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항쟁이 일어난 지 36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20대 때 겪은 일이니 벌써 한 세대 전의 먼 과거 일이 되었습니다. 자식뻘이 되는 요즘 20대들에게는 너무 먼 옛날이야기이겠지요. 먼 과거의 일을 두고 세대차 나는 젊은이들과 공감하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젊은이들과 세대차를 뛰어넘기 위해 하루 종일 엎치락뒤치락 하는 게 제 일이긴 합니다만 저희들끼리 키득거리며 주고받는 MZ신조어가 저한테는 독해불가의 외계어이고 제 나름으로는 공들여 준비한 해설이 청년들에게는 잠꼬대가 돼 버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한 세대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이 젊은이들과 한 세대 전 역사의 현장으로 함께 가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학생들 앞에서 6.10민주항쟁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산술적으로 두 세대를 건너뛰어야 하는 힘든 일입니다. 학생들이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어찌 그리 무모할 수 있는가? 그래서 뭐가 달라졌는가?’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코미디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평생 해먹으려고 헌법까지 뜯어고치면서 군사독재는 박정희 5, 6, 7, 8, 9대, 전두환 11, 12대, 장장 28년간 이어왔는데 87년 6월 10일에 또 체육관에 모여서 군사독재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다고 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바로 전날에는 ‘민주 헌법’을 부르짖으며 거리로 나선 대학교 2학년 어린 학생이 경찰이 쏜 직격탄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지는 끔찍한 일도 일어났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직접선거를 요구하며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기세를 보이자 이를 짓밟으며 입에 담기 힘든 만행을 저지릅니다. 스물두 살밖에 안 된 어린 처녀를 성고문하고, 젊은 청년을 물고문으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마음 여린 젊은이들한테 이런 끔찍한 얘기를 꺼내는 게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무모한 행동’이 어떻게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공감하기 위해서는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대단한 의사(義士)라서 그런 용기를 낸 게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하루하루가 고역인 우리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보통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겁 없이 뛰어들게 되었는지 그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 봅시다. 너무 끔찍하면 시름이 깊어지고 너무 겉돌면 공감이 안 되니 함께 나눌 적절한 작품을 찾는 일이 수월치 않았는데, 마침맞게 젊은이들에게 친근한 만화로 6월항쟁을 그린 작품이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최규석의 만화 [100°C]는 세대차 나는 젊은이들과 한 세대 전으로 동반 역사 기행을 떠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최규석 만화 [100°C]
작가 최규석은 [송곳]이라는 노동만화로 유명한 분입니다. 제목 ‘100°C’도 참 의미심장합니다. 물은 99°C가 될 때까지 겉보기에 별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 답답하지요. 그 답답증을 못 이겨 99°C가 다 되어서 그만두면 얼마나 아까울까요. 조금만 더 참으면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날 텐데 말입니다. 우리 역사가 꼭 그랬습니다. 60년 4.19혁명은 5.16쿠데타로 더럽혀지고 80년 광주항쟁은 12.12쿠데타로 짓밟히며, 87년 6월항쟁은 야권 분열로 좌절되고 맙니다. 정말이지 너무 답답합니다. 지금 우리는 몇 °C 쯤에 와 있을까요. 막바지를 참지 못하고 또 그만두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주인공 ‘영호’는 가난한 집 자식이라 부모님이 뒤를 잘 대주지도 못하는데 참 착실해서 공부는 늘 우등생이었고 반공 웅변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상을 타 올 만큼 똘똘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대학까지 보낸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한 눈 팔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 80년 광주의 끔찍한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고 반공 청년은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저는 이 장면이 너무 섬뜩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갓 입학해 맞이한 첫 5월에 캠퍼스에서 열린 5.18 사진전은 저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젓가슴” 노랫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하던지…….
