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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woo Apr 30. 2024

(호연지기2/2편) 호연지기와 부동심을 어떻게 키울까?

좀 깁니다.

2. 호연지기와 부동심을 어떻게 키울까?

ADHD는 주의력 조절 기능 결핍, 과잉 행동, 충동성, 감정 조절 실패 등 여러 어려움을 동반합니다. 호연지기와 부동심은 쉽게 동요하지 않는 대범한 태도와 흔들리지 않는 마음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 ADHD인은 주의력을 의도대로 조절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에서 쉽게 주의력이 분산되며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이때 호연지기와 부동심을 통한 흔들림 없는 마음상태는,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 집중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 많은 ADHD인들이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른 일일 계획표를 세우지만, 충동성으로 인해 계획을 지키지 못하고 목표를 이루지 못해 좌절을 경험합니다. 이때 호연지기와 부동심을 통해 자신의 비전에 신념을 가지면 인내하는 힘이 길러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호연지기와 부동심을 키울 수 있을까요?

“必有事焉而勿正,心勿忘,勿助長也”

“호연지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해야 하지만,

(1) 그 노력의 결과를 미리 기약(기대)하지 말고, 

(2) 호연지기를 키우고 싶은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하며,

(3)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1)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하지 말자.

지금의 도전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예단하는 모습은 모든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ADHD인은 그 생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생각에 매몰되어 곱씹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험까지 한달 남았는데요. 지금부터 열심히 한다면 가망 있겠죠?” 

공교롭게도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지백이 대화방에 올라온 고민입니다. (“가망이 있으면 하고 가망이 없으면 안 할 건가요?” 하고 되물었네요.)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불안한 마음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진단 전에는 내가 성공할 확률 등을 계산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후회한 기억이 있기에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지백이 1권의 “공부의 ‘유전’과 ‘확률’(p.156)” 꼭지에서 이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특히, 1년 이상의 공부 시간과 만만치 않은 학원비가 필요한 수능 준비나 공무원 시험 등 큰 투자가 필요한 도전일수록, 결과를 예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불안함이 더 커집니다. 더욱이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사냥꾼 기질이 가득한 ADHD인이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에 집중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또한, 합격해야 하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스트레스가 높아질 테니,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비례해서 커지지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성공확률이 낮다면, 지금의 노력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집중이 잘 안될 겁니다. 어차피 안될 거라면 노력하지 않는 게 차라리 현명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 겁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집중하지 못하고 결과를 예단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사실 보통의 ADHD인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ADHD성향을 방치하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ADHD인이 아닙니다. 지백이 등 필독서를 읽으면서 다양한 인지행동 치료를 실천하고,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적극적인 ADHD인입니다. 

지백이 1권과 지금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이라면 노력의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늘 정확하지 않다는 것,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확률이 아닌 자신의 올바른 판단이라는 것,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의 ‘역량’이 성장하기 때문에 부질없는 노력은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따라서 결과를 예단하지 말고 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 주변엔 긍정적 사고를 하고 성공만 떠올리며, 도전하고 쟁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거 반복된 좌절과 실패 경험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쉽게 떠올리는 ADHD인들은, 그런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괴로워하곤 합니다. 그러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우리에게 그런 쓰디쓴 과거가 없었다면 병원도 가지 않았을 것이고, ADHD를 진단받지도 않았을 것이며, 약물치료를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비교의 기준을 나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에 두지 말고, 진단 전의 내 모습에 두세요.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 성공적인 치료 과정입니다.)


(2) 호연지기의 의미와 그렇게 되고자 하는 마음을 잊지 않을 것.

호연지기를 키우고 싶은 마음을 잊지 않으려면, 먼저 그러고 싶은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동기를 만드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호연’의 기운이 가득한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겁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할수록,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호연’이란 무엇일까요? ‘호연’은 넓고 광활하며 강직하게 뻗친 기운입니다. 호연지기를 지닌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강한 상대 앞에서 또는 압박 받는 상황에서, 대범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당당한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호연지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스물 네 살의 어느 날, 저는 저를 호연지기와 비교해보았습니다. 이리저리 아무리 생각해봐도, 둘 사이의 거리는 매우 멀었습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정반대에 있었습니다. 작은 불편함과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반응했으며, 예상하지 못한 위기 상황이 생기면 필요이상으로 당황하면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생각에 매몰되어 집중이 필요할 때 주의력이 분산되기 일수였습니다. 멀리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일희일비했고, 정작 중요한 날에는 준비해온 만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도 없었고, 자존감도 낮았던 저는 ‘호연지기’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점점 더 간절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는 모습, 예상치 못한 위기에도 끌려 다니지 않으며 담담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 언제나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일관된 모습. 이렇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때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힘이 생겼습니다. 


