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an Mar 17. 2023

P와 J의 단상

단추와 단추구멍

[쿠바 여행기를 쉬어가며]


인간은 창작의 욕구가 있고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블로그와 싸이월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사진 찍고 글 썼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나도 정제된 글을 쓰고 싶었다.


쿠바는 낯선 나라이다. 그렇지만 나보다 앞서 많은 여행객들이 쿠바를 방문했고 현재도 여행 중이지만, 대게는 미국 유학 중이거나 남미를 여행하는 중에 들린 나라였다.

직장인이 연차를 내고 인천에서 쿠바를 방문한 여행자는 더욱 드물었기에 내 여행기는 꽤나 흥미로운 소재라고 으레 생각했다.


여행기를 쓰다 보니 내가 지나치게 정보 위주의 글을 쓴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게 그런 글은 이곳을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유익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하다. 나 역시 지난 글들과 반응을 보니 그러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아차, 소제목의 중요성도 빠질 수 없지. 아무리 여행기라도 각각의 에피소드를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이 중요하다. 오늘은 여행기를 쉬어가고 감상을 적고자 한다.


[MBTI]


몇 년 전부터 시작된 MBTI 열풍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4가지 분류방법인 혈액형에 이어 16가지 분류법이 나왔으니 신나지 않겠냐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학문적 근거를 제시하는 심리학, 정신의학박사님들에게 처참히 깨져버릴 유사과학이라고 치부했다.


나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그렇기에 유독 국가고시에 도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수년만에 다시 나타 곤했는데 수험기간 동안 그들은 E가 아니라 I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MBTI는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사회적 행동이라는 게 내 오랜 생각이었다.


지구촌 인구가 70억이 넘었는데 16가지 사람분류는 조금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5년 전에 나온 포켓몬스터의 1세대 포켓몬이 256종류였는데 사람 유형이 포켓몬보다 적다는 건 너무 하잖아.


첫 번째 숙소 | 본인촬영 | 1860년 이 집이 지어졌다. 스페인 시대의 고위관료가 살던 저택이라고 한다


[P와 J의 단상]


나는 MBTI가 결국 사회적 유형이라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그것은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모습과 관련 있다. 나는 직장에서는 철저히 J로 살지만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P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바나에 도착하기 전에 결정한 곳이라곤 숙소 2곳 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바나가 열악한 통신시설 덕에 각종 관광 상품이 특별한 인터넷 예약이 없다는 것에 기인하기도 했지만. 내가 계획한것이라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가 전부였다.


처음의 숙소는 시차적응과 여독을 풀어줄 수영장을 갖춘, 지은 지 160년 된 스페인 시대의 저택이었고, 두 번째는 말레꼰을 바라보는 평범한 까사였다.

* 까사 : Casa. 우리말로 하면 '집' 쿠바의 카사는 우리의 민박과 유사하다. 카사는 허가제로 운영된다. 나라의 허가를 받은 곳만 숙박업을 영위할 수 있다.

까사의 수영장| 본인촬영 | 수영장은 5년 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맑은 하늘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나는 마이애미 공항에서 노숙하는 6시간 동안 대략적인 여행 코스를 짰다. 그것은 모로까바냐에 가봐야지, 아바나 항에 가봐야지, 혁명박물관도 들리고 엘 플로리디따에 다이끼리를 마셔야지 하는 따위의 나열이었지 시간계획은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내 영역에 있어서는 완전한 P이다.


[단추와 단추구멍]


오랜만에 입사동기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사적인 얘기들을 했다. 연애는 어떤지 결혼은 언제 하고 싶은지 따위의 대화였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에게도 결혼은 언제쯤 할 것 같냐는 질문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난 연애중도 아니다)

내 대답은 가변적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P라서 계획이 없구먼? 하는 Y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P라서 무계획이 아니며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고 발끈했다. 단지 P는 여러 가지의 플랜을 두고 그에 맞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변적이라는 말은 배우자 될 상대가 결혼을 빨리하고 싶은지 결혼계획이 없는지, 시간이 더 필요한지 따위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는데 지금의 내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나는 반문했다.

(이 대화는 굉장히 친밀하고 즐거운 말투로 진행되었다 :D!)


Y에게 나는 굉장히 많은 옵션이 있다며 단추와 단추구멍을 설명했다.

나는 단추를 여러 가지 준비하고 있는데 상대방의 단추구멍이 무엇인지 모를 뿐이야.

Y: 그렇게 개성이 없고 다 맞춰주면 색깔이 없어

다 맞춰주는 게 내 색깔이고 개성이야

Y: 이야 말은 잘한다.

말이라도 잘해야지 허헣


그러자 H는 정말 감탄할 만한 말이라며 나를 치켜세웠다. 이어 말한 그의 말이 나는 더 인상적이었다.

사실 J는 계획형이 아니라 통제형으로 보는 게 맞아. 계획을 해서 실행하는 게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못 견뎌하는 거지 반면에 P는 유연한 것이고.


무계획 아니 유연한 나의 쿠바여행기는 다음편에 계속 이어진다.

말레꼰의 교복입은 학생들 | 본인촬영 | 무계획이던 학창시절이 그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