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다니는 국제학교에는 Partents Social Club 이라는게 있다. 일종의 학부모 동아리 개념인데..학부모 누구든 관심있는 주제의 club 을 오픈하면, 또 원하는 학부모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활동이다. 처음 말레이시아에 와서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사귈지 조금 막막했을때..이 곳 저 곳 다양한 클럽에 기웃거린 덕분에 꽤 많은 엄마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8월, 못보던 새로운 클럽이 생겼다. 호기심에 이건 뭐지 하고 보니 '네트볼'이란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네트볼. 네트를 가운데 두고 하는 배구 같은건가? 하고 찾아보니 오히려 농구와 비슷한 개념이다.
코트 양쪽 끝에 골대가 있고 농구골대보다는 약간 낮은 높이의 골대에 공을 넣으면 득점하는 게임이다. 단, 양 팀은 7명의 선수로 구성되는데 각 선수마다 포지션이 정해져있다. 골키퍼, 골 슈터, 윙 어택, 골 디펜서 등. 네트볼 코트는 블루라인으로 세 개로 구획이 나뉘어져 있고 포지션 별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또한 정해져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무엇보다 공을 잡는 순간 드리블할 수 없다. 즉, 움직일 수 없고 패스 받은 후 3초 이내 다른 사람에게 패스해야한다는게 큰 특징이다.
위와 같은 설명을 대충 본 후, 뭔지 모르겠지만 어디 한 번 가볼까 하고 네트볼 첫 날 모임에 참여했다.
네트볼 모임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학교 체육관이다.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체육관 문을 여니..서양 엄마들만 한가득 있었다. 알고보니 네트볼은 영국과 호주, 홍콩에서 많이 하는 운동으로 참여한 엄마들 대부분이 영국, 호주 사람들이었다. 학창시절 했던 운동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렘 가득 친한 사람들끼리 온 엄마들이었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 'Hi~' 라고 인사하니 얼굴을 아는 몇몇 엄마들이 아는체를 해줬다. 하지만 이내 본인들끼리 속사포 랩과 같은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대화에 낄 수도 없고 조금은 뻘쭘한채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둥그런 원을 그려 다같이 서있는데 나만 멀뚱멀뚱.. 그래도 이내 나말고 또 멀뚱멀뚱해보이는 말레이시안 엄마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잠시 후 훈련 시작. 다행히 나 말고도 네트볼을 처음 접해본 엄마들이 꽤 있었기에 코치격의 엄마가 친절하게 룰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훈련을 이어나갔다. 공을 잡은 후 드리블하지 않고 공을 패스하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래만에 해보는 단체 구기운동에 꽤나 즐거웠다.
그 다음 주, 두 번째 훈련날. 체육관 문을 슥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친한 엄마들끼리 모여 속사포 영어 대화 중이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하니깐 혼자 작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향해 'Hi' 라고 인사했다. 아직은 낯선 엄마들이 대부분이라 본체만체하는 엄마들이 많았지만 인사를 받아주는 엄마들이 몇몇 있어 안도했다.
지난 주에 말을 걸었던 엄마가 아직 안 왔다. 혼자 또 멀뚱멀뚱 있기 어색해 스트레칭하는 척을 한다. 작년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엄마가 왔다. 정작 그동안은 말을 거의 해보지 않았던 엄마였지만 반가운 마음에 냉큼 말을 걸었다. 오늘은 두 사람씩 짝을 이뤄 패스 연습을 한다. 짝이 된 영국 엄마가 다정하게 이름을 물어본다. 나도 그 엄마의 아이들 학년을 물어보며 인사를 했다. 경기 중 쉬는 시간, 옆에 서있던 엄마가 말을 걸어온다. 사실 내게 말을 걸었다기보나 힘들다고 말하는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더니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새로운 엄마와 인사를 나눈다.
세 번째 훈련날, 오늘은 문을 열고 들어가 지난 주 인사해서 안면을 익힌 엄마들에게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지난 주와 다르게 엄마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해준다. 오늘도 훈련을 하며 엄마들과 조금씩 말을 나누고 인사를 했다. 한 명씩 짝을 이뤄 공격/수비 연습을 하는데 유럽 엄마들 키가 너무 커서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다. 166cm인 나는 한국에서 그리 큰 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은 키도 아니였는데...여기에서는 작은 축에 속한다. 175cm 가 훌쩍 넘는 엄마들이 내 앞에 서면 큰 장벽에 가로막힌 기분이라 도무지 슛을 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경기를 하는데 자꾸 버벅거린다. 아직을 룰을 잘 숙지하지 못해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코치 엄마가 내게 뛰어와서 룰을 설명해준다. 한 시간의 네트볼이 끝나고 엄마들이 오늘도 너무 즐거웠다며 단체 메신저 방에 각자 메세지를 남긴다. 나도 거기에 '네트볼을 열심히 연구해봐야겠다고' 한마디 남긴다. 나와 같이 배우는 중인 프랑스 엄마가 '좋아요'를 눌러준다.
네 번째 훈련날, 오늘도 늦지 않게 네트볼 훈련에 참여했다. 4주째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니 엄마들이 이제 나를 알아보나보다.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해준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조금 어색하고 뻘쭘했는데 이제는 많이 편해졌다. 만나면 자연스럽게 수다 떠는 엄마들도 몇몇 생겼다. 물론 아직까지 억양이 강한 영국 엄마들과의 대화는 어렵다. 오늘은 참여 인원이 많아 돌아가며 게임에 임했다. 잠시 쉬는 동안 엄마들의 네트볼 경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훈련이 끝나고 내가 찍은 영상을 단체방에 공유하며 나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ㅎㅎㅎ 그동안 영상을 찍은적이 없었기에 엄마들이 좋아라하며 고맙다고 말한다.
이렇게 꾸준히 네 번의 훈련에 더 참여했다. 이제는 엄마들과 자연스럽에 웃으며 인사한다. 체육관 밖에서 낮에 오고가며 마주칠때에도 알아보며 인사한다. 어색하고 뻘쭘했던 마음이 이제는 많이 편해졌다. 물론 여전히 영국 엄마들이 속사포 영어 대화를 할 때는 옆에 가만히 서있기만 한다. 아직 말 한마디 안 해본 엄마도 있고, 옆에 나란히 있어도 굳이 말 걸지 않는 엄마도 있지만..그래도 더이상 그들 사이에 있는게 민망하지는 않다.
다만, 나아지지 않는 나의 네트볼 실력이 이제는 부끄러워지 시작했다. 공을 패스받기 위해 빠르게 뛰고 자리를 선점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혼자 우왕좌왕한다. 우리팀 엄마가 던져준 공을 받기도 전에 나보다 키가 큰 엄마가 갑자기 공을 휙 가로채간다. 마음이 급해 뭐라도 해보려고 하면 또 룰을 까먹고 혼자 공을 잡고 움직이고 있다....경기 중간중간 심판이 자꾸만 내게 달려오니 민망하기 그지 없다. 이제는 네트볼 실력 향상에 집중할 때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네트볼'이라는 운동을 시작한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간다. 한국에서는 나름 E 성향의 사람이었지만, 이 곳에서는 언어와 문화의 낯설음에 처음 몇 주 동안 뻘쭘함을 극복할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나혼자 아무렇지 않은척, 심심하지 않은척, 외롭지 않은척하며 친한 원어민 엄마들 사이에 당당히(?) 홀로 서있던 나를 칭찬한다.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네트볼에만 집중하며 즐겨보자!
한국에 돌아가면 이 운동을 언제 또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