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날의 추억을 기억하며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 한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하루에 다섯 번 다니는 시골 버스는 비포장 도로의 흙먼지를 남기고 멀어져 갔다.
그 길에서 꺾어진 콘크리트로 포장된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길 옆 양쪽으로 논이 펼쳐있다.
논둑 아래까지 어린아이 키만큼의 높이가 길고 좁은 포장도로를 더 위태하게 보였다.
한참이나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서부터 우거진 나무들이 반겨준다.
양쪽으로 무성한 나무의 가지들은 더운 날 시원한 그림자를 만들어 주어
더위에 지친 나를 이끌었다.
나무 그림자에 안도할 즈음 길은 다시 언덕길로 변하고 깊은 산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 걸음은 조금씩 조금씩 느려지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긴 한숨이 밀려 나왔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커다란 표지판과 꺼무죽죽한 실루엣의 건물이 더 침울하게 보인다.
뒤로 돌아 다시 걸어가고 싶은 충동이 잠시 일어났다.
하지만 그건 머릿속의 상상일 뿐 난 여전히
그 앞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 잠시만 쉬자'
걸음을 멈추고 언덕길 한쪽으로 몸을 옮기고 고개만 돌려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본다.
가로등도 없는 그 길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저 멀리서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이 그곳이 길임을 알려줄 뿐이었다.
이제부터는 다시 사람이 아닌 군인이 되는 시간이다.
잠시나마 집에서 느낀 그 포근함과 자유스러움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친구를 만나 떠들던 이야기는 생각이 나지 않고,
그 술잔과 담배연기, 김치찌개 냄새가 아직 느껴지고 있었다.
'흐... 세상은 하나도 변한 게 없더구먼..
나 없어도.. 몇 개월이나 지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 건데 지금은 멈출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오른손의 무게감이 크게 다가왔다.
"아들, 이거 가지고 가. 이거 부대 선임들이랑 나눠 먹어."
어머니는 새벽부터 방앗간이며 시장을 돌아
한바스의 음식을 챙겨 주셨다.
떡과 과일을 박스에 담아 끈으로 묶고 보자기로 다시 박스를 감쌌다.
어머니의 손은 빠르고 민첩하면서도 단단했다.
혹여라도 보자기가 풀어질라 질끈 묶은 매듭을 입으로 다시 한번 조여 매셨다.
그 어머니의 손이 갑자기 떠 올랐다.
"잘 먹이지도 못하고 보내 어쩌냐?, 용돈도 좀 많이 줘야 할 텐데.."
꾸깃한 지폐 몇 장을 내 손에 쥐어 주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다시 부대 위병소를 향해 걷는다.
지금은 아까처럼 힘들지 않다.
내 곁엔 늘 엄마가 함께 하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