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묘지로 순례를 떠난 어머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존 포드 감독의 1933년 작 <순례여행 Pilgrimage>를 봤다. 이 영화는 고집쟁이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돌아보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아들 짐과 농사를 짓는 한나. 그녀는 아들을 끔찍이 아끼며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새 성장한 짐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매리가 있다. 한나는 그런 짐과 매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결혼을 반대한다. 그러자 짐은 집을 떠나 매리와 결혼하려 하고, 한나는 짐을 군대로 보내버린다.
예전에 동네에 아는 분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분의 아버지는 여자친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 몰래 입대신청서를 썼다. 그분은 대학에 가자마자 군대로 끌려갔는데, 심지어 육군보다 조금 더 복무기간이 길었던 해군이었다. 가끔 동네에서 그 양반이 하얀색 해군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걸 봤다. 정확하게는 언제나 공중전화를 걸고 있었기 때문에 서 있는 걸 봤을 뿐이지만.
그분이 무사히 전역해서 여자친구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별 얘기가 없었던 걸로 봐서는 무사히 제대하지 않았을까? 소말상초라는 말이 있으니 여자친구와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순례여행>의 짐은 내가 아는 분과는 달리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영화 속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시대로 모병관은 어머니 한나를 애국자라고 치켜세우며 흔쾌히 짐의 입대지원서를 받았다. 그리고 짐은 프랑스에서 전사한다. 더구나 매리는 임신 중인 상태였고.
이렇게 아들이 죽었는데도 독한 어머니 한나는 매리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고 자기 아들 짐과 똑같이 생긴 손자 리틀 지미도 인정하지 않았을뿐더러 (옆집에 사는 데도)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는 늘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사건이 시작된다) 미국정부는 전사자 어머니들을 모아 프랑스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전사한 이들의 묘가 여전히 프랑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나는 억지로 프랑스에 간다.
이게 무슨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처럼 변했는데, 정말 독하디 독한 한나는 프랑스에 가서 변한다.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와 매리에게 용서를 빌고, 리틀지미에게 할머니라고 불러달라 한다. 이렇게 끝.
이 영화는 33년도 흑백 영화다. 간신히 유성영화가 시작되었을 무렵의 영화. 스튜디오에서 굉장히 티 나는 세트와 와 배경막을 두고 촬영한 영화. 하지만 (아마도) 프랑스 로케이션을 떠난 영화. (진짜로 갔을까?) 존 포드의 미국적 세계관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한나는 짐에게 "할아버지가 인디언과 싸워서 지켜낸 땅" 운운한다. 그리고 "내가 너를 어렵게 키웠으니 너는 내 소유물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마치 <캐리>(브라이언 드 팔마, 1976)에 나오는 캐리 어머니 같다. 지독하게 청도교적인 생활이 선이라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가 되지 못할 바에는 군대로 보내버리고 아들 사진도 찢어버린다.
그런데 이 영화, 답답하지만 감동적이다. 분명 꽉 막힌 할머니가 등장하고 감독의 주제의식도 올드하기 짝이 없는데. 촬영이나 편집, 미장센도 30년대에 머물러 있는데. 생각보다 감동적이다. 열정적이고 변화무쌍하다. (심지어 난 눈물도 흘렸다.)
90년 뒤인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단편영화보다 훨씬 낫다. 이런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