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여행 오리엔테이션 (4)
※ 매거진 《차마고도 사이버여행》은 글의 가독성과 흥미를 위해 픽션 요소를 가미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중국 여성의 성과 사랑》에서도 등장했던 가상의 인물, 소혜인이라는 여성 화자가 평소 티베트 땅을 간절히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티베트 답사에 참가하여 활약한다는 가정 하에서 서술하겠습니다. 글벗 여러분의 많은 질책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미션: 아래의 사진을 보면서 5분 이상 명상해 볼 것.
가이더 님이 메일로 우리 모두에게 공통 미션을 내주셨다.
(혜인 생각)
숨이 멎는다. 여기가 대체 어디일까? 공간의 의미를 잊었다. 30분? 아니, 1시간? 모르겠다. 시간의 의미도 잊고 멍하니 저 산과 저 물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숨이 멎었다. 호수도 숨을 멎고, 바람도 구름도 숨을 멎었다. 시간도 소리도 숨을 멎었다. 온 세상이 태고의 정적에 휩싸여 숨을 멎고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추어 있는 세계.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환청일까?
옴 마니 밤메 훔...
아무도 없는 이 태고의 땅, 그 어디선가 우주의 진언이 주파수가 되어 울리는 듯하였다.
빛이 산의 어깨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바람이 흰빛의 산등성이를 스쳐 지나갔다. 똑... 딱... 똑... 딱...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소리가 났다. 물이, 한 방울 흐르기 시작했다. 산이, 한 걸음 내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심장 안에서 무언가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 모든 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둥첸의 소리 ☞ <Monks play the dungchen – sounds haunting yet musical>
후――, 새로운 호흡이 시작되었다.
호― 날숨... 흡― 들숨...
그런데, 왜...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걸까?
[ Zoom 온라인 강의실 ]
(소오생) 두 손 모아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하시겠습니다.
당신에게 상서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평안이~
(소오생) 자, 어디론가 답사를 가게 되면 맨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먼저 티베트의 지리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먼저 '수미산'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건 <한국과 티베트의 사원寺院 비교>를 주제로 졸업 논문을 쓰고 있는 혜린 쌤이 발표하기로 했죠?
(이혜린의 발표)
안녕하세여? 이혜린이에여. 수미산(須彌山, Sumeru Mountain)은 불교와 인도 신화 세계관의 중심축이 되는 신화 속의 '우주산宇宙山'을 말한답니당~ 음... '수미'란 말은여, 산스크리트어 '수메르(Sumeru; 탁월한/뛰어난 중심中心의 산)'를 중국어로 음역한 거에여.
불교의 우주관은 수직 구조와 수평 구조, 두 가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걸랑여? 수미산은 수직 구조에여. 우주의 모든 것이 수미산을 중심축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져. 그리구 이 수미산을 중심축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세계가 배치된 평면적 우주를 '만다라曼荼羅'라고 한답니당~ 수미산은 수직 구조(아래 사진 우), 만다라는 수평 구조(아래 사진 좌). 아셨져? ^^
사해四海 한가운데 우뚝 솟은 수미산은...
위아래로 여러 층의 하늘과 지옥세계를 연결하는 '우주적 축(axis mundi)'이라네여~
(1) 산 정상, 도리천(忉利天, Trāyastriṃśa)은 제석천(인드라)이 다스리는 세계이구여~
(2) 산 중턱은 사천왕천四天王天.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명의 대왕이 지키고 있어여~
(3) 산 밑은 바다. 인간 · 동물 · 아귀 · 지옥 등 육도윤회의 세계예여~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네 개의 대륙이 둘러싸고 있는데여~ 그중에서 남쪽의 남섬부주南贍部洲가 우리가 사는 인간 세계래여. 재밌져? ㅋㅋ
수미산 높이는 8만 4천 유순由旬이라는 데여, 그게 몇 미터냐고 물어보시면... 우이 씨, 확 꼬집어버릴 거예여~!? 암튼 무지 높다는 얘기겠져 모. 그냥 알아서 생각하셔여~ ㅋㅋㅋ 글구 절반은 물속에, 절반은 물 위에 솟아 있대여~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검색해보니깐 수미산 상상도라고 뜨는 게 너무 꼬지더라구여~ 그래서 제가 AI로 함 그려봤어여~ 이렇게여!
