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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Feb 25. 2024

시간의 질서

죽음에서 벗어난다면 뭘 하고 싶은가요?

방송인 유재석이 어딘가의 인터뷰에서,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끊었던 담배를 피우고 싶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디테일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웃자고 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소박한 대답이라 신기했다. 굉장히 노력하는 금연가라는 생각도 들었고.


서울아트시네마의 "2024 베니스 인 서울" 상영전에서 <시간의 질서>(릴리아니 카바니, 2023)를 봤다. 이 영화는 종말에 관한 영화다. 오늘밤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영화는 종말을 앞두고 뭘 할 것이냐는 질문보다는 만약에 오늘 죽지 않는다면 뭘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엔리코(남)는 마음을 바꿔 파올라(여)를 찾아온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중년의 남녀 (혹은 부부) 친구들이 바닷가의 별장에 모였는데 그날 지구로 소행성이 날아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지구와 충돌할지 비켜갈지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물들은 그간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 소망, 계획 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영화 내내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복잡한 마음으로 엉망진창이 된다. 그러다가 내일 아침에도 살아 있을 수만 있다면, 그동안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일을 해야지,라고 다짐한다. 누구나 물처럼 쓰던 시간이 값진 시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소행성 충돌이라는 전 지구적 사건이 생기지만, 멸망이나 소멸은 개인에게 늘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언제나 상대적이다.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척의 일생』을 보면 척이라는 인물이 사망하면서 척의 우주가 괴멸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 세계가 멸망해도 내가 살면 사는 것이고 세계가 유토피아로 변해도 내가 죽으면 끝일뿐이다. 이렇게 세계는, 인류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시간의 질서> 속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 또한 많은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이 일만 끝나면 좀 쉬면서 가족들과 뭘 해야지, 따위의 말을 하지만 대개는 지키지 않는다. (일은 늘 디졸브 되기 때문이다. 아니 대개는 삼중, 사중의 오버랩 상태다) 하다못해 건강검진이나 치과 진료를 앞두고는 '그래, 병원에 갔다 오면 카페에서 느긋하게 책이라도 좀 읽자'라고 생각하지만 병원 문을 나서며 일을 하러 가기 일쑤다. 어쩌면 나야말로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고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 늦기 전에.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방금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만난 사람들과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던 때가 말이다. 만약 이런 감정이 계속될 수만 있다면 층간소음이나 난폭운전, 뒷담이나 시기질투도 너그럽게 넘길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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