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었나 아니면 일본에게서 마음이 떠났나
90년대를 풍미했던 호조 츠카사의 만화 『시티헌터』를 떠올리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시티헌터>(사토 유이치, 2024)를 봤다. 하지만 그 옛날의 즐거움은 느낄 수 없었다. 시대가 변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시티헌터'는 사립탐정 사에바 료(한국명 우수한)와 카오리(한국면 사우리)가 펼치는 좌충우돌 액션과 18금 코미디가 즐거웠던 만화다. 가만히 있으면 진지하고도 멋있지만 (그걸 못 참고) 어느 순간 '불끈이'를 외치며 호색한으로 변하는 우수한에게서 유쾌함과 위악적인 솔직함을 느꼈다. 죽은 친구의 여동생 사우리와 남매 같기도 하고 썸 같기도 한 파트너십도 좋았고.
90년대의 나는 『시티헌터』같은 만화를 보면서 '성'에 대해 솔직한 일본이 좋았던 것 같다. 어디 『시티헌터』뿐이랴, 『짱구는 못 말려』의 초기 성인판도 그랬고 『드래곤볼』이나 『이나중 탁구부』같은 만화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런 토대 위에서 『열혈강호』같은 만화도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야한 걸 좋아하고 이런 감정을 드러내는 게 나쁜 게 아니구나, 솔직하고 좋은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당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자란 나에게 진귀한 경험이었다. 내 인생의 태도 자체를 바꿀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시티헌터』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니 취향이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유쾌하고 솔직했던 사에바 료는 이젠 그냥 변태 같았다. 카오리는 눈치 없는 여동생처럼 보였다. 일본에서 제작되는 만화 원작 실사영화의 끔찍함이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런 완성도 문제가 아니라, 사에바 료의 태도와 그 옆에 있는 카오리의 감각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간 유행을 다시 꺼내 보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 속의 우수한과 사우리는 이제 사라졌나 보다. 90년대까지는 괜찮았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