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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Sep 27. 2023

밴쿠버를 도대체 왜 오는 걸까 했는데

현재에 충실한다는 것


"밴쿠버를 도대체 왜 오는 거야? 뭐 볼 게 있다고? 아니, 여기 있는 거라곤 1년 365일 우중충한 날씨랑 산 밖에 없잖아. 대체 이런 데를 왜 관광을 오는 거냐고."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두고 친구들과 막바지 벼락치기를 하다 투정 부리듯 불평을 내뱉었다.

학업을 위해 밴쿠버의 대학교로 진학을 하긴 했지만, 밴쿠버에 관광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 되지 않았다.


밴쿠버 'Raincouve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 정도로 한여름의 며칠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졌고, 특히 우리 학교는 Burnaby Mountain이라는 산 위에 위치해 있어 춥기도 엄청 추웠다. 눈이 한 번 오면 허벅지까지 내리기도 했고, 비 눈이 너무 많이 와 학교로 가는 버스가 끊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밴쿠버에서 그나마 볼만하다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종합병원에서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했는데도 내 눈에 밴쿠버는 그저 사람 사는 곳이지, 별한 매력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2013년 8월. 대학생으로의 마지막 시험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섰다. 생각 없이 지나던 학교의 연못은 햇빛에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고, 공강시간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곤 했던 디밭에서는 싱그러운 냄새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동안 오던 비가 그치고, 그날따라 날씨 너무나 화창했다.


늘 거닐고 뒹굴던 우리 학교 연못과 잔디밭


늘 지나던 풍경이 다르게 보이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졸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우리 학교 캠퍼스가 얼마나 예쁜지, 밴쿠버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항상 마주하는 풍경 한 번 제대로  여유조차 없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 5년을 보냈다는 것을.


언제 졸업하나, 졸업을 할 수는 있을까 막막해하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만 하며 내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은 느낌에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아름다운 경관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건, 지금 당장도 아니고 30분이나 뒤에야 치르게 될 시험과 3년이나 뒤에 닥치게 될 졸업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졸업식이 있었던 10월 초까지 나는 학업으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캐나다 여행을 다녔고, 떠날 날을 두고서야 왜 사람들이 굳이 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캐나다로 관광을 오는지 알게 되었다.




회사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건강에 적신호가 오면서 번아웃이 크게 온 적이 있다.

 

여느 때처럼 야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그때 그 따뜻한 햇살만큼은 아니지만,

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이 밤공기가 막 졸업 후 처음 서울로 올라왔을 때의 공기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쁘지만은 않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도 스스로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별 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 육아 사이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둘 다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될 수 있으니까.


현재 충실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조금은 방관하며 당장 펼쳐진 풍경을 눈에 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복잡하고 머리 아픈 상황으로부터 잠시 나를 분리시켜 한 번 크게 심호흡하고 주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에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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