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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Apr 19. 2024

숨 가쁘게 지나간 2월(하)

조교로 일한 지 한 달 차

2월의 업무일지를 이어갑니다.


2월엔 행사가 많아 바쁜 달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조교로 임용되기 가장 괜찮은 시기는 7월인 것 같다. 시험, 성적공고 및 이의신청과 정정까지 6월에 이미 끝난 상태이고 행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겨울로 갈수록 바빠지는 것 같다. 수시와 정시 입시, 졸업, 입학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편에서는 행사에 대해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일들을 겪기도 하는지 톺아보려 한다. 내가 일머리가 좋지 못한 것인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게 참 많았고 그래서 사서 고생한 부분도 있다(이래서 사회생활을 많이 해봐야 한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이런 경험담이 필요할지 모르니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누어 봤다.


"조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학사력을 통해 어떤 일정들이 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 그다음엔 일을 손에 익히는 것. 적재적소 순서에 맞는 계획은 마음고생 몸고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


1. 수강신청

내가 속한 학교의 재학생 수강신청은 2월 초에 진행되었는데, 이 시기에 학생들이 문의하는 건 수강인원 증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전공(전공심화, 복수전공, 부전공)을 신청할 예정인 학생들에게도 문의 연락이 많이 온다.


수강신청이 진행되기 전, 이수기준 및 졸업규정에 대한 사전조사 

이수기준은 졸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졸업이수학점으로 '전공이수학점(기본), 전공심화, 복수전공, 부전공' 등 전반적으로 진행하며, 졸업을 위해 필요한 총 학점과 졸업규정에 대해 파악해 놓는다.

*졸업규정은 졸업식과 관련해서도 숙지가 필요할 수 있어 겸사겸사 알아두면 좋다


교육과정 개편사항에 대한 자료 파악 및 정리

학과 교육과정이 매년 동일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게 바로 나)

하반기에 교육과정 개편에 대한 회의를 진행해서 다음 해에 변경사항을 적용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갑자기 이수구분(예: 전공선택을 전공필수로 변경)이 변경되거나 새로운 과목이 개설됨으로 인해 혼란을 겪기도 한다. 하필 올해부터 바뀌어서 나는 내가 졸업한 학과에서 조교로 일하게 됐음에도 혼란스러웠다. 젠장.


개편된 교육과정은, 개편 직후 입학한 학생들에게만 적용된다. 이전에 입학한 학생들은 개편 전 교육과정을 따르기에 변경된 부분에 대한 숙지가 필요하다. 갑작스레 교육과정이 변경된 학생들이 수강에 있어 많이 헷갈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개편된 당해에 다른 학과에서 부전공, 복수전공을 신청하게 된 학생들이 수강신청 관련 문의를 많이 한다. 

(교육과정 및 다양한 교칙은 소속 학교에 따라 다르기에, '저 학교는 그런가 보다' 참고로만 봐주셔야 합니다. 아마 업무매뉴얼 및 학교 규정에 대해 볼 수 있는 안내페이지 등이 있을 거예요)


수강신청 관련 문의는 담당부서에 내용 확인 요청 -  학과 교육과정은 교수님께 의견전달 / 논의

수강신청 기간에 놀랍게도 학부모님 전화가 오기도 한다. 학생 대신에 어떤 과목을 신청해야 하는지 물어보시는 경우도 있었고 교육과정과 수강신청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시기도 한다. 솔직히 학생이었던 내가 봐도 학교와 학과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진전이 안 되는 게 많은 것 같다. 해결 가능한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는 분도 있는듯하다


조교 입장에서는 의견을 상위결재자에게 전달해도 해결되지 않으니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쏟아내는 분노를 담담하게 들으며 어르고 달래는 게 쉽진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결에 대한 여러 사람의 요구를 전달하는 것, 관련 규정으로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유관부서에 대책이 없는지 문의하는 것. 그리고 감정을 추스르는 것.



2. 졸업

졸업식은 전기/후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전기 졸업식은 2월, 후기 졸업식은 8월에 예정되어 있다. 보통은 2월 졸업생들이 많은 편이다. 졸업앨범비는 등록금과 함께 지불해서 이에 대한 환불 접수는 훨씬 전에 진행한다. 


졸업사정에 대한 회의 진행 - 졸업 대상 인원 보고

졸업 전 졸업사정을 진행한다. 졸업대상자 중에서 졸업시험 합격자와 불합격자, 학사학위취득 유예자(졸업유예)와 졸업자를 기재하여 학사팀에 보고해야 한다. 학부 교수회의를 통해 누락된 인원을 파악하고 올해 졸업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다. 보고 이후에 수정이 필요한 경우 학사팀에 변경 요청한다.


학사모, 학위복 대여 수요조사 / 학위증서 우편발송 희망자 조사

학위복 대여인원 보고에 맞춰 학교에서 학위복을 준비해 준다. 학위증서 우편발송을 원하는 학생들을 조사해서, 인원수대로 우편봉투와 라벨지를 수령한 뒤 학생 정보에 맞춰 포장 후 다시 교내 담당부서에 전달한다. 학위복 대여 시 공지를 확인 못했거나 뒤늦게 생각이 바뀐 학생들이 있을 수 있어 5벌 정도 넉넉히 요청한다.

* 학위증서 수령 및 학위복과 학사모 대여 전에 명단표 출력-검수: 수령유무, 대여 및 반납 유무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위증서는 배부 전 명단에 있는 인원 모두 출력이 되었는지, 개수가 맞는지 사전 점검한다.


