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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an 05. 2024

머리 큰 대학원생

직장인이 대학원을 갈 때

[왜 대학원에 왔냐고요? 심심해서요]


오랜만의 글입니다. 그동안 글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죠.

글은 참 마음의 거울과도 같습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정리가 안되어 있다면 아무 글도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단편적인 오락을 필요로 하지요. 폭식과 주말에 몰아자는 잠, 음주와 오락 같은 것들입니다.


독서와 글쓰기는 이런 어지러운 마음이 정리되고 시간의 여유가 될 때나 저는 그들을 찾습니다. 일주일에 혹은 한 달의 독서와 글쓰기를 목표치를 설정하고 완수하는 분에게 경외로운 마음이 드는 이유기도 합니다.


저는 23년 겨울방학을 맞아 쿠바에 다녀온 이후의 평범하지만 바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직장인의 신분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직장인 대학원생은 시간이 부족합니다. 일주일에 2번은 학교에 가야 하고 매주 할당된 과제물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야근과 회식 청첩장 모임과 결혼식, 가족의 생일 과 같은 경조사도 챙겨야 하죠.


제가 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원우들끼리(대학원생은 원우라는 호칭을 참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학부보다는 나잇대가 다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선배님 후배님 호칭을 더 좋아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말이죠)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이죠.

물론 대학원 입학면접용 질문과 실제 원우들끼리의 답변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학부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지금도 공공행정의 일을 하고 있으며 행정학이라는 학문을 좋아했습니다. 행정학 석사과정을 진학하려는 학생에게는 꽤나 보편타당한 대답일 것입니다.

저는 오랜 기간 연희동에 살았습니다. 타교생이지만 기회가 있다면 진학하고 싶은 학교였죠


그러나 실제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심심해서요' 2020년 2월 코로나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자 저는 큰 취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야구'였죠. 프로야구도, 제가 직접 하는 야구도 멈춰버렸습니다. 평일에도 야구시합을 하고 있던 저에게 한 팀에 9명, 18명이 모여야 시합이 가능한 야구는 코로나 시대에 적절한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대게 공공의 업무는 급여는 적은 대신 안정성과 '워라밸'이 비교적 훌륭한 직장입니다. 저 역시 6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는 여타의 평범한 직장인이었죠. 코로나 시대의 저의 취미와 친구들과의 모임, 저녁약속이 사라진 일상은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야구는 코로나시대와는 역행했던 운동이었습니다. 프로야구도, 직접 하고 있는 동호인 야구도 멈춰버렸죠.

그때 공교롭게도 저의 관리자는 공학박사를 끝낸 분이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제안을 했죠. 6시에 퇴근하고 할거 없으면 학교를 가라. 팀장이 유연근무 등 편의를 봐주겠다. 저는 한달음에 대학원 입학원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꽤나 노력해서 입학원서를 썼습니다. 만료됐던 외국어 성적도 다시 취득했고 이마저도 오랜만이라 점수가 낮게 나와 만족할만한 점수가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시험을 봤습니다.

기획실에서 근무하던 저는 요즘 애들답게 기관장님 보고 당당히도 추천서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비서실장의 반응이 잊히지 않는군요. 내가 비서실장 하는 동안 이거 써달라고 찾아온 직원은 네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습니다.(그와는 기획실에서 함께 근무하여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아무튼 꽤 단단한 준비 덕분에 저는 3곳의 행정학 석사 과정에 합격했고 그중 지금의 학교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꽤나 청사진을 그리고 입학한 대학원이었습니다. 장학금도 노렸고 우수논문도 노렸죠. 대학원에 진학하니 그 심심함이라는 것은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니들은 대학원 가지 마라]


1학기는 훌륭하였습니다. 우수한 성적에 논문계획서를 벌써 끝낸 열심인 신입생이었죠. 2학기도 부침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훌륭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한편 이때쯤 대학과 교수에게 크게 실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정답이 없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학자와 다양한 이론이 있으며 그 학자마저 초기의 연구와 현재의 연구가 방향성이 정말 다르죠. 그렇기에 구닥다리 이론을 무장하고 현재의 실체와 다른 주장을 하는 교수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때의 건설적이고 진실한 토론과 토의가 이뤄지기보다는 반론의 제기하는 학생의 발언권을 빼앗아 버리는 것으로 이 토론은 언제나 교수의 승리로 끝나곤 했습니다.


대학원은 학위를 취득할 때 당시의 이론을 가지고 이상을 얘기하는 교수와 최전선에서 실무를 맞닥뜨리고 있는 실무자들이 모이는 몇 안 되는 곳입니다.  그 이론이 최신의 것이면 좋으련만 짧게는 10여 년 전에 길게는 수십여 년 전에 취득한 학위입니다. 물론 몇몇의 훌륭하신 교수님들은 다양한 사례를 연구합니다만 대게의 교수들은 진영논리에 갇혀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게 좌든 우든 상관없이 말이죠.


 아무튼 그때쯤부터 학교라는 공간에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사행정은 학생들에게 다분히 불친절했고, 석사과정 중에 단순히 지식을 물어보는 4지선다를 기말고사로 제출하는 교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교수는 서술형의 문제를 제출하면서 수업시간 내에 배운 범위 내에 쓰고 다른 이론이나 관념을 제시할 경우 감점을 줄 것이라는 평가지침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20살 학부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기계적으로 학교를 출석했고 그 기간 중에도 출장과 야근은 계속되어 결석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또한 우리 대학원은 대학원으로서 드물게 상대평가를 실시하였습니다. 채점의 기준은 들쑥날쑥하였습니다.

이론가와 실무자가 만나는 공간 발언권을 박탈하는 방법으로 이론가는 항상 토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합니다.


[논문,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훌륭한 지도교수를 구했습니다. 문자메시지로 교수실에 와서 커피 한잔하고 가라는 그에게 저는 덜컥 지도를 부탁드렸습니다. 학기 중 지도는 4회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듯 지도교수께서는 평일 이른 오전이나 점심시간에 저를 학교로 불렀지만, 그래도 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대게의 특수대학원은 논문을 안 써도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한 학기 등록금을 더 내고 학점을 더 채우던가 졸업시험을 통과하는 방법 등이 있죠. 그러나 저는 논문만큼은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게 대학원을 유익하게 다닌 증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성적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논문을 통과하려면 졸업학점이 우수해야 하는데 저는 그 경계에 있습니다. 현재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논문이 통과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는 이를 타개하려는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그 노력을 기울일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지난 1년은 고민과 선택의 연속에서 성실하면서도 무기력하고 때로는 불성실한 모순된 삶을 살았습니다. 아마 논문을 쓴다고 해도 완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역시 만만찮은 업무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학이 찾아왔습니다. 편안하면서도 불안한 시간입니다. 이 기회에 다양한 글을 쓰면서 제 생각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멈췄던 쿠바여행기도 시작해야겠죠.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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