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옷차림이 두꺼워졌다. 하얀색 와이셔츠 안에 검은색 히트텍을 입는다. 어머니는 히트텍을 입으면 와이셔츠가 더러워 보인다며 극구 말리시지만 멋 부리다 얼어 죽을 바엔 패션을 모르는 따뜻함을 선택한다.
반대로 집 앞의 나무들은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앙상해졌다. 이 계절이 다가오면 문득 사우나를 가고 싶다는 생각에 푹 잠긴다. 뜨끈한 탕에 들어가면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차갑고 시린 삶의 고단함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다. 조금은 느슨해진 토요일 오후, 사우나로 향한다.
온탕에 앉아 건너편 열탕을 바라보면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불뚝한 할아버지 몇 분이 눈을 지그시 감고 가만히 열탕의 온도를 누리고 있다. 그들의 무표정에서 희한하게 새어 나오는 개운함에 이끌리어 열탕에 몸을 담갔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뜨거움을 온몸으로 반기기에는 인생의 연륜이 많이 부족하다. 내가 못 견디고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옆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눈을 감으신 채로 한마디 하신다.
“가만히 좀 있어봐라”
탕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얼른 다시 탕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탕의 열기를 참았다.
‘어... 버틸만하네!’
열탕을 견디기 위해서는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면 어느새 그토록 뜨겁던 물이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도 똑같을 것이다. 뜨거운 현실을 살아내려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보단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힘들고 벗어나고 싶어도 가만히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적응하고 별게 아닌 것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힘든 순간을 잘 넘어 다음 챕터로 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