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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Apr 15. 2016

빗자루와 족발

인생이 이렇게 단순하다면

몇 달을 고민하던 무선청소기를 장바구니에서 삭제하고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샀다. 빗자루는 만 원짜리와 이만 원짜리가 있었는데 이 만 원짜리를 샀다. 이 만 원짜리를 사면서도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마트의 물건들을 보면 싸고, 종류도 많은데 제대로 된 게 없는 것 같다. 털을 쓸어보면서 옛날에는 물건들이 튼튼하고 좋았는데, 라고 남편이 말하길래 정말,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물건 같으면 너무 비싸고, 오래 쓰도록 만드는 것 자체가 시대에 흐름에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건지 합리적인 가격의 합리적인 물건은 만들지 않기로 약속이라도 한 모양이다. 뭐가 정신 없이 많아졌는데, 절대 아이템이 없다.   

세상은 정말 풍요로워지는 걸까.  

   

빗자루의 좋은 점은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실에 먼지가 보인다. 부엌 끝에 세워 놓은 청소기를 꺼낼 생각을 하면 일이 너무 크다. 무거운 것도 그렇지만, 방마다 다니며 코드를 꼽고 뽑는 게 더 큰 일이다. 어느 TV 광고처럼 청소기는 나를 괴롭히려고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니 우주에도 가는 마당에 이 코드를 해결하지 못해서야!! 까지 이르러 청소는 다음으로,,,,또 그 다음으로,,,,  

그러던 와중에 무선 청소기가 나왔다. 코드를 꼽지 않고 쓰윽쓰윽 청소할 생각에 매장에 바로 가보았지만 40분을 사용하고 12시간을 충전해야 한다고 한다는 말에 또 좌절했다. 그 이후에 몇 시간만 충전하면 좀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나왔지만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아아아,,,, 청소기 문제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에 비해 빗자루는 ‘저 먼지만 쓸어야지’ 하고 가볍게 마음먹고 부담 없이 비를 들었다가 거실 전체를 금새 다 쓸게 된다. 청소기보다 허리를 더 숙여야 하지만 무겁지도 않고 번거롭게 코드를 꼽을 곳을 계산하며 끌고 다니지 않아 가뿐하다. 다음을 걱정하지 않으니 머리도 가벼워진다. 심지어 청소하는데 돈이 들지 않는다. 원래부터 이렇게 공짜로 청소할 수 있었는데! 로 시작한 생각은 음모론에 이르기도 한다.  

  

(갑자기 빗자루 찬양론이 되어버린 듯 하지만) 어쨌든 나는 요즘 빗자루에 가격대비 매우 만족하고 있다. 더불어 뭔가 삶이 조금 심플해졌다고 느껴져서 기분이 단정해지는 것도 좋다.     


빗자루를 구입한 것만큼이나 오랜만에 족발을 먹었다. 사실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보쌈은 좋아했지만 족발은 이름부터가 거대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족발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무서운 음식이 아니었다. 설마 했는데 돼지 앞발이 실제로 있었다. 처음에는 경악했지만 이내 손으로 잡고 뜯어보기도 했다. 가루가 된 미꾸라지라 괜찮다고 해도, 오히려 실체가 안보이니까 미끌미끌 돌아다니는 것 같아 추어탕을 먹지 못했었는데, 족발은 눈앞에 돼지 앞발이 떡 하니 있느니 오히려 담담해졌다. 입에 흘려 넣는 국물에 뼈 같은 것이 씹힐 때마다 진실을 더듬어 알게 되는 것 같은 순서가 아니라, 너무 적나라하게 내 앞에 뼈와 살이 있어서 오히려 눈만 껌벅거리다 아,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오히려 눈앞에 전부가 보여서 안심이 되는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고 속임수는 없다.    


어떤 원리로 세탁기가, 청소기가, 텔레비전이 작동되는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그래서 무작정 신뢰할 수 없다. 이불 빨래 할 때마다 “이불 빨래” 모드로 맞춰 놓기는 하지만 통 안에 꽉 차는 이불이 어떻게 “이불 빨래”가 되는지 알 수 없다. 베란다에 널어 햇볕에 말리면서 남은 의구심을 상쇄한다. 모두 그러고 있지 않나요?    


빗자루는 내가 쓸고 있는 것이 전부고, 주워 담은 것들은 쓰레받이에 모두 모여 있다. 단순하고 안심된다. 쓰레받이에 담으며 흩날리는 먼지들도 햇빛에 보인다. 내가 잡지 못한 것도 보이고, 물론 담은 것들도 보인다.     


인생이 이렇게 단순하다면-  

나조차 SNS에 내보이는 것들은 전부 걸러진 것들이다. 솔직한 생각들은 많은 부분 비공개로 해둔다. 밉고 흉한 것들은 모두 걸러지고 예쁘고 보기 좋은 것만 기억으로 남고 만다.   

어느 교수가 말하듯이 모두가 소통하고 있는 듯하나, 아무도 말 걸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가 족발과 빗자루처럼 산다면 후지다고 촌스럽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나조차 거르지 않고 쏟아내는 말들을 솔직함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런 것들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것이 힘들어서, “이불 세탁”만 누르듯이 적당히 “좋아요”를 눌러놓고 안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햇살에 흩어지는 먼지들을 보면서 조금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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