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언처럼 들렸다.
뒤늦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미야자키 하야오, 2023)를 봤다. 이야기와 설정, 캐릭터들이 계속 바뀌고 새롭게 등장하는 통에 재밌게 봤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처음에는 <바람이 분다>처럼 보였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다른 세계로 들어가더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문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집대성이라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종합선물상자도 아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톤 앤 매너를 알 수 없었다. 웃긴 것 같은데 웃기지 않고 비장한 듯하지만 어설프다. 캐릭터들도 그렇다. 주인공인 마히토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고 마히토의 엄마와 새엄마는 자매 지간이다. 새(Bird)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밉상이다.
도대체 하야오 세계에서 웃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한 적이 있었나? 자신의 머리를 돌로 내리칠 만큼 악의를 가진 주인공을 본 적이 있나? 꿈과 모험, 낭만과 긍정이 사라진 하야오 마지막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할까? 모르겠다.
다만 마히토나 마히토의 큰 할아버지나 모두 하야오 본인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야오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마히토라면, 지금의 모습은 큰 할아버지다. 어쩌면 굳은 결의로 인생(혹은 예술가)을 시작했지만 지금 왠지 허무주의에 빠졌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 같다. 아니면 미야자키 하야오답게 진지하고 지난 인생을 반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굳건했던 그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인정하고 있나 보다.
언제나 하야오의 주인공들은 먼 길을 떠난다. 광야로 떠났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제니바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탔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처럼 마히토도 새엄마를 찾기 위해 떠난다. 알 수 없는 세계로. 슬픈 마음과 함께. 외롭지만 그때야 말로 진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성장한다. (이때 나오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좋다.)
나중에 시간 되면 다시 천천히 다시 보고 싶다. 어쩌면 영화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일 수도 있으니까. 바람이 멈추고 나면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날 수도 (아닐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