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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Jan 19. 2023

"서울 청년 13만 명, 은둔 또는 고립"

Warmest Regards

캄캄한 방 안에 스탠드 하나를 켜둔 채 가만히 앉아 있다.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가스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는데 그것조차 너무나 힘겹다. 단지 그것만 하면 되는데 그것을 하는 것이 나는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일어난 지 16시간째, 나는 일어나자마자 만든 블랙커피 한잔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지,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 왜 먹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내일을 기다리는 거라면 나는 차라리 먹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지 않겠다. 내일을 맞이하기에 내일의 나는 너무나 연약해 아마 부서질 것이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내일을 마주하겠지. 나에겐 내일을 보지 않을 어떠한 용기조차 없으니 아무런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오늘의 무게에 밀려 내일로 강제로 떠밀려가고 있다.


모니터를 한참을 응시하며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아무것도 없는 흰 화면만 계속 바라보고 있다. 제목과 내용을 적으라는데 나에겐 어떤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방금 유튜브에서 스치듯 보았던 이 제목을 제목에 적도록 하자. 나는 그다지 외롭지 않구나 13만 명이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니. 나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니,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에 캄캄한 좁은 나의 방안에 스탠드 하나의 불빛만을 의존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분명히 은둔 또는 고립된 그들 중 한 명이다. 나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13만 명의 모임에 이미 속해있다. 아까 그 기사를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즉석밥의 비닐을 벗겨내고 맨 손으로 밥을 퍼먹는다. 나는 혼자가 아니니 내일 또한 13만 명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무언가를 먹어야겠다. 전자레인지에 콘센트를 연결하고 돌리는 과정이 굳이 필요할까. 숟가락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맨 손으로 밥을 꺼내 그것을 뜯어먹었다. 딱딱하고 무언가 건조하지만 씹다 보니 쌀의 맛이 난다. 단맛이 난다. 쌀이 이런 맛이었구나. 항상 반찬에 밀려 그저 아무것도 아닌 밥 그 자체였지만 막상 밥 네가 온전히 식사가 되니 너의 맛을 나는 지금 느끼고 있구나. 맛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많이 진 밥을 먹듯이, 너무 설익은 밥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그거면 되었다. 나는 지금 밥을 먹고 있다. 쌀을 먹고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살기 위해 무언가를 먹고 있다.


아찔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루어진 3개의 느슨한 줄 사이에서 나는 광대처럼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줄들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기에 조심하지 않으면 줄에서 떨어질지 모른다. 줄 밑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아직 떨어져 보지 않았기에 아니 떨어질 용기조차 내지 못했기에 알지 못한다. 어둠이 무서워 스탠드 하나를 켜두었지만 막상 내 하루의 밑에는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감내를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밝아져 혹시나 그 아래가 보일까 그럴 때마다 나는 잠에 들어 그 순간들을 어떻게든 회피했다.


어제와 오늘 사이의 줄은 너무나 아슬하게 멀리 떨어져 있었다. 14시간 정도의 망설임 끝에 결국 점점 닳아 없어지는 어제의 줄에서 다시 만들어진 오늘의 줄로 나는 간신히 넘어왔지만 15시간이 지난 오늘의 줄이 또한 어제의 줄처럼 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내일의 줄로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떨어질 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아찔한 외줄 타기는 이대로 끝이 나고 나는 누군가가 바랐던 간절한 내일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루에 가치가 있다면 나와 그 사람의 하루에 대한 값어치는 너무나 다르겠지.


내일로 가야 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 숨어있던 나 지금의 나를 환한 빛이 쬐는 내일로 옮겨야 한다. 늘 그렇듯 결국 내일은 올 테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멈춰있고 싶다. 아니면 한 편의 영화처럼 이대로 열린 결말로 영화가 끝이 났으면 좋겠다.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지 않아도 좋으니 누군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결말이 엉망이더라도 좋으니 이대로 끝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다는 건 이 영화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럴 거면 왜 나를 이렇게 힘든 캐릭터로 만들었는지 말하고 싶다. 힘든 역경을 이기고 무언가를 이루며 자아를 실현하는 그런 멋진 주인공 이야기는 너무나 감동적이지만, 마치 '3년 후'같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없이 그 하루를 온전히 견뎌야 하는 나에게, 그 1,000일이 넘는 3년들 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하루하루들을 그들은 그냥 쉽게 테이크를 '3년 후'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간단하게 처리해버렸다.


캄캄한 방 안에 스탠드 하나를 켜둔 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본다. 남아있는 블랙커피 한잔을 마시다 보니 제목과 내용이 차 있는 글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까 본 기사가 머릿속에 멤돈다. 나와 같은 13만 명의 오늘의 줄들이 이제 점점 끊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지금 나의 오늘의 줄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 나와 같은 사람은 13만 명이나 되지만, 역시나 오늘도 나는 텅 빈 방 안에 혼자 우두커니 온전히 홀로 있을 뿐이다. 13만명 중 내일의 줄로 갈아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내일 "서울 청년 12만 9,999명, 은둔 또는 고립" 이라는 기사가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lvTuL5uXu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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