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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Jan 21. 2024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

저는 아직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얼마 만에 맞이하는 혼자만의 시간인지 모르겠다. 방학을 해도 집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기에 개인적인 시간은 한동안 꿈도 꾸지 못했다. 올 겨울부터 와이프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우리 집 둘째도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어 하루에 6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평소 하고 싶던 것들이 뭐가 있었을까. 날탱이로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있어서인지 거창한 일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지나가며 눈여겨보았던 음식점 가보기, 서점에서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책 고르기, 보기 힘들던 사람 만나기, 사놓기만 하고 읽지 못한 책 밤새 읽기, 보고 싶던 미드 정주행하기 등 실행 가능한 리스트를 만들었다.


대형 서점엔 누가 봐도 알만한 유명인들이 매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애써 관심을 끄고 내 취향에 맞는 작가를 찾다 불현듯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세상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여러 표지엔 저자의 엄청난 팔로워 수라던지 무엇으로 유명해졌는지 서로 자랑하기 바빴다. 그 화려한 빛 때문인지 내 뒤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 속엔 조명받지 못한 책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중 몇 권을 고르고 일주일 간 세 권을 읽었다.


뒤틀린 영웅들의 미드를 정주행 하곤 친구들에게 추천도 했으며, 멀리 사는 지인도 만났다. 새로 생긴 동네 음식점에서 제주우육면을 먹고 사진을 찍었다. 와이프에게 보내 자랑도 했고 커피를 마시며 동네 산책을 했다.                    


하루는 큰 맘을 먹고 차를 운전해 한 냉면집으로 갔다. 점심이라 사람들이 많았는데 혼자 자리를 차지한 것이 민망해 냉면과 왕만두를 시켰다. 주변을 바라보니 대화로 시끌벅적했다. 이곳은 내가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종종 찾았던 가게로 떠들썩한 대화 틈으로 옛 추억이 떠올랐다. 더운 여름 차가운 면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입맛을 꼭 닮은 나는 아직도 이곳의 냉면을 좋아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오질 못했는데 차가운 육수맛에서 아릿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눈시울은 금방 벌게졌지만 냉면은 계속 고갤 숙이고 먹어도 되니 아무 일도 없었다.


집에선 운동을 하고 커피를 자주 마셨다. 방안을 서성이는 시간들도 있었고 청소에 제법 공을 들였다. 내 하루는 충분히 길었다.




실은 모든 게 나를 붙잡아두는 일들이었다. 글을 쓰며 어느 순간 출간을 하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길을 알지 못하는 나는 갈팡질팡했다. 사례를 찾아보니 투고로 출간을 하게 희박한 확률과 사람들의 무관심을 뚫을 방법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방학을 맞이하자 출간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였고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무시 또는 정중한 거절과 희망적인 답변 사이에서 마음이 일렁였다. 욕심부리지 말자라는 되뇜은 지켜지기 어려웠고 나는 중심을 잡기 위해 다른 일들에 신경을 썼다. 그렇게 내 이야기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려 할 때 즈음 한 제안을 받았다. 모 출판사에서 내 글을 꼼꼼하게 읽고 장단점을 짚어가며 출판에 대한 의견을 준 것이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원고를 보완하고 출간 작업을 하려고 한다. 만약 순탄하게 출간이 이뤄진다면 모든 공은 글벗들에게 돌리고 싶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는 그분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지금은 탈퇴한 한 글벗의 마지막 인사가 떠올랐다. 내 책이 나온다면 저 멀리 서라도 책을 들고 기뻐할 것이라고, 내 1호 팬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겠다고.. 그의 말은 틀렸다. 오히려 내가 그의 1호 팬이었다. 아직 글을 붙잡고 있는 나는 그 말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


 



 




잠깐 자리를 비우려 합니다. 다시 글이 올라올 땐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응원해 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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