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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니 Dec 26. 2022

네가?

응. 내가.

“네가? 무슨 일이래.”

6학년이 되어서, 아니 초등 생활 6년만에 처음으로 2호가 수학 단원 평가에서 백점을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2호를 호명하며 마구 칭찬을 해주셨다고 했다. 반 친구들은 어리둥절해했고 그 중 꽤 많은 아이들은 “니가? 니가?”하며 믿을 수 없어 했단다.   


2호는 지금까지 학교 공부에 늘 중하위권이었다. 여러 가지의 이유들이 있었고, 그럼에도 명확한 이유를 말하기는 힘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학습적인 결과를 두고 혼을 내거나 재촉해본 일이 없다. 물론 관심이 없어서는 결코 아니다. 그렇기에 방관하는 일은 더욱이 있을 수 없다. 단지 성실함만은 꾸준히 얘기했다. 얘기를 하고 나는 늘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하거나 취하고자 하는 자격증 공부를 했다.

우리 집 6인용 식탁의 1/4만큼은 내 책상이 되었다. 사이사이 밥을 차리고 간식을 내어준다. 이 작은 주방의 한 평 가량이 땅으로 꺼질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오래 앉아 있는 곳이다.   

  

아이는 나와 여름 방학을 포함해 두어 달 지난 학년 수학 복습을 했다. 그리고는 9월 즈음부터 동네에 있는 수학 학원을 알아보았고 중단했던 수학학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는 제법 재미있다고 하며 잘 다녔다. 1학기 내내 40점대, 50점대, 그리고 최고로는 70점대를 한 번 받아보았다. 그런데 2학기가 되어 단원평가에서 매 번 80점대 후반을 찍더니 이번에 백 점을 받아온 것이다.


중 2, 1호는 수학을 좋아하기도 하고 늘 90점대, 100점을 받았다. 한 두 문제를 틀려도 무척 아쉬워했다. 그런 1호를 2호는 이해할 수 없어했지만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실은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90점도 너무 잘했다고 폭풍 칭찬을 해줄 일인데 본인이 시무룩하니 칭찬도 격하게 못해줬다. 아이들에게 특히 2호에게 말해주었다. 너와만 비교하라고 말이다. 그래서 40점을 받아도, 50점을 받아도 본인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올랐다면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6학년 1학기 때 2호는 자기가 반에서 수학 시험 본 것 꼴찌라고 했다. 나는 그만 푸하하하 웃어버렸다. “그런데 2호야. 너 저번 단원평가는 40점이었지? 이번에는 50점을 받았으니 반에서 꼴찌한거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너와만 비교했을 때 올랐잖아.” 2호는 “응. 그렇지”말하며 치킨을 시켜달라고 한다. 치킨을 시켜 먹으며 1호에게 2호 칭찬을 했다. “1호야. 2호가 저번 시험에 40점을 받았거든?(1호가 푸학 웃는다.) 그런데 이번에 10점이나 올랐어. 다음에 또 10점, 다음에 또 10점 오르면 정말 대박이지 않냐?” 1호는 표정관리가 안되는지 애를 먹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는 그 다음번 시험에 정말 60점대를 받아왔다. 나는 또 오버하며 “우리 2호가 엄마가 안볼 때 엄청 노력을 하나봐.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성적이 오를 수 있는 거야? 너무 기특해.” 2호의 어깨가 봉긋 올라갔다. “형아. 나 또 10점 넘게 올랐다.” 1호는 “그래서 몇 점인데?” 2호가 말했다. “어. 나 저번엔 50점이었는데 이번에 65점.” 1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나는 얼른 2호 뒤에서 1호에게 찡긋하며 박수치는 몸짓을 취했다. 1호는 당황해하며 “어. 잘했네.”한다.


이런 2호가 백점을 맞았다는 건 수시로 백점을 맞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기특하다. 얼마나 뿌듯하고 성취감을 맛본 귀한 경험을 한 것인가.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네가 포기하지 않고 할 걸음씩 걸어가니 이런 행복감을 맛보는 거야. 너무 대단하다.”말했다. “그런데 너무 자주 백점 맞지는 마. 그러면 이제 오르는 재미가 없잖아. 내려갈 일만 남는데 내려가면 기분 나쁠 것 아냐?” 하니 또 으쓱한지 어깨가 솟는다. 왜 이리 귀여운 지.

“그런데 1호야, 2호야! 당연히 맨 꼭대기에 올라갔다면 내려 올 일만 남은 거잖아. 그게 당연한 거니까 내려가더라도 실망같은건 하지 않아도 돼. 오르고 내려가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러니 1호야. 몇 문제 틀렸어도 엄마한테 자랑하고 마음껏 기뻐했으면 좋겠어.네가 애정하는 과목이라 아쉬울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잘 한거야. 결과에 너무 집착 말고 매일 성실하기 위해 애쓰자.” 아이들은 끄덕끄덕하며 맛있게 간식을 먹는다.     


2호가 백점을 받자 반 아이들은 “니가? 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어수선했단다. 안봐도 그려지는 이 그림에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누구랑 누가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다고 했다. 그런 친구에게는 “고마워~” 겸손한 답인사를 건네줘 보라는 팁과, “니가? 니가?”를 반복하는 그 아이는 네가 부러울 수도 있고 질투가 나는 걸 수도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나빴다기에 그렇다면 너의 기분 나쁜 감정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 내가. 열심히 했거든.” 당당하게 말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2호 왈 “꼽냐? 너도 백점 맞든가.” 라고 했단다. 오마야. 나는 그만 내 이마를 딱 치고 말았다.   

   

이 귀엽고 천진난만한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 멋진 어른이 되겠지. 아이들이 커 갈수록 오히려 사춘기가 될 수록 나는 이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이 아이들의 점수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나는 이 아이들의 성실함과 나름대로 하고 있을 노력을 격하게 칭찬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의 성취감이라도 맛보게 된다면 또한 폭풍 공감과 칭찬을 퍼부어 줄 것이다.

아이들에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해주는 말이 있다. 엄마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라는 속담을 제일 좋아한다고.      


선생님의 가르침에 숟가락을 살짝 얹어서 엄마의 보여주기식 공부는 계속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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