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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어도 일은 움직여야 한다

정답을 서둘러 붙잡지 않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

by 김태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일정한 단계를 차례로 밟아가면 도착할 수 있는 일종의 목적지처럼 상상하곤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고, 실행하고, 검증하는 식의 익숙한 절차가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실무에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문제의 형태는 늘 어딘가 불명확하고, 문제를 문제라고 인지하는 순간조차 서로 다를 때가 많고, 문제라고 생각한 지점이 사실은 문제의 표면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는 능력이고, 이 시간을 어떻게 버티느냐에 따라 결과의 깊이가 크게 달라진다.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빠르게 해결할수록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팀의 속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른 해결은 종종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고, 표면만 덮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그 문제는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다. 화면이 어색해 보이면 컴포넌트를 조금 수정하거나 색을 바꾸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사용자 인터랙션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버튼의 위치를 옮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위치를 정확히 보아야 하고, 문제의 위치를 보려면 그 주변을 천천히 걸어야 한다.


리서치를 하다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사용자는 스스로 느끼는 불편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할 때가 많고, 말한다고 해도 그것이 문제의 전부를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부분이 불편해요’라고 말했지만 실제 데이터에서는 그 지점보다는 이전 단계에서 더 크게 이탈하는 것이 확인되기도 하고,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실제 행동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문제를 이해하려면 말로 드러난 것만 보면 안 되고, 그 아래에 숨겨진 맥락을 천천히 감각해야 한다. 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문제의 유사품일 때가 많고, 진짜 문제는 그 근처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문제 근처에 오래 머무른다는 것은 손을 놓고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치열하게 관찰하는 시간이다. 문제의 경계가 어디인지, 어느 지점부터 흐름이 어긋나는지, 어떤 상황에서만 이 문제가 나타나는지, 누구에게 가장 크게 드러나는지 같은 것들을 반복해서 살피고, 가설을 세웠다가 흔들리고, 다시 다른 가설을 세우며 천천히 문제의 윤곽을 좁혀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답을 빠르게 내리는 사람에게는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 시간이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는 사람과 문제 근처에 머무는 사람의 차이는 경험이 쌓일수록 더 확연해진다. 빠르게 해결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찾은 원인이 정답일 것이라는 전제를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지만, 문제 근처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은 자신이 본 원인이 틀릴 가능성까지 포함해 사고한다. 그래서 이들은 처음에는 느려 보이지만, 정작 시간이 흐르면 훨씬 적은 수정으로 안정적인 결과를 만든다. 문제를 정확히 보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반복을 하지 않게 되고, 문제를 불완전하게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비스의 다른 부분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태도는 협업에서 특히 중요하다. 팀 안에서 어떤 문제를 논의할 때, 각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다르면 대화는 빠르게 소모적으로 변한다. 모두가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서로 바라보는 문제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해결책을 먼저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묻는 사람이다. 그 질문 하나가 팀의 시선을 모으고, 대화를 같은 자리로 끌어당기고, 문제의 경계를 다시 정리하게 만든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결국 팀 전체의 시선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지는 과정이고, 그 중심에는 문제의 위치를 정확히 보려는 태도가 있다.


문제 근처에 오래 머무르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견딜 수 있다. 상태가 정리되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고, 가설이 명확하지 않아도 조급함에 휘둘리지 않으며, 모르는 상태로 조금 더 머무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마음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겪고, 잘못 본 문제 때문에 되돌아온 경험을 여러 번 지나며 생긴 내구성 같은 것이다. 문제를 바로 해결하는 사람보다 문제를 정확히 보는 사람이 더 깊은 신뢰를 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실무에서는 문제 해결보다 문제 발견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문제를 잘못 발견하면 해결 과정은 전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문제를 정확히 발견하면 해결 과정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은 스스로 자리로 모여든다. 해결책은 문제가 정확히 보였을 때 이미 절반 이상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능력보다 문제를 오래 바라보는 능력을 더 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힘이고, 그 근처에 머무르는 태도다. 그 태도가 문제의 위치를 선명하게 만들고, 그 선명함이 결국 더 좋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문제를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은 느려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느림이 오히려 가장 빠른 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는 감각은 속도나 스킬보다 오래 가는 힘이고, 그 힘은 결국 일의 깊이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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