어때여? 심플하게 잘 그렸져? 헤헤. 음... 불경을 보면... 산의 중심부는 칠보(七寶; 금·은·유리·수정·산호·호박·진주)로 장식되어 있어서 찬란하게 빛난다는데... 아마도 히말라야 주변의 동심원형 산맥 구조를 상징하는 것 아닌가 싶어여~ 근데 그걸 표현하려니깐 AI가 통 협조를 안 하네여? 그냥 생략했으니깐 마음의 눈으로 보시어여? ㅋㅋㅋ
그래서 절에 가면 사천왕도 있고 탑도 있잖아여, 그거랑 본전에 불상을 올려놓은 대좌랑 그런 게 다 수미산의 구조를 본뜬 거래여~ 특별히 부처님 앉으신 연꽃 만개한 '연화대좌'는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을 상징한대여~ 그런 상식을 알고 보면 더 재밌겠져? 호호,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당~ ^^
(다 같이) 물개 박수~~~
(소오생) 아, 혜린 쌤. 깔끔하게 발표 너무 잘하셨어요. ^^ 보충해서 그림 한 장 보여드릴게요. 아래는 전라남도 보성에 있는 대원사大元寺의 벽화예요. 오체투지로 수미산을 향하고 있는 순례자의 모습도 보이네요?
수미산은 단순한 신화 속의 산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순례지이기도 하죠. 수미산은 어쩌면 '우리 마음의 중심축'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 어떤 번뇌가 밀려와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 '지혜'의 상징이 바로 '수미산'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모두 수미산으로 삶의 중심을 삼으면 좋겠죠?
(혜인의 정리)
1. 티베트 지리 공부는 '수미산'부터 시작해야.
2. 불교의 우주관 ① 수직 구조: 수미산 신화 ② 수평 구조 : 만다라
3. 수미산 = 우리 마음의 중심축 (번뇌에 무너지지 않는 지혜의 상징)
여기서 질문! 제가 지금 티베트의 지리를 공부하자면서 왜 먼저 수미산 신화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왜냐하면... '수미산'은 신화뿐만 아니라 실제 우리들의 현실세계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랍니다.
더구나 현실세계에서도 모든 강과 모든 산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하네요. 놀랍죠? 현실세계의 수미산 이름은 카일라스 또는 강린뽀째라고도 한답니다. 어디에 있는지, 지도에서 한번 보실까요?
(이혜린) 네에? 신화 속의 수미산이 현실세계에도 있다구여?
(소혜인) 네에? 카일라스가 수미산이고, 강린뽀째가 카일라스라구여? 어쩐지...
(소오생의 설명)
그렇습니다. 수미산 신화는 현실세계의 카일라스, 즉 강린뽀째의 지형지세를 근거로 탄생한 거랍니다. 위의 지도처럼 카일라스는 티베트고원 서부의 아리阿里고원 지역에 있어요.
그런데 아리고원은 티베트에서도 특히 더 높은 해발 5,000m 이상의 지역이라 산소가 매우 희박해서 사람이 살기는커녕 접근 자체가 매우 힘들답니다. 예전에는 티베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라싸에서 가는 것보다 차라리 인도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접근하는 게 상대적으로 더 쉬울 지경이었죠. 물론 요새는 중국 정부가 하이웨이를 닦아서 바로 근처까지 지나갈 수 있지만요.
티베트자치구와 신강위구르자치구를 잇는 하이웨이가 강린뽀째(카일라스) 앞을 지나가고 있다.
수미산은 먼저 힌두교가 우주의 중심으로 떠받든 성산聖山이었다가 차차 불교와 자이나교, 그리고 티베트 토착 신앙인 뵌뽀교에서도 숭배하게 된 성스러운 장소랍니다. 그래서 그들이 각자 불렀던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그걸 모르면 서로 다른 산으로 착각하기 쉬워요. 고유명사 명칭을 정확하게 알고 표기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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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미산 : 이건 아까 혜린 쌤이 발표했죠? 통과!
AI로 그린 강린뽀째(카일라스).
