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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츠코 Sep 12. 2023

외국인과 데이트하기, 프랑스남자와 데이트하기

우리는 무슨 사이야?

우리가 만난 지 두 달 째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나는 ‘How do you know if you are in a relationship with a french guy’ 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글을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프랑스남자와 내가 사귀는 사이인지 어떻게 아냐고,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나는 아직도 왜 그가 주말마다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나는 쏙 빼놓고 혼자 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여자친구가 아닌 것인가? 그는 내 남자친구가 아닌 것인가?

우리는 관계에 대해 규정짓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여태 여러 나라 남자를 만났지만 이렇게 특이한 연애는 처음이다.


이탈리아 남자는 두 번째 데이트에서 자신의 모든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리고 장미꽃다발을 건네며 자신의 여자친구가 되어달라 했다. 그 바로 다음날에는 그의 가족들을 만났다.

인도 남자는 자기 친구들 만나는 자리에는 나를 꼭 데리고 나갔다.

영국 남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스 남자는 사귀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이렇게나 독립적이고 우리 사이를 숨기려는 듯이 행동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아아 정보의 바다 인터넷.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글 5개를 읽어보고 나서야 이런 생각을 하는 외국인 여자가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웃긴 안도감이 들었다.


그들에 따르면

- 프랑스인들은 데이트와 친구, 가족 관계를 분리하고

- 만약 그들의 친구와 가족을 만난다면 정말로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신호지만 그때까지는 매우 오래 걸린다

- 그전이라고 해도 데이트 상대를 가볍게만은 생각하지는 않는다

- 일단 공공장소에서 입술에 키스를 할 정도라면 그것은 사귀는 사이

- 연애를 할 생각이 없이 즐기고만 싶은 상대라면 처음부터 이야기를 한다고.


그랬다, 내가 독일에서 만났던 프랑스 남자는 애초에 오늘밤뿐이라며 못을 박았더랬지. 그 역시 생전 들어보지도 않은 말이었기에 오히려 그들의 배려에 감동했달까. 그들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솔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뜨거운 밤을 보내고 아침에 커피를 같이 마시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이름조차 생각 안 나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에펠탑이 비추는 길거리에서 팔짱을 끼고 다닌다. 동네 슈퍼를 가는 길에 만나는 할머니들에게도 같이 인사한다. 그리고 그가 친구에게서 온 전화를 받을 때 여자친구라는 단어를 들었다.

나는 아직 프랑스어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내가 잘못 들은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떨어져 있는 오늘 같은 하루는, 조금 아리송하다. 그는 누군가를 만날 때에는 핸드폰을 아예 쳐다보지 않는다. 그렇게 중요시하는 친구관계인데도, 나와 만나기 위해 약속을 미룬적도 있다.


또한 심각할 정도로 입에 바른말은 못 한다. 혹은 기약 없는 약속조차 하지 않는다.

“한국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울은 참 흥미로워”

아니, 나는 “언젠가 같이 서울에 가자”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고!


애석하게도 그는 100퍼센트 전형적인 프랑스남자임에 틀림없다.


나는 지난 연애에서 ‘너무나 독립적이다’라는 평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전 남자 친구들을 괴롭히는 날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런 처지가 되었구나 싶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아는 사람 없는 이곳 파리에서 그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리라 수백 번 다짐했다.

하루에 수십번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참고 그의 문자에 바로 답장하지 않으려고 숫자도 센다.

나이 40이 다 되어가는 처지에 20대 때의 연애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내가 문득 낯설면서도 재미있다. 하지만… 어렵고 답답하다. 내 마음을 다 꺼내어 보여주고 싶다.


나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요리해 주는 그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본다.

나를 위해 피아노를 쳐주던, 집중하는 눈빛도.

어느 이야기라도 놓칠세라 내가 이야기할 때 반짝이던 눈 그리고 입가의 미소도.


그는 보고 싶다는 말 대신에 자신의 수첩을 꺼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날짜를 찾아본다.

그리고 이 날에는 이곳, 그다음에는 저곳을 가면 좋겠다고 혼잣말인 듯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나서야 “c’est parfait” 완벽하다며 어린아이 같이 좋아한다.


분명히 나는 사랑받고 있는데 - 무슨 레이블이며 명칭이 필요할까

어떤 블로거는 이렇게 말했다. read circumstances. just go with the flow. 흐름에 몸을 맞기라고.


아마도 오늘,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중요시하는 프랑스인 정서가 잘 묻어난 단상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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