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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May 14. 2016

보사노바 장어구이

기억에 남는건 미친척 떠났던 한 두번의 그런날들

일러스트@황인정


사업하는 남편과 결혼할 때는, 직장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더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정말 큰 착각중의 착각이었다. 아아, 자신이 사장이기 때문에 퇴근은 퇴근이 아니고, 주말은 주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자리를 좀 잡아서 쉬는데도 요령이 생겼지만, 4년 전만해도 남편은 항상 초긴장 상태였다. 왜 좀 더 이해해 주지 못했을까- 많은 것을 함께 지내온 지금에야 그렇게도 생각하지만, 그 때는 남편의 컴퓨터 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고, 타자 소리에 잠을 깨는 날들의 반복에 지쳐 나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하기만 하던 시절,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의 이야기다.
여동생이 회사 근처로 놀러 오라고 해서 데려간 장어 집은 호수 둘레에 있었다. 여동생이 차를 사서 드라이브를 하며 근교로 나가는 것만해도 들뜨는 일이었는데 학교 근처, 전철역 앞이 아닌 맛있는 것을 먹으러 운전해서 어디로 간다는 사실에 더욱 두근거렸다. 이런 곳도 안다고 자랑하듯이 주말엔 친구들도 데리고 갔다. 차가 있는 친구 두 명의 차에 우르르 나눠 타고 100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서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다들 어른이구나. 한 친구가 기분이라며 24만원이라는 큰 돈임에도 불구하고 한 턱을 단단히 내기도 했는데, 모든 것이 대부분의 우리에게 처음이고 사건이 되는 날들이었다.
장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예쁜 카페도 있다고 해서 우리는 다시 차 두 대에 나눠 탔다. 네비게이터에 입력할 주소를 나눠 갖고 출발했지만 내가 탄 차는 길을 잘 못 들어서 한참을 돌아와야 했다. 달리는 내내 ‘다른 차는 벌써 도착 했을 텐데? 왜 연락이 없지?” 농담 삼아 그 차도 헤매는 것 아니냐고 말하며 입구에 들어서는데 그제서야 함께 들어오는 친구의 다른 차. 차도 네비게이터도 있지만 아직도 서툴기만 한 초년생들은 서로 촌스럽다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헤매는 것마저 신나고, 어두워지는 밤이 즐거웠다.

당연히 나는, 남편이 생각났다. 어른스러운 호수의 풍경, 야외에서 굽는 장어구이, 꼭 와서 같이 먹고 싶었다.

남편은 12-1시 점심시간을 칼같이 지켰는데, 그날따라 그걸 알면서도 나는 고집을 피웠다. 가는데 30분, 오는데 30분 이미 오고 가는데 1시간이 넘어가서 점심시간 안에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다. 장어를 빨리 구워먹는다고 해도 2시간은 필요하다. 그런데도 우겼다. 빨리 다녀오면 된다고.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우겼다.
“퇴근하고 가면 되잖아”
“그럼 깜깜해서 호수도, 풍경도 아무것도 안 보인단 말이야. 가로등도 없어서 완전히 깜깜하대”

그렇게 끌고 가다시피 차에 태워 가서 장어를 먹고 호수 한 바퀴를 돌면서 나는 좋지? 하고 계속해서 물으며 조금 이상하게 굴었다. 1시가 지나자 휴대폰으로 돌려놓은 회사 전화가 계속해서 울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 여유를 부렸다. 출발 전까지 탐탁지 않아했던 남편도 울리는 전화에 다시 전화 드린다고 말하며 평소 같지 않게 느긋하게 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남편이 그 때 장어 맛있었는데, 하고 거의 4년 전의 장어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잊고 있었는데. 그렇게 가끔씩 내가 가자 해서 간 곳들이 생각난다 했다. 그 시절 남편은 자신이 생각해도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내가 너무 했지? 응, 너무 했었어. 나도 짚고 넘어간다.

그래도 그날, 서로 참고 양보하다가 조금 밀어부친 날, 신기하게 아구가 맞아 충돌하지 않고 꼬인 것이 풀리듯 안 되는 것이 가능했던 날, 갑자기 쉬워진 문제 풀듯이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던 날.
그렇게 그날 서로 인심 좋게 다녀왔다.

오늘 포털 사이트에서 추천하는 보사노바 음악 모음집을 듣고 있는데 그 때 먹은 장어와 며칠 전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장어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리듬인데 그 여름 한낮 장어를 구워먹던 12시가 생각났다.

남의 노래라고 여기는 것, 남의 시간이라고 여기던 것.
듣고 지나가서, 함께 다녀오고 지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해는 휴가도 없었다.
버스를 타고 부암동에 가서 오차쯔께를 먹고 온 것이 다였다.
보사노바를 듣는다. 기타도, 드럼도, 읊조리는 목소리들도 시치미를 떼고 어딘가의 해변에 있는 듯 노래한다. 누군가 해변의 모래를 담아 흔드는 듯한 쉐이커의 착착,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또 데리고 가줄게요.
바쁜 날이라도 미친 척.
기억에 남는 건 일년 중 한 두 번인 그런 날들.
차 안에 가득 보사노바 리듬을 채우고 장어 먹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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