(2) 카일라스(Kailāsa, Kailash) : 이건 산스크리트어예요. '수정(Crystal)의 거처’라는 뜻. 인도의 힌두교도나 자이나교에서는 이렇게 불렀겠죠?
카일라스는 그 모양 자체가 특별해요. 정상부가 완벽한 피라미드형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거의 대칭을 이루고 있답니다. 마치 인간의 건축물이 아니라, 지구가 만들어낸 대자연의 만다라처럼. 그 자체가 우주의 설계도, 신의 상징이었던 거죠.
(이희원) 아니, 저기 7부 능선에 조장터가 있다면서? 안 보이는데? 저길 어떻게 오체투지로 올라간단 말이요?
(김민호) 저도 궁금해서 중국 사이트를 찾아봤는데요, 순례자들이 저기 7부 능선 조장터까지 오체투지로 올라간다는 말은 그냥 전설이라고 하더군요~ ^^;;
(소오생의 설명)
(3) 강린뽀째(Gang Rinpoche) : 이건 티베트어. '강Gang'은 '눈(雪)', '린뽀째(Rinpoche)'는 '위대한 스승', '존귀한 존재'라는 뜻. 티베트어에는 경음(硬音, 된소리)이 많답니다. 근데 우리나라 표기법에서는 최대한 경음 표기를 피하기 때문에 다른 책에서는 대부분 '린포체'라고 표기하고 있죠. 저는 가급적 원음을 존중해서 '강린뽀째'라고 표기하겠습니다. 참고하시도록. 아셨죠? ^^
(혜인 생각) 앗, 가이더 님이 메일로 보내주신 사진이 바로 여기였구나!
(4) 깡런뽀치(岡仁波齊; Gāngrénbōqí)) : 이건 중국어. 티베트어를 음역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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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 카일라스, 강린뽀째, 깡런뽀치... 모두가 동일한 산의 명칭이죠. 전부 기억하고 있어야겠습니다. 다만 '수미산'이라는 이름은 신화 세계의 성격이 강하고, 우리는 인도가 아니라 티베트로 답사를 갈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강린뽀째'라는 명칭을 사용하겠습니다. 아시겠죠? ^^
(혜인의 정리)
우리가 부르는 '수미산'은 신화 속의 산 이름이자, 현실세계의 강린뽀째를 가리키는 거울이다. 고대 인도인은 카일라스, 티베트인은 강린뽀째, 중국인은 깡런뽀치라고 부른다.
강린뽀째는 해발 6,638m. 이 근처에 남아시아로 흐르는 4대 강(인더스·갠지스·브라마푸트라·수틀레지)의 발원지가 모여 있습니다. 이런 지리적 특징 때문에 고대 인도인들은 '모든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으로 생각한 거죠. 아래의 지도를 보시면 금방 이해가 되실 거예요.
① 얄룽짱뽀(Yarlung Tsangpo) : 티베트 구간의 티베트 명칭. 중국어 명칭은 야루짱뿌(雅魯藏布). 국제 공식 명칭은 브라마푸트라(Brahmaputra). 방글라데시에서 갠지스강과 만난다. 그러나 갠지스강의 지류는 아니다. 전장 약 2,900km.
② 갠지스(Ganges) : 전장 약 2,525km.
③ 수틀레지(Sutlej) : 전장 약 1,450km. 인더스강의 지류. 파키스탄에서 인더스와 만난다.
④ 인더스(Indus) : 전장 약 3,180 km.
(혜인의 정리)
1. 수미산의 여러 명칭
① 인도인: 카일라스 ② 티베트인: 강린뽀째 ③ 중국인: 깡런뽀치
2. 수미산(강린뽀째)은 모든 생명의 물의 발원지
① 東: 얄룽짱뽀(티베트) ⇒ 브라마푸트라 ⇒ 갠지스강과 하구에서 만남(방글라데시) ⇒ 벵골만
② 東南: 갠지스(인도) ⇒ 하류에서 브라마푸트라강과 만남(방글라데시) ⇒ 벵골만
③ 西南: 수틀레지 ⇒ 인더스강과 합류(파키스탄) ⇒ 아라비아만
④ 西: 인더스강 ⇒ 수틀레지와 합류(파키스탄) ⇒ 아라비아만
(소오생의 설명)
강린뽀째는 또한 모든 산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남쪽으로는 히말라야, 서쪽은 카라코람, 북쪽은 곤륜산, 동쪽으로는 당굴라(탕구라) 산맥이 모두 여기 이 강린뽀째에서 시작합니다. 여기를 중심으로 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가 갈라지고 있는 거죠. 하나씩 살펴볼까요?
