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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획기 Jul 29. 2024

Everything Bagel

그리고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Everything Bagel


 올해 봄에 연희동을 떠나며 정든 가게들과 작별해야 했다. 밤에 닫는 가게에는 퇴근하고 다녀오면 되겠지만, 낮에 닫는 가게에는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싶다.


 낮에 닫는 가게 중에는 Everything Bagel이라는 베이글집을 좋아했다. 오전 1/4차를 쓰는 날이면 자주 들렀다 출근하던 곳인데, 베이글 이상으로 커피가 일품이다. 커피를 주문하면 빈 컵을 주고 원하는만큼 알아서 따라 마시라고 한다. 너무 맛있어서 항상 두 잔 마셨다.


 나는 ‘커피가 정말 맛있던 베이글집’ 외에도 ‘다음 날 코울슬로만 생각나던 바비큐집’, ‘백김치가 유난히 맛있던 칼국수집‘ 같은 것에 여지없이 끌리는 것 같다. 모두 연희동에 있는 집들이다.


 얼마 전 이사온 후 처음으로 1/4차를 썼다. Everything Bagel 생각이 많이 났다. 뜬금없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생각나지는 않아도 어떤 순간에 유일하게 생각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맡고 있는 서비스 때문인지 Every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꾸만 일 생각이 난다. 주말에 음악을 듣다가도 Everytime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월요일이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주말에는 철저히 이 단어에 대한 디톡스를 한다.


 최근에 바뀐 내 인생 영화는 이동진 평론가에게 5점을 받았다. 그러나 기대 이하였거나 딱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도 종종 그에게 5점을 받는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는 문제의 단어가 두 번이나 들어간, 왓챠 홈 화면에 항상 나오는 대표적인 주말 방해 영화다. 이 영화도 이동진 평론가에게 5점을 받았다.


 얼마 전 퇴근하고 연희동의 밤에 닫는 가게에 다녀왔다. 인생 영화는 따로 있지만, 이 영화 때문에 안 하던 일을 해봤다는 매력적인 소개를 들었다. 평론가의 별점보다는 마주한 사람의 이야기를 훨씬 더 믿는다.


 이 영화에는 느닷없이 Everything Bagel이 나온다. 모든 혼란과 아무것도 아닌 공허함을 동시에 담아낸 상징물로.



Waymond


 얼마나 많은 우주를 가로지른 후에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그리고 그 사람에게 받는 사랑이 특별함을 깨닫게 될까. 유일한 것도, 처음인 것도 모두 특별해보이지만 그런 것들은 결국 과거에 남는다.


 함께하지 못했기에 성공하였지만 “다른 삶이 있다면 함께 세탁소도 하고 세금도 내고 살고 싶다.”는 Waymond의 마음이 존경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Us and Them이라는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도 스쳐 지나갔다.


 20대에는 Reality Bites라는 영화의 “우린 담배 몇 개비, 커피 한 잔, 약간의 대화, 너, 나, 5달러면 된다.“는 대사를 참 좋아했다. 이 대사는 상대방의 ”맞아.“라는 호응으로 완성된다. 담배, 커피, 대화는 소박하지만 세탁소나 세금에 비하면 팔자 좋은 것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친절함이 전략이라는 주장이 처음에는 턱시도를 입고 말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궤변으로 들렸지만 마지막엔 그가 타인의 감정을 잘 살피고 자신의 욕구를 조절해가며 다정하면서 적극적인 태도로 문제와 맞서는 용감한 인물이라고 평하게 됐다.


 내가 미숙한 것들을 그는 웃는 얼굴로 해낸다.



Rocks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는 평을 들으면 떠오르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장면이 화려하거나 사운드에 압도되거나.


 영화에는 화려한 액션과 장면 전환이 많았다. 하지만 바람 소리만 들리는 절벽에 돌멩이 둘이 나란히 놓여있는 이도저도 아닌 장면이 나오고서야 비로소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봤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고 웃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고 울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절벽으로 굴러 떨어질 때 울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바람 소리가 들리자마자 울었다고 했다. 사실 마지막은 내 얘기인데 아주 살짝만 울었다.


 우린 왜 절벽 위의 돌멩이가 되어버린 후에야 솔직해지는 건지. 지난 기수 회고에도 솔직한 말이나 글을 내기가 참 어렵다는 말을 두 번 정도 썼던 것 같다. 이번 기수가 끝날 때쯤에는 돌멩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장난감 눈까지 있다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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