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회피형 리드가 생각하는 팀 본딩
숲속을 걷다 고개를 들면 나무들이 서로를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된다. 가지들은 서로 엉키지 않고, 보일듯 말듯한 선을 그리며 거리를 유지한다. 수관기피 현상이다.
지난 회고에 적었던 'ひとてま(히토테마)’의 뜻은 한 음반 업체의 상품 소개 덕분에 알게 되었다. 앨범을 큐레이션하고 판매하는 업체였는데 어딘가 특이했다. 수관기피는 그 업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을텐데 나무들은 서로 간격을 두면서도 멀어지지 않는 법을, 각자의 속도와 거리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고있다.
MBTI도 좋지만,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항상 애착유형 검사 이야기를 꺼내보곤 한다. 강요하지는 않지만, 다들 궁금한지 알아서들 해본다.
이 검사가 가혹한 점은 잘 나오지도 않는 1개 유형을 제외한 모든 유형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너희는 나무만도 못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500명을 한데 모아 드론으로 촬영하면 마치 수관기피처럼 보일 것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각자의 속도와 거리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법을 알기 때문은 아니다.
90년대에 잘못된 양육법이 유행한 건지, 사회가 팍팍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1년 동안 검사 시켜본 사람들의 70% 이상이 거부회피형이다. 나도 이거다. (유유상종일 수도 있다.)
전남친 때문에 이 유형을 끔찍이도 미워하게 되었다는 사람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생각나는 표현이 있다. ‘평생 본인이 뭐가 두려운지도 모르고 살 거다.‘
이 유형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거절, 그것도 가까운 사람의 거절이라고 한다. 거절이 두려워 애초에 가까운 사람을 안 만든다니... 정말 내가 그런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다.
두려움은 모르겠으나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전에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는 건 분명 있다. 이러한 고민이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소위 재는듯한 나쁜 태도로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후부터는 그냥 스위치를 끄고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때는 적당히 가까워지고 마는 게 일만 하며 살기에는 최고라고 생각했다. 업무상 건강한 거리 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만 하며 살기도 싫고, 최고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중간 관리자인 팀 리드의 성패에는 많은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난이도는 단 하나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다. 바로 권한이다.
권한이 깔끔하게 위임되고 철저하게 보장된다면 난이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물론 회사나 상사에 직접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이 요구 자체가 이미 난이도를 높이는 일이다.
지금 돌아보면 처음 리드를 맡았을 때에는 팀원과 필요 이상의 거리를 두었다. 너무 친밀한 관계는 일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전형적인 군대식 사고다.
권한 위임과 보장에 문제가 생기면 리드 이상으로 팀원이 힘들어진다. 이때 친밀한 유대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은 유대감 형성은 팀원들을 위한 배려와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가까워지고 마는 것은 직장에서조차 건강한 거리 유지라고 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업무 관계에서는 그런 걸 의식하는 순간 이미 멀다. 서로에 대한 존중만 있다면 언제나 간격은 있다.
수관기피 현상의 원인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지 사이로 틈을 만들어 아래에서 자라는 나무들에게 햇빛을 나누어 주기 위함일 것이라고 한다. 서로 병충해를 옮길까봐 그럴 것이라는 거부회피스러운 가설보다는 이 따뜻한 가설을 좋아한다.
두 달이 안 되는 시간 동안 4명의 팀원이 입사했다. 올해 초부터 회사에 다시 없을 끈끈한 팀을 빌딩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우리 팀에서 모두가 성장의 기회를 얻고, 더 나아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햇빛을 나누어줄 수 있는 팀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