현수막 제작 - OT현수막도 졸업식 현수막과 함께 준비하면 좋다(같은 2월에 있는 행사이기 때문)

학교에서 주로 제작을 의뢰하는 업체가 있다. 해당 업체에 졸업식 현수막을 의뢰하는데, 작년 현수막 디자인 파일 및 시안을 조회(없으면 업체에 문의)해보고 학부장 교수님과 논의 후 수정사항을 업체에 전달한다. 업체에서 수정해서 보낸 시안을 최종 확인 후 제작을 맡긴다. OT현수막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함께 진행한다. 


3. 입학식 - OT

입학식은 학교와 학생회에서 주관하는 게 많아 일정과 장소 안내 정도만 하면 됐다. OT가 문제인데, 입학팀에서 보내온 입학실적을 교수님께 보고하고 오리엔테이션(OT) 진행계획을 학사팀에 전달한다. OT준비 과정 중 학과에서 입학선물을 준비해야 할 수 있다. 2월에 예산회계 마감이기에 빠른 준비가 필요하다.


입학선물 및 제반도구 준비

입학선물 리스트를 추려 학과장님 상의 후 주문 진행한다. 업체선정 및 결제, 포장 모두 조교가 한다. 필요하면 학생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다.(입학선물세트를 혼자 만드느라 6시간 늦게 집에 갔다)

학과 학생회의 OT준비에 필요한 제반도구를 지원하고 OT계획 및 일정을 학생회장을 통해 확인한다. 학생회에서 OT 행사진행과 발표자료 준비를 도맡는다. 학생회와 연락하여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4. 예산회계 마감

2월 중순 ~ 말에 재무팀에서 예산회계 마감 안내가 왔다. 전월에 결의를 하지 않은 항목은 없는지, 이번 달에 집행해야 할 예산이 얼마나 남았는지 빠른 확인이 필요하다. 구매해야 할 리스트 및 구비해야 할 서류를 확인하여 결의서를 접수해야 한다. 예산실적을 확인할 때는 '작성 중인 금액'까지 포함해서 조회해야 한다.

만약 부득이한 사정으로 마감일을 못 지킬 것 같다면 빠르게 부서 담당자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최종 데드라인보다 앞서 마감일을 안내해 주신 경우에는 양해를 통해 미접수 결의서를 일부 받아주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5. 비교과 프로그램 신청

개강 전 교내 비교과 프로그램 주관부서에서 학점이 부여되는 강의를 개설하기도 한다. 학과 소속 교수님들께서 신청서 접수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출을 조교가 한다. 서류 제출 전 빠진 부분이 없는지 확인한 후 부서에 넘긴다. 전자결재뿐만 아니라 원본 서류를 직접 담당자님을 찾아뵙고 드려야 할 수 있으니 교내 메신저를 통해 여쭤보는 것이 좋다.


6. 등록금 납부

등록금 납부 고지서 출력 및 분납 신청, 납부연기 신청에 대해 안내해야 한다. 간혹 수강신청을 했음에도 등록금을 내지 않은 학생들이 있는데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초과학기 자거나 납부가 늦어지거나. 초과학기자의 경우 등록금 고지서가 늦게 발행되어 3월 중에 납부한다. 초과학기 납부기간만 준수하면 문제없다. 문제는 늦어지는 경우인데, 사정이 있어 늦어질 경우 분납이나 납부연기를 해야 학교를 다닐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수강신청은 했지만 등록을 안 한 경우 '미등록 제적' 처리되어 3월 중으로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과사무실 운영시간을 깜빡하고 근무 외 시간에 연락하거나, 일부 학생들은 주말과 늦은 밤에 연락을 하기도 한다. 당장 시급한 일이라면 답장하지만 웬만하면 근무시간에 답장하고 있다. 궁금한 건 이해하지만 시도 때도 없는 연락을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도 일단 답장을 해주기 시작하면 학생들 사이에서 "누구는 이 시간에 연락했는데 받아줬다더라" 이런 말이 나오기 마련이기에 정해진 휴식시간 없이 일하고 싶지 않아서 문의시간에 대한 주의를 주고 있다.


일을 하기 시작한 초반 1~2주에는 이런 것도 해야 하나? 내지는 내가 너무 오버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거의 하루 이틀을 제외한 매일, 방학 중 근무시간인 3시를 훌쩍 넘겨 8시에 퇴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3주쯤에 금방 고쳐먹었다. 늦게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내가 일을 잘 못했기 때문이거나 적응이 덜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였으니까. 문제를 나 자신에게서 찾으니 문제 될 게 없었다.


처음에는 내 손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일반 직장이 아니니, 조교 일이 쉬울 줄만 알고 내가 너무 일을 못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컸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일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지금은 내가 잘 못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일 잘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해야 훨씬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조교일을 하며 느낀 건데, 나는 수동적인 경향이 있어 주어진 것에만 집중하는 면모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태도가 일하는데 문제가 되기도 하더라. 수동적인 태도로 일하면 해야 할 일이 오히려 늘어나고 능동적으로 생각하며 일을 해야 몸이 편해졌다. 보다 더 점진적으로 나를 더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수동적인 사람인 것 같아 아직도 많은 개선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힘이 든다고 느껴지거나 부당하다고 느껴질 땐 "이게 내 일이잖아. 당연한 거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이런 생각으로 임하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몸이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다음엔 더 잘 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임했다.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갖는 순간 스스로도 힘들지만 팀 분위기를 악화시키는 등 주변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누가 봐도 부당한 일이 아니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냥 해치워버리는 게 사무실의 평화에 도움이 됐다.


정신없고 사고뭉치 자체였던 2월이었고, 3월도 크게 다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나아졌다는 데서 위안을 얻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4월로 많은 행사에서 벗어난 소강상태를 만끽하고 있다. 나른한 금요일 오후, 텅 비어있는 업무 알림 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여유로운 봄날의 햇살을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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