① 히말라야(Himalaya) : '눈의 장벽/거처'라는 뜻. 신의 세계와 인간세계의 경계선으로 인식했대요. 다들 익숙한 이름이니까,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 대충 통과!
② 카라코람(Karakoram) : 강린뽀째의 서쪽 날개인 셈인데요, 히말라야와 함께 동/서방 세계의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훗날 이 카라코람 북쪽에 위치한 파미르고원의 틈새를 뚫고 실크로드가 개척되었죠.
③ 곤륜산(崑崙山, 昆侖山; Kūnlún Mountains) : 중국 신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산의 시조(萬山之祖)'랍니다. 즉 중국인의 '수미산'이라고나 할까요? 현실세계에서의 그 어떤 특정한 산이라기보다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신화 속의 산이었죠. 그러다가 현실세계에서도 이 산의 이름을 따와서, 오늘날에는 티베트고원과 타클라마칸사막의 경계선에 위치한 산맥을 곤륜산맥이라고 한답니다. 전장은 약 2,500km.
④ 당굴라(Dang-gula, 唐古拉, Tanggula) : 티베트고원의 척추. 강린뽀째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산맥. 지도 보면서 확인하고 있죠? 여기를 경계로 북쪽은 청장靑藏고원이 펼쳐지는 청해성靑海省이고, 남쪽은 티베트 자치구랍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도라는 청장열차가 바로 여길 지나가는 거죠.
(혜인의 정리)
▶ 수미산(강린뽀째)은 모든 산의 근원
① (남쪽) 히말라야 : 눈의 장벽. 신과 인간의 경계선. 동/서방 세계의 경계선
② (서쪽) 카라코람 : 동/서방 세계의 경계선. 파미르고원의 남쪽.
③ (북쪽) 곤륜산 : 중국 신화 속의 '모든 산의 시조(萬山之祖)'. 중국인의 '수미산'.
④ (동쪽) 당굴라 : 티베트고원의 척추. 중국어 음역으로는 탕구라.
(소혜인) 가이더님, 티베트고원은 뭐고 청장고원은 또 모예여? 고유명사 미션을 하다 보니 너무 헷갈렸어요.
(소오생) 오우~ 굿굿굿!!! 아주 좋은 질문이네요. ^^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티베트고원도 너무 넓어서 지역마다 분류해서 부른답니다.
청해성 지역의 티베트고원은 '청해'의 '청靑'이란 글자와 티베트를 뜻하는 한자인 '장藏'을 붙여서 '청장고원', 사천성 지역의 티베트고원은 '사천'의 '천川'과 '장藏'을 붙여서 '천장고원', 그리고 운남성 지역의 티베트고원은 '운남'을 뜻하는 '전滇'과 '장'을 붙여서 '전장고원'이라고 한답니다. 오케이?
(혜인의 정리)
▷ 티베트고원의 지역별 분류
① 청장고원 : 청靑(청해성) + 장藏(티베트) = 청해성의 티베트고원
② 천장고원 : 천川(사천성) + 장藏(티베트) = 사천성의 티베트고원
③ 전장고원 : 전滇(운남성) + 장藏(티베트) = 운남성의 티베트고원
④ 아리고원 : 티베트고원의 서부 지역. 강린째뽀가 위치한 곳.
(이혜린) 저두 질문 있어여! 왜 어떤 때는 '산'이라고 하고 어떤 때는 '산맥'이라고 하세여?
(소오생) 오옷! 선비는 삼일이면 괄목상대라더니, 우리 혜린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시는구먼? 키야! ^0^
산과 산맥
동방세계에는 원래 '산맥(山脈, mountain range)'이라는 개념이 없답니다. 동방세계는 뭐다? 일원론의 결합 패러다임! 오케이? 그냥 다 뭉뚱그려서 '산'이라고 하죠. '산맥'이란 말은 근대 서양 지리학이 도입된 후에 일본 학자들이 만든 번역어예요.
