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유일한 마케터로서 살아남기
만 나이로 26세, 나이가 들수록 취업이 조급해지기 때문에 미국에서 인턴을 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 이유는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해외 체류에 대한 인식이 좋았고 외국에서 꼭 한 번은 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마케터로서 미국에서 인턴 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운 좋게 바로 미국 뉴저지에 있는 마케팅 인턴에 붙어 빠르게 출국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물론 해외에서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각오하였지만 다른 이유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회사는 미국 전역에 6개의 지부가 있고 매출이 나름 크게 나는 회사였는데, 히스패닉을 주 고객으로 하는 회사라서 나름 국적이 다양한 직원들이 모여있었다.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히스패닉, 중국인, 몽골인, 미국인, 일본인 등과 같이 근무를 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영어로 업무를 진행하는 환경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 있었다.
내 사수는 5년 차 마케터였고 한국분이셨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나오고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나를 무척이나 많이 챙겨주셨다. 단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나를 뽑고 바로 나가셨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의 의견으로 인턴을 뽑았는데 바로 퇴사를 했다는 것에 화가 났었다. 하지만 몇 개월 일해보니, 마케터로서 이 회사에서 몇 년을 버틴 점에 경이를 표하게 되었다.
우선 이 회사가 어떤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 훑어봤는데 마케팅이라기보다는 세일즈, 세일즈 서포트 쪽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디자인 = 마케팅이라고 생각을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막막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잠깐이지만 몇 번의 대화를 나눈 나의 사수는 마케팅에 큰 욕심을 가지고 있었고, 마케터로서 큰 성장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분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하기로 하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물론 경험이 적은 나였지만 전 회사에서 유능한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마케팅적으로 한 것이 없는 회사였기 때문에 오히려 할 수 있는 것은 많아 보였다.
비록 인턴이지만 진짜 marketing specialist처럼 내가 주체적으로 일을 찾아서 함과 동시에, 마케터로서 얻어가고자 했던 것을 얻어가는 것이 나의 숙제일 것이다.
이 회사는 흔하지 않은 포지션에 있는 회사였다.
기본적으로 Importer 였고 도매업자들보다 피라미드 구조상 위에 있는 포지션이었다. 해외 여러 곳에서 제품을 소싱을 한 후, 회사 브랜드 레이블을 붙여서 도매업자, 바이어들에게 판매하는 B2B 거래 중심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B2C (Business to Customer)도 진행을 하고 있었다. 아마존, 월마트, e-bay, 그리고 Shopify라는 미국 최대 규모의 E-commerce 플랫폼을 통해 자사 E-commerce를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회사에서 취급하는 물품의 범위는 타사들보다 굉장히 넓은 편이었다.
기본적으로 스낵과 음료를 파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알로에 주스를 포함한 여러 가지 주스, 사탕, 버블티, 젤리, 라면, 김, 만두, 떡볶이, 과자 등 정말 다양한 것을 팔았다. 사장님이 세일즈 출신이어서 전 세계에서 돈이 될만한 상품들은 모두 소싱해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제품 라인 각각 브랜드 이름이 다르고 로고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추구하는 브랜드 포지셔닝은 "건강한 음식과 음료"이었지만, 실제 판매되는 상품들은 건강한 음식과 음료와는 거리가 멀었다. 앞서 말했듯이 제품 라인마다 다른 브랜드 이름과 브랜드 로고를 사용하니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브랜드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 브랜드 이미지, 심지어 브랜드 기본 컬러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한 느낌이었지만, 미국까지 온 이상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얻어가고자 하는 욕심이 컸기 때문에 브랜드 기준의 마케팅 보단 세일즈의 느낌이 섞여 있는 제품 단위의 마케팅으로 접근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우선, 실제로 어떤 고객들과 거래를 하고 그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고 찾는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미국은 문화, 인종이 다양하고 국토가 넓기 때문에 지역도 고객 세그먼트에 있어서 한국보다 영향이 크다. 회사가 취급하는 물품도 다양하니 물품마다 고객의 유형이 크게 달라진다. 아쉽게도 회사의 데이터는 매출액, 어느 고객과 무엇을 거래했는지 정도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페르소나를 만들기에는 제한적이었다. 직원들을 잡고 물어봐도 모두 카더라 형식으로 대답해주었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인턴의 패기로 본사 세일즈팀 리더와 미팅을 신청했다.
(실제 내 메시지)
브라질 출신의 세일즈 팀 리더분은 실제로 굉장히 착하시고 온화하시다. 항상 바쁘시지만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고, 내가 질문을 우다다 쏟아내는 바람에 30분 넘게 걸렸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이 시간은 내가 추후에 어떻게 계획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모든 제품을 다 케어하기보다는 가능성 있는 제품 중심으로 전략을 짜자.
어차피 나 혼자 뿐이다. 나 혼자서 이 모든 브랜드들과 제품들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가능성 있는 제품들 위주로 계획을 세워보기로 하였다.
마케터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포지션은 영어를 나름 많이 사용해야 했다.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을 넘어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콘텐츠를 만드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사실은 지금도 똑같이 어렵다.)
내가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업무는 크게 다음과 같았다.
1. 제품별 tagline
2. 제품 설명 문구 (레이블에 들어갈)
3. 이메일 마케팅 콘텐츠
4. Customer Service
5. Food exhibition 관련 shipping company, show host 들과의 커뮤니케이션
6. 아마존, E-commerce 관련 콘텐츠
7. 소셜미디어 포스트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8. 알리바바, Rangeme를 통해 들어오는 세일즈 리드 응대 (Rangeme는 미국의 b2b 아마존인 셈이다.)
9. Meta Ads, Google Ads 광고 소재
10. 웹사이트, 랜딩페이지 관리 및 최적화
등등
나는 토종 한국인, 한국에서 나고 자란 대한민국 사람이다.
주입식 교육으로 영어를 배워온 나에겐 창의적으로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이 익숙지만은 않았다.
전 회사에서도 카피라이팅, 워딩 관련 업무를 맡았을 때 어려웠었는데 이제는 그걸 영어로 해야 하니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미국 뉴저지는 굉장히 조용한 동네이다.
한인들도 굉장히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아직 미국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가지 않는다.
실례로, 곧 우리 집 앞에 이바돔감자탕집이 생기며 곱창이 먹고 싶으면 대한곱창 뉴저지점을 가면 된다.
할매순댓국 뉴저지 점도 있다. 한국 음식이 그리울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표지판에 Halmae로 써져있음)
내가 있는 곳은 뉴욕 바로 옆이라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 회사보다 뉴욕이 더 가기 쉽고 가까우며, 회사에서도 뉴욕이 30분 거리이고 우리 집보다 가기 쉽다.
뉴저지에 있는 대부분의 모든 버스가 종점이 뉴욕이기 때문에 뉴욕 가기는 정말 쉽다.
사실 뉴저지는 사람 사는 동네 느낌이고 놀라면 뉴욕을 나가야 한다.
미국의 물가는 살인적이로 팁이랑 택스까지 하면 실제 지불 금액은 확 오른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라면 하나에 15달러면 "오 싸네" 소리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평일에는 퇴근 후 심심하기 때문에 집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마케팅 관련 자기 계발을 한다. 다행히 집 바로 앞에 한 달에 11달러만 내면 되는 저렴한 헬스장이 있어서 운동도 주기적으로 한다.
미국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살아남는지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후에 나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마케터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나에겐 큰 기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