‘영호’가 어느 날 데모하는 빨갱이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다 미친놈들'이라고 맞장구를 쳤는데 공장 다니는 여동생이 “자기 인생 희생해서 남 위해 살겠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렇게 욕할 수 있느냐고 눈물로 호소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영호‘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86년 10월 28일에 일어난 건대항쟁에 가담하게 되는데 ‘영호‘ 엄마는 기절초풍합니다. 6.25 때 부모님이 보도연맹 사건으로 돌아가셨으니 자식이 부모님처럼 빨갱이로 몰려 죽게 될지도 모른다 싶었던 겁니다. ‘영호‘ 엄마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쫓아다니면서 부조리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고 운동권이 된 아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남편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민가협‘ 활동가로 나서기까지 합니다. ‘영호’ 엄마는 권인숙 양 부천서 성고문 사건 공판을 참관하다가 판사가 피고의 발언을 중단시키자 방청석에서 벌떡 일어나 “듣지도 않고 잡아넣을 거면서 재판은 왜 하냐.”고 소리를 냅다 지릅니다. 아들 ‘영호’가 겪은 대로 유치장에 갇히기까지 하지요.
‘영호’네 가족은 86년, 87년에 걸쳐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다 겪습니다. ‘영호’의 형 ‘영진’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이렇게 겪습니다. ‘영진’이 회사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 TV에서 박종철 의문사에 대해 “책상을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쓰러졌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분개하는데, 옆 자리에 있던 젊은이가 ‘자본의 단물이나 빨아먹고 있는 양반’들이 종철이의 죽음을 더럽히지 말라고 비아냥거리자 ‘영진’의 상관 이대리가 젊은이의 멱살을 잡고 “너희가 유신(독재)을 아냐?”고 소리치고 ‘영진’은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서 같이 슬퍼하는 사람들까지 밀쳐내면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고 따져 묻습니다. 머리로 변혁운동 하는 자들의 허위의식을 잘 꼬집은 대목입니다. 박종철 열사가 자기 목숨을 바쳐 지켜낸 운동권 선배 박종운이 변절하여 박종철을 죽인 정치세력과 야합한 천인공노할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말입니다.
만화 중 연와시위 장면
연와시위 실제 장면
[100°C]는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가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연이어 벌어진 87년 5월 23일 탑골공원 앞 우중(雨中) 연와시위, 5월 27일에 향린교회에서 열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대회, 6월 9일 연세대 출정식 직후 발생한 이한열군 직격탄 피격 사건, 6월 10일 잠실체육관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같은 날 열린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까지 숨 막히게 전개된 나날을 낱낱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단 한 권의 만화에 이 수많은 사건들을 담아낸 작가의 가쁜 호흡에 숨이 막힐 듯했지만 현장을 뛰어다니는 듯한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청년 독자들이 이 가쁜 호흡을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민주화 열기가 바야흐로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을 맺으니 아쉽기도 했습니다.
만화 중 이한열 피격 장면
6월항쟁은 6월 10일 국민대회를 기점으로 우리 역사의 새 장을 펼쳐내기 시작하는데 [100°C]는 여기에서 중동무이된 듯해 그 뒤를 이을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6월항쟁의 그 뜨거웠던 현장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꼭 명동성당을 찾아가 봐야 합니다. 6월항쟁을 형상화한 대부분의 소설이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그리고 있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국민대회가 열린 10일부터 자진해산 한 15일까지 명동성당은 투쟁의 구심점이었으며 이 시대의 모순이 응집된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많은 소설가들이 그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고 그들이 직접 목격한 것을 기록했으니 6월항쟁의 형상화는 비교적 풍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월 10일 명동성당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항쟁을 그린 대표작을 꼽는다면 건대사태부터 이한열 장례식까지 세밀화로 그려낸 심산의 장편소설 [사흘낮 사흘밤], 명동성당 농성에 참가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린 박태순의 중편소설 [밤길의 사람들], 6월항쟁 이후 노동현장에 투신한 학출 활동가의 훼절을 그린 김남일의 단편소설 <명동 부르스>, 6월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가 야권 분열로 무산되어버린 이야기 송영의 중편소설 [울어라 조국아]를 이 시대 핵심 모순을 그려낸 전형으로 고르고 싶습니다. 이 작품들을 이어주는 시대정신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요. 87년 6월항쟁은 60년 4.19의거, 80년 광주항쟁과 다른 점이 뭘까요. 물은 100°C에 끓어 질적으로 달라지는데 6월항쟁을 통해 우리 역사는 질적으로 비약을 했나요.