우리나라도 '태백산맥'이니 '소백산맥'이니 그런 말은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郎)라는 일본 사람이 이원론의 분리 패러다임 하에 만든 용어구요, 원래는 그 모두가 다 '백두산'이었죠. 요새 많이 사용하는 '백두대간'이란 말은 20세기 후반에 '태백산맥'이란 단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말이랍니다.
그런데 일원론의 결합 패러다임은 다 좋은데... 애매모호할 때가 많잖아요? 우리의 기존 인식 체계로는 아무래도 수천 km씩 뻗어있는 '산'은 '산맥'이라고 부르는 게 오해의 소지가 적기 때문에, 때로는 '산맥'이라고 불러준 거랍니다. 중국에서 발행한 지리책도 혼용해서 부르고 있어요. 웃기죠? ^^;;;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강린뽀째 산은 강디스岡底斯산맥의 시작점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아주 드물게... 강린뽀째를 강디스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사실. 그럴 수도 있겠죠? ^^;; (아래 지도 참고) 통과!
(이희원) 잠깐, 잠깐! 지금 질문 시간인 거 같은데... 나도 궁금한 거 있소이다. 아니, 강린째뽀인지 수미산인지, 아까 높이가 6,683m인가 그렇다매? 근데 히말라야에는 8,000m가 넘는 고봉도 수두룩하지 않소이까? 근데 왜 하필 옛날 사람들은 강린째뽀를 제일 성스러운 산으로 여겼단 말이오?
(소오생) 우와, 엄청나게 예리한 질문이네여! 굿굿굿~~~! 오늘 나온 질문들 중에서 최곱니다. 근데요, 강린째뽀가 아니라 강린뽀째거든요? 높이도 6,683이 아니라 6,638m고요. 하하, 유난 떨어서 죄송, 죄송~ ^,.^
수미산 신화는 감각의 높이
아까도 잠시 말했지만... 강린뽀째(카일라스)가 위치한 아리고원은 티베트 쪽에서 접근하자면 산소도 부족하고 거리도 너무 멀어서, 아마도 힌두교의 땅인 인도인들이 먼저 카일라스(강린뽀째)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힌두교도들은 남쪽의 넓은 갠지스 평원에서 북쪽 히말라야 산맥을 올려다보며 '하늘로 올라가는 눈의 장벽'으로 여겼겠죠.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은 너무 험해서 접근조차 힘들었고 인도 평원에서는 거의 보이지도 않았을 거예요. 반면 카일라스로 가는 길은 히말라야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넘기가 수월해서, 아주 드물게나마 어떤 이들은 그 '눈의 장벽'을 넘어갔던 모양예요.
그렇게 넘어간 그들이... 해발 5,000m 하늘 위의 땅에 완벽한 피라미드 형태로 홀로 우뚝 선 카일라스를 발견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천신만고 끝에 하늘 눈의 장벽을 넘었더니... 그 높은 땅 위에 또다시 1,500m 이상 우뚝 솟은 모습을 보고 9,000m 이상으로 느끼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그 시각적 압도감이 수미산 신화를 탄생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내가 본 가장 높은 곳이 곧 하늘의 자리다.”
다시 말해서 수미산 신앙은 '측정된 높이(height)'가 아니라, '감각의 높이(sensed height)'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습니당. 중국 산동에 있는 태산泰山도 마찬가지. 실제 높이는 불과 1,545m에 불과하지만 주변의 뭇산들이 200~300m의 작은 언덕들이라서 시각적으로 엄청나게 높게 보이죠.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그래서 양사언의 그런 시조 속의 인식도 탄생할 수 있었던 거예요.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혜인 생각)
1. 수미산 : 고대인은 고도를 몰랐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감각의 높이로 세상을 판단했다. 히말라야를 넘은 뒤 또다시 우뚝 솟은 피라미드의 설산을 보며, 그곳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요, 신의 자리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카일라스는 비록 6,600m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하늘보다 높은 산이었다. 높은 산이 신성한 산이 아니라, 신성한 산이 높은 산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숫자가 아니라 마음속 시선의 깊이였던가...
