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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츠코 Sep 05. 2023

모든 인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지독한 misanthropist이다. 한국어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찾아보았더니 '염세주의자'라고 나오는데 사실 이것과는 결이 다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타인을 믿지 않거나, 인간 자체를 두려워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려 하지 않는 행동이나 현상이다. 특정 성별혐오증 같은 이성혐오증, 염세주의자, 비관론자들도 인간혐오의 일부에 해당한다."라고 하니 한국에서는 염세주의자나 비관론자도 인간혐오자의 범주에 넣는 모양이다.


나는 그럼 낙관적인 인간혐오자라고 하겠다.


하지만 나는 집단으로서의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재정부의 우두머리와 그의 측근들, 종교라는 이름 하에 테러와 전쟁을 일으키는 부류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하는 아이들. 심지어 길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인간들과 비닐봉지를 아무 인식 없이 사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악설을 믿으며, 지구상에서 인간이란 기생충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낙관적인 시각은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뿐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든 나에게 인종차별을 하든, 모든 인연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로 인해 나에게 어떠한 생각이나 믿음에 변화를 줄 수도 있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 줄 수도 있고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사는 데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우리는 평생 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인간은 똑같다는 시각으로 보면 개개인의 추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관계를 계속하면서 다른 누군가는 알아보지 못했던 그 사람만의 아름다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이 인간관계를 넓혀나가고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올해 초, 나는 지난 8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세상에 아름답고 '깔끔한' 이별이 어디 있나. 우리는 한 달 정도 슬픔, 그리움, 후회, 증오의 감정을 가지다가 이제는 친구가 되었다.

이것이 유럽에 살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는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상대이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이라면... 이렇게 친구로 남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서로가 만나는 데이트 파트너 이야기까지 하며, 길가에 가다 보이는 그의 옛 오토바이 사진을 보내주며, 서로 해 주었던 요리 레시피를 공유하며 그렇게 절친이 되었다사람과 사람 관계는 우리의 인생만큼이나 어렵다.


카페 테라스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노신사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했다.

인생은 짧지만 그것을 어떻게 채워나가냐는 것은 본인 하기 나름이다...


....



난 인류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그다지 만나보지 못했다. 이태까지는. (유튜브에서 본 심윤수 만화가도 나와 같긴 했지만 우리는 직접 만난 적이 없다)

내가 만난 그는 나처럼, 인간 대신 고양이가 지구를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가 이 세상에서 고통받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에 아이를 되도록이면 갖고 싶어 하진 않는다. 이 부분은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열려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어차피 태어날 인간이라면 한 명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양면 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 나에게 말을 걸어온 그를 무시했더라면 이렇게나 첫사랑과 같은 짜릿함을 다시 느낄줄 어떻게 알았을까.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다시 되새길줄 누가 알았을까.


낙관적인 인간혐오자이면서 소울메이트가 존재하는 것을 믿는다니,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아니, 우리는 소울메이트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 사람 있는 그대로가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나와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도 나처럼 느낀다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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