이한열 국민장 시청 광장
7월 9일 이한열 국민장에 모여든 인파가 어마어마합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이 일파만파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집권당 대통령 후보가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겠다며 6.29선언을 하게 되고 민주주의 열화(熱火)는 이렇게 타올랐습니다. 이 뜨거운 열기는 노동자 대투쟁으로 번지고 우리 역사는 바야흐로 전기(轉機)를 맞이합니다. 4.19의거와 광주항쟁 때 사선을 끝까지 지켰던 자들은 대부분 기층 민중이었는데 6월항쟁 때에도 명동성당을 끝까지 사수하자는 불굴의 투사들은 주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 힘이 7,8,9노동자대투쟁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6월항쟁은 4.19, 5.18이 더 나아가지 못했던 역사의 진보를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태순의 [밤길의 사람들]에서 명동성당 농성에 참가한 여성 노동자 ‘조애실’은 농성 참가자들이 자체 투표를 통해 해산을 결정하자 ‘노동자들에게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여기서 그만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서러워합니다. 작가 박태순이 명동성당 농성에 참여했던, 전태일의 누이동생 전순옥 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소설로 그려냈으니 현장의 진실을 정확히 반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6월항쟁을 그려낸 소설들이 담고 있는 공통 메시지가 곧 이 항쟁의 역사적 의미이자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길의 사람들]에서 여성 노동자 ‘조애실’이 명동성당 농성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기층 노동자의 정치적 각성을 보여준 것처럼 [사흘낮 사흘밤]에서도 명동성당 농성에 결합한 여대생 ‘예원’이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농성에 결합한 가난한 일용 노동자, 철거민들과 함께 싸워 나가면서 지식인의 오만을 각성하고 건강한 민중 정신을 본받게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진보이지만 안타깝게도 깨달음이 너무 뒤늦었던 모양입니다. 폭압 정권을 굴복시키며 민주화를 이뤄냈는데 그렇게 어렵게 쟁취한 직선제 선거에서 민주 진영은 패배하고 맙니다. 어린 학생과 노동자가 생계를, 목숨을 바쳐가며 어렵게 일궈낸 결실을 지식인 위정자들이 오만과 분열로 들까불고 말았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비통한 경험이었습니다. [사흘낮 사흘밤]의 ‘한섭’은 소매치기, 도둑놈, 깡패 등 쓰레기라 여겼던 빵잽이들한테서 인생을 새로 배우며 뼈아프게 각성합니다.
“너는 세상을 바꾸겠다면서 사람을 버린 놈이다. 너는 세상을 바꾼다는 개념 자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놈이다. 격문을 쓰고 조직을 꾸리고 화염병을 던져서 바뀔 세상은 없다.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길은 사람을 바꾸는 것뿐이다. 바꾸어진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너는 세상을 바꾸겠다면서 사람을 버렸다. 온갖 거드름을 다 피우면서. 온갖 잘난 체를 다 떨면서. 마치 네가 순교자라도 된다는 양 근엄하고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이 세상 고뇌 모두를 네 어깨에 얹어놓기라도 했다는 듯 잔뜩 과장된 몸짓으로 터무니없이 비틀거리면서.” -심산 [사흘낮 사흘밤] 中
무슨 대단한 선각자인 양 무지렁이들을 이끌겠다던 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가 있습니까. 6월항쟁은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외된 이들을 해방시키겠노라 의식은 대단했겠지만 실상은 관념에 뚜드려 맞추려다 보니 자기 성에 차지 않아 널브러진 게 아닙니까. 이 또한 소외이자 자기 상실이 아닌가 자문하게 됩니다. 대중을 각성시켜 이끌겠다는 사고방식은 피아를 모두 힘들게만 할 뿐 해방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하루하루는 지겨울 리 없겠지요.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함빡 빠져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100°C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