2. 히말라야 & 카라코람 & 곤륜산
아시아의 허리에 거대한 산맥이 누워 있다. 히말라야에서 시작하여 카라코람을 거쳐 곤륜으로 이어진다. 위성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하늘이 스스로 척추를 만들고 그 위에 이 산들을 얹어놓은 듯하다.
곤륜은 중국 신화가 만들어낸 산. 서쪽 어딘가에 존재하는 불사不死의 산. 그 상상력이 바로 곤륜이었다. 그 그림자가 서쪽으로 흘러내리며 현실의 바위로 굳은 것이 카라코람(Karakoram), ‘검은 바위산’이다. 그 산맥의 남쪽, 신과 인간 사이 가장 높은 장벽이 바로 히말라야... 신과 인간의 경계선. 동방과 서방세계의 경계선, 히말라야. 그 봉우리들은 곤륜의 신화가 현실세계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곤륜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이 카라코람의 절벽을 넘어 히말라야의 눈 위에 닿는다. 그 바람이 녹으면 얄룽짱뽀(브라마푸트라)와 갠지스와 수틀레지와 인더스가 되어 문명을 적신다. 결국 모든 물은 여기서 흘러나와 모든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소오생) 계속해서 당굴라(Tanggula)와 당굴라가 낳은 삼강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번에는 김민호 선생님이 발표해 주시죠.
(김민호의 발표)
안녕하세요? 당굴라라는 이름이 무척 생소하시죠? 다른 산 이름은 그래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 당굴라는 아마 처음 들으실 거예요. 하지만 이 산은 아주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답니다.
당굴라 — 수미산의 기氣를 생명의 물로
당굴라(Dang-gula)는 티베트어구요, 중국어 음역으로는 '탕구라(唐古拉, Tanggula)'라고 합니다. 원명 '당굴라'는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뜻.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 수미산으로 향하는 관문. 당굴라를 넘으면 속세에서 성역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겠죠?
(2) 인버터(inverter)의 역할. 당굴라는 수미산의 강렬한 기氣를 생명의 물로 전환하여 동방세계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당굴라는 티베트고원의 한가운데를 동서 방향으로 약 700~800km 정도 뻗어있는데요, 서쪽 끝은 수미산(강린뽀째)이고 동쪽 끝은 삼강원(三江源, Three Rivers Headwaters)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아래 지도에서 그 위치를 확인하며 당굴라의 역할을 음미해 보시죠.
▷ 황하黃河 : 전장 5,464km. 황하 문명의 발상지. 중국 북방문화의 집결지.
▶ 장강長江 : 전장 6,300km. 우리나라에서는 양자강(揚子江, Yangzi River, 양쯔강)으로 알려져 있으나, 양자강은 하류 지역의 명칭일 뿐, 전체 명칭은 장강이다. 중국 남방문화의 집결지.
▷ 메콩강(湄公河) : 4,180km.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인도차이나 반도를 관통하는 국제 하류河流. 상류인 중국 지역에서는 란창강瀾滄江이라고 부른다.
삼강원은 황하와 장강, 그리고 메콩강. 이렇게 세 강의 발원지라는 뜻. 전 세계적으로 수자원이 가장 풍부한 곳 중의 하나로, 황하 전체 수량의 49%, 장강 전체 수량의 25%, 메콩강 전체 수량의 15%가 여기에 몰려있답니다. 그래서 '중국의 물탱크(中國水塔)'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죠.
약 5천만 년 전, 인도판이 북쪽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답니다. 그때의 충격으로 남서쪽으로는 히말라야와 강린뽀째가, 동북쪽으로는 당굴라와 삼강원 고원이 동시에 솟구친 거죠. 그러면서 한반도 면적의 10배, 해발 고도 4,000m 이상의 거대한 티베트고원이 만들어진 겁니다.
지구의 지붕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 고원은 아시아 모든 주요 강의 발원지입니다. 서쪽 강린뽀째 일대에서는 얄룽짱뽀(브라마푸트라), 갠지스, 수틀레지, 인더스강이... 당굴라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동북쪽 삼강원 일대에서는 황하, 장강, 메콩강이 발원합니다. 한 번의 지각 판 운동이 두 곳의 ‘물의 성소聖所’를 만든 거죠.