☞ 롤 모델 찾기: 주변에 호연지기와 부동심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롤모델로 삼아보세요. 그들의 행동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면서 그렇게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주변에 없다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유명인, 위인 등을 롤모델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마음과 실천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맹자에 따르면, 호연지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에 ‘의(義)’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지요. 마음에 ‘의’가 쌓일수록 뚜렷한 실천으로 연결되며, 실천은 ‘의’를 더 강하게 합니다. 이렇게 내면에 ‘의’가 쌓일수록 그리고 행동으로 ‘의’를 실천할수록, 호연지기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렇다면 호연지기를 키우고 싶은 ADHD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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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음에 ‘의’를 쌓는 게 먼저 아닌가요?

Kwoo: 우리 ADHD인은 의지가 없어서,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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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을 때, 할 일을 계속 미루면서 딴짓에 빠져 시간을 낭비했던 경험이 많습니다. 

‘빨리 A를 끝내야 되는데(시작도 안함)’, ‘A하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라서, 지금 시작해도 늦었는데’, ‘A가 끝나면 B도 해야 해서 더 이상 A를 미루면 안 되는데’, ‘집에선 과제에 집중 안되니까 지금이라도 도서관에 가야 되는데’ 등등. A와 B에 해당되는 것은 중요한 시험 공부부터 설거지, 분리수거, 화장실청소 등 집안일까지 다채롭지요. 

하기 싫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머릿속에 제각기 여러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고 서로 충돌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머릿속은 복잡하고 바쁜 반면, 몸은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그래서 제3자가 보기엔 할 일 없는 여유로운 모습이지요. 

(학창시절, 부모님께서는 제가 한가해 보일 때면,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러면 저는 신경질부터 났지요. 할 거 많아서 시간 없는데 심부름 시킨다며 짜증을 부렸습니다. 어이가 없는 부모님께선 그런 저를 혼냈습니다. 당시에는 저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면서 억울한 마음이 컸습니다.) 


저는 누워서 놀면서도 미루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습니다. 제대로 쉬는 것도, 제대로 노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불편한 상태에서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 어떤 소리가 들립니다.


(잔뜩 밀린 공부를 오늘 하려고 계획했는데, 늦잠을 자고 일어난 상황)

옳은 소리: 

‘벌써 11시야? 아, 늦잠 잤네. 집에선 집중이 안되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나가야 돼.’ 

방해 소리 (1):

‘하지만 벌써 점심 시간이네? 밖에서 사먹는 건 비싸니까 집에서 밥을 먹고 가자. 돈을 아낄 수 있어.’

방해 소리 (2):

‘지금 나가봐야 왔다갔다하는 시간 빼면, 공부하는 시간은 얼마 안 돼. 차라리 집에서 공부하면 왕복하는 시간을 아끼고, 그 시간에 더 많이 공부할 수 있어!’

(집에서 공부를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오늘은 왠지 집에서 공부가 잘 될 것 같다. 그러나 배가 부르니 기합이 풀어진다. 결국 계획해둔 양의 절반도 하지 못하고 밤이 된다. ‘깼을 때 바로 나갈 걸’하고 예정된 후회를 한다. 이대로 끝나는 하루가 아쉬워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폰을 보며 시간을 낭비하다 새벽에 잠든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늦잠을 잔다.)


위처럼 마음에서 ‘옳은 소리’가 들리더라도, 곧이어 각종 이유를 대며 실천을 방해하는 ‘방해 소리’가 따라왔습니다. ADHD진단 전에는 내면의 이 두 소리가 거의 이어져서 들렸기 때문에, 하나의 소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성인이 돼서 성인ADHD를 진단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옳은 소리’와 ‘방해 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마음에서 ‘옳은 소리’가 들릴 때면, ‘방해 소리’가 따라오기 전에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위 상황처럼 늦잠을 자고 깼을 때, ‘왕복 시간에 두 시간이 넘다 보니 막상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되겠네. 그렇지만 어차피 집에선 집중 안돼! 고민하는 시간에 출발하면 벌써 도착했겠다!’하고 바로 실천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마음은 뿌듯했고 몸은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많은 경험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 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들리는 소리를 애써 부정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옳은 소리가 들리면, 바로 실천하세요. 지체하지 마세요. 어떤 방해 소리가 들리더라도,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막더라도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 혹시 기억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지백이 1권에서 ‘옳은 소리’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3초의 법칙’입니다.

