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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땅 Feb 09. 2024

설날의 추억

겨울이 가고 있습니다.

온갖 생각에 머리만 복잡해져 갔습니다.

산다는 게 어려운 거는 아니지만, 그걸 생각하자니 힘들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제 성격상 오래 가지고 가지도 못할 잡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서로 먼저 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꼴이 우스워 혼자 '워 워' 하고 있었습니다.


'콜록콜록'

거실 지나 햇살이 잘 비치는 방안에 노모께서 기침을 하십니다. 집안의 온도를 다시 살피고 보일러의 온도를 조금 더 높였습니다.


노모께 찾아가 평안하신 지, 불편하신 거는 없는지 살갑게 여쭈어볼 엄두가 안 납니다.

드라나마 영화에서처럼 표현하는 것이 뭐 힘들다고 하질 못합니다. 혼자 거실과 이 방 저 방을 기웃 거리며 괜스레 벽지를 쓰다 듬고 맙니다.


설이 내일입니다. 매년 설이 다가오면 어릴 적 추억이 떠오릅니다.

" 넌 얼마나 받았니? "

" 난 이번에 이만큼이나 세뱃돈을 받았지."


동네 꼬마들이 골목을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 설날은 그리 풍족하거나 가족들이 모여 시끄러운 날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외국에 나가 일하시는 중이라 안 계실 때가 많았고, 어머니와 우리 삼 남매는 조촐하게 차린 떡국과 만두, 그리고 어머니가 통 크게 사 오신 약과가 전부였습니다.


짧은 차례가 끝나기 무섭게 동생은 약과 두어 개를 양손에 잡고 이미 한 개는 입속에 물고 있었습니다.

" 누가 뺏어가니? "

어머니의 이야기에도 약과를 두 손에 쥔 동생은 행복해하였습니다.

어머니께. 세배를 하고 받은 세뱃돈이라 해야 100원짜리 동전 1개, 그렇게 설날의 아침이 끝났습니다.


난 동생의 손을 잡고 길을 나셨습니다.

작년부터 생각하고 계획한 길을 나선 겁니다.

친척들 집을 찾아 한 곳 한 곳 방문하였습니다.

우리 집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모들 집은 걸어서 2시간 가까이 걸어야 했습니다.

외가 쪽 이모들 집은 더 멀고 험난 했습니다.


고모들에게 받은 세뱃돈을 밑천 삼아 버스를 2번 갈아타고 가야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들 집에 계셨고 반갑게 우리 형제를 맞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45년 전의 설날은 풍족했습니다.

골목에 나가 자랑도 할 수 있었습니다.

동생에겐 짜장면도 사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온 형제에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지금은 많이들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습니다. 새해 인사도 전화도 드리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듯합니다.

평안한 숨소리가 제 마음마저 편안하게 합니다.

늘 이렇듯 제 곁에 계셨으면 하지만...


@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행복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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