그래서 티베트인들은 티베트고원 전체를 하나의 몸뚱아리로 인식한답니다. 수미산, 즉 강린뽀째는 고원의 영혼이고, 삼강원은 그 혈맥이 흐르는 심장으로 생각한 거죠.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다 같이) 물개 박수~~~
(혜인의 정리)
▶ 당굴라 : 세속世俗의 숨을 멈추고, 새롭게 하늘의 숨을 쉬어야 하는 곳.
▷ 수미산의 기氣 ⇒ 당굴라 ⇒ 삼강원 : 생명의 물 ⇒ 동방세계
▶ 삼강원은 지도의 한 지점이 아니다. 황하, 장강, 메콩강이 동시에 깨어나는 '물의 심장'이다.
(소오생) 네, 김민호 선생님. 감사합니다. ^^ 마무리를 해볼까요?
오늘은 신화 세계 속의 수미산과 현실 세계의 수미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첫째, 수미산의 명칭 : 카일라스 = 강린뽀째 = 깡런뽀치
둘째, 수미산과 4대 강의 시원 : 얄룽짱뽀, 갠지스, 수틀레지, 인더스
셋째, 수미산과 4대 산의 시작 : 히말라야, 카라코람, 곤륜산, 당굴라
넷째, 수미산 ⇒ 당굴라 ⇒ 삼강원 : 황하, 장강, 메콩강
황하와 장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슷한 위도緯道 선상을 흘러갑니다. 이런 강들은 권역 내에 비슷한 문화를 탄생시킵니다. 비슷한 위도 선상을 흐른다는 말은 상하류의 기후가 서로 비슷하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그만큼 기후는 인류의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다음에는 황하와 장강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도록 하죠.
반대로 메콩강은 북에서 남으로 비슷한 경도經道 선상을 흘러갑니다. 이런 강들은 권역 내에 서로 이질적인 다양한 문화를 탄생시킨답니다. 기본적으로 상류와 하류의 기후가 크게 다르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우리의 차마고도 답사여행은 주로 장강과 메콩강 상류 지역을 경유한답니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죠?
수미산은 수평 구조의 우주 만다라의 중심축이죠. 그러나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일중일체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의 인식에 의하면,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다 하니... 그 수미산조차 모래알 하나 속에 있다는 이야기 아니겠어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우리의 '일념一念 '속에 우주 전체가 깃들어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다음 모임에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두 손 모아 인사하고 끝내겠습니다.
당신에게 상서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평안이~
(혜인 생각)
별이 떠오른 곳은 하늘이 아니라 발아래... 별빛을 따라 가쁜 숨을 고르며 한 걸음씩 걸어본다. 얼음과 돌, 숨결과 침묵... 만년설이 덮인 피라미드 형태의 신비한 봉우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수미산... 그 산은 오르는 곳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흘러내리는 시작점이었다.
눈(雪)은 강이 되고, 침묵은 노래가 된다. 한 걸음 다가서자, 사방으로 물소리가 갈라진다. 서쪽은 암회색 바위의 낮은 울음. 동쪽은 유리잔을 두드리는 맑은 종소리. 누군가 귓가에 속삭였다. "모든 산과 강의 시원! 그 이름을 찬미하라."
어디선가 만트라가 울려왔다. "옴 마니 밤메훔..." 멈췄던 숨이 쉬어졌다. 후우… 그 순간, 지도가 뒤집히고 흩어졌던 만물이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나도, 우리도, 이 세계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 이곳 수미산에서...
추신: 수미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태산처럼 담담하게, 아무 생각 없이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며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구요.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이겨나가겠습니다. 여러 글벗님들 응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티베트의 지리
# 수미산, 카일라스, 강린뽀째, 깡런뽀치
# 얄룽짱뽀(브라마푸트라), 갠지스, 수틀레지, 인더스
# 히말라야, 카라코람, 곤륜산, 당굴라(탕구라)
# 삼강원, 황하, 장강, 메콩강(란창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