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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용 Jul 17. 2023

빨간 헬멧을 쓴 라이더가 들고 간 그 꽃

엘리베이터엔 여름내 하얀 꽃이 피었다

계속되는 장맛비로 거실에서 바라본 *서해대교가 흙탕물 투성이다.

그 흙탕물을 계속 따라가면 행담 휴게소가 나올까?

창문을 두드리빗소리에 몇해전 그곳에비오는날 먹었던 <든든한 한 끼, 집에서 먹는 밥> 냄새가  스멀거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텅 빈 야채실엔 며칠 된 부추가 꽃이 피었고 문 안쪽엔 장수 막걸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오~ 장마철 필수 조합인걸.     


소리공학 연구소가 빗소리와 전을 부치는 소리로 실험한 결과 두 소리의 진폭과 주파수가 거의 동일하다고 한다.  

빗소리에 의한 연상작용으로 기름을 두른 팬에 부침 반죽을 넣고 익힐 때 나는 소리가 빗줄기가 땅바닥에 닿는 소리와 비슷해 빗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전을 떠오르게 된다고 하는 말이 비과학적 근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야채실에 누워있는 부추를 다듬어 밀가루와 합체를 시켰다.

호박이나 청양 고추가 있으면 더 좋으련만,

요즘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공사다망한 나에겐 그런 건 소모성 재료라고 위로했다.

팬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며 풍기는 고소한 부추전 냄새가 막걸리의 첫 잔을 불렀다.

든든한 한 끼는 역시 막걸리라며 안주빨을 세우는 남편이 작년 여름에 엘리베이터에서 부추 꽃을 본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랬다. 지난여름엔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하얀 부추 꽃들이 만발했다.

주말농장을 한다는 어느 이웃이 밭에서 베어 온 부추를 신문지로 꽃다발을 만들어 한 박스씩 엘리베이터에 놓아두면 문이 열릴 때마다 부추 다발을 든 사람들이 내렸다.

빨간 헬멧을 쓴 라이더들이 부추 꽃을 들고 가는 모습이,

할머니가 부추 다발을 들고 향기를 맡는 모습이,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새댁이 부추 꽃을 들고 웃는 모습이 아름다워 흐뭇했다.

엘리베이터에는 이름 없는 주인에게 보내는 감사의 메모와 함께 부추 꽃은 여름내 피고 지었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자 이삿짐 차량들이 자주 보였다.

사다리에 실린 짐들을 볼 때마다 혹시 저 집이 부추밭주인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며 좋은 이웃으로 함께해서 행복했다고 속으로 인사를 했다.  


이렇게 장맛비가 내리는 여름엔 막걸리의 단짝인 부추전이 엘리베이터에 하얀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서해아파트 옆에 있는 빨간 다리를  서해대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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