는 마음, 또 당황한 마음으로 오빠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집 밖의 소음이 경찰이었다는 것이다. 자기도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나한테는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나는 오빠에게 아버지가 응급실에 있고, 의식을 잃었고, 생각보다 중대한 일인 것 같으니 예정되어 있던 시사회는 어머니가 가지 못하게 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든 생각은 ‘내가 불효자인지는 몰라도, 시사회는 정말 가고 싶은데···.’였다. 그래서 울었다. 웃기지 않은가? 딸이 아버지가 의식을 잃은 채 응급실에 있다는데 시사회는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정말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나? 여기까지 읽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당혹스럽다면, 그냥 그렇게 느껴라. 나는 내가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며 이 나이에 철도 들지 못했다. 하나 말해주자면 지금의 나는 그 시사회를 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갔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는 OTT 서비스에 나왔는데도 보지 못한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영화였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복잡한가 보다.


어쨌거나 다음 날 아침, 나는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응급실에 계시던 아버지는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겨 갔고, 거실에 나온 나는 내가 즐겨 보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옷과 소지품이 봉지와 지퍼백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사고가 난 주인공의 옷가지를 봉지에 보관해 놓았다는 이유로 톰 행크스 주연의 <인페르노> 초반부 병실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그 봉지 옆에 앉아 안에 보이는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에 있는 환한 웃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신이 멍했다.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나는 옛날부터 무언가 피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강하게 현실 도피를 원하고는 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하고 현실 도피를 간절히 원한다. 며칠 전만 해도 멀쩡하던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대답도, 질문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해 보면 왜인지 알게 되리라.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일어난 비극은 학생들에게 치명적이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장담할 수 있으니까. 기말고사가 다 끝났고, 기념일도 다가오니 신난 아이들은 교실에서 행복한 연말의 계획을 떠벌리고 다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번에도 집에서 보낼 거라며 킥킥댔을 테지만 지금 같은 처지의 연말을 웃으며 설명하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음을 티 내고 침묵을 택했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이 얘기를 차마 꺼낼 수가 없던 탓이다. 딱 한 명에게 꺼내긴 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얘기하긴 힘들다. 누가 진정한 친구고 누가 가식적인 친구인지, 이걸 들었을 때 감당할 만한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당연하지 않은가.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각자 다른 인생, 서로를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내가 아는 모두에게 개인사를 터놓는 건 또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


그럼에도 내가 여기에 이런 이야기를 적는 까닭은 세상에 이런 일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하는 가벼운 깨달음이라도 주기 위해서다. 나는 책과 영화, 글쓰기를 좋아하고··· 내 일상을 이렇게라도 알려서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다. 이제 18살 되는 애가 무슨 외로움이냐고 생각할 수 있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무거운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 취미 생활, 학업···. 난 그것들을 최대한 걱정 없이 터놓을 공간으로 브런치를 택했다. 이 정도는 고등학생의 가벼운 일탈로 괜찮지 않을까? 나는 이야기를 터놓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본다. 대화로 따지면 내가 화자, 독자들은 청자인 것이지.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러한 얘기를 관심 있게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속해서 써나가겠다. 언젠가 나와 여러분이 이 글을 다시 보았을 때 가볍게 추억할 수 있게 흘러갈 때까지.


  그러니 첫인사다. 안녕,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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