☞ ‘방해 소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소리, 우리가 망하길 바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를 너무 생각하는 소리, 우리가 당장 편하길 바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시야가 매우 좁아서 멀리 있는 우리의 목표를 못 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취를 방해하는 이 소리를 따라간다면, 그 끝엔 늘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 조급해하지 않을 것 

아래는 지백이 대화방을 포함한 모든 ADHD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민입니다.

“약물치료 3일차인데 왜 효과가 없죠? 아무런 차이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음 내원은 2주 뒤로 예약되어 있는데, 내일 병원에 가서 증량을 요청해도 괜찮을까요?”

: 불안한 마음이 조급한 태도로 이어지면서 치료과정에 방해가 되는 모습.

“약물치료를 시작한지 한달 지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달라진 게 없어요. 제 삶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저에겐 약효가 없기 때문에 삶이 바뀌지 않는 걸까요?

: 수십년간 만들어진 모습을 약물치료 몇 개월로 크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조급한 모습.

저를 포함한 모든 ADHD인들은 기본적으로 조급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루한 걸 견디는 게 어려운 ADHD인은,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장하는 정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때, 마음이 조급하게 됩니다. (반대로, RPG게임에서는 캐릭터의 경험치가 수치 또는 막대그래프로 표현되기 때문에, 지루할법한 단순한 사냥과정 등을 잘 견딜 수 있지요.) ‘내가 하는 노력이 쓸모 없는 노력이 되는 건 아닐까?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함은 조급함을 점점 크게 만듭니다. (폰을 하면서 할 일을 미루는 등 어영부영 낭비한 시간에 대해선 관대하지만, 스스로 노력한 시간에 대해선 아주 엄격하게 따지려는 모순이 있음.) 

조급함은 ‘지금 하고 있는 내 노력의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닌지’하는 생각을 들게 하며, 집중을 방해합니다. 정말 집중이 필요한 시간에, 인터넷을 검색하고 여러 사람에게 상담을 요청하며, 집중력을 소모하고 시간을 낭비합니다. 조급함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계획을 이탈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차피 지키지 못하는, 일일계획표를 쓰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일일계획표를 쓰지 않게 되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워진 계획보다 당장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는데 급급하게 됩니다. 중간 결과가 좋지 않거나 기대만큼 성과가 없는 것 같다면, 초심을 잊고 굳은 결심으로 세운 목표를 이내 포기하게 됩니다. ADHD인에게 내면의 조급함은 그 어떤 외부의 위험요소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늘 조급함을 경계해야 합니다. 조급함을 다루기 위해선 먼저, 조급한 마음이 생기는 순간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심호흡을 10회 정도 하면서 머릿속으로 마음챙김 훈련을 계획하고 실천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판단 없이 의도적으로 재인지하는 과정에서 행동에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지백이1권에서 말했듯, 불안과 스트레스 관리에 마음챙김 명상이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많습니다. 그러니 꼭 ‘하양이’책을 통해서 평소 꾸준히 마음챙김을 연습해보세요. ‘수적천석’ 등 성실함을 강조하는 긍정적인 말들을 늘 가까이에 두면서, 소리 내어 혼잣말을 하는 것도 자신감을 가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서, 충분한 수면과 휴식은 말할 것도 없이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결국 마지막에 목표를 이루는 것은 성실한 태도입니다. ADHD인 역시 꾸준한 실천을 통해서 무엇을 목표로 하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목표를 향하는 길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달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 구체적 이미지 상상: 움직이지 않는 큰 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내 마음이라 생각해보자. 


3.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경험하다.

아마 저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제대하고 서울에서 두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이라 답할 겁니다. 약물 치료 1년차로서 과거 잘못된 가치관을 깨닫고 지난날의 과오를 바로잡고자 각성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했고,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대로 실천했습니다. 아무리 졸려도 책상에 엎드리지 않았고, 눈이 감기면서도 서서 졸음을 참았습니다. 재수종합학원을 다니며 가장 마지막에 하원 했고, 가장 먼저 등원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지속했던 것은,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이 시켜서 그런 게 아닌, 제 마음이 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수험생들은 연초에 당해 입시 상황과 자신의 스펙을 고려해서 입시 전략을 세웁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처음에 세운 계획대로 입시를 치루지 못합니다. 학원은 논술 강의를 팔아야 하고 학교는 합격 실적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수험생에게 스스로 생각해본 적 없는 학교와 학과에 지원할 것을 부단히 권유합니다. 공부한 결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기에,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모의고사에서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수험생들도 막상 모의고사 성적표를 확인하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자세로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을 쌓아야 하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생각에 없던 대학교를 찾아보고 입시 전형을 비교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이거 전형이 나에게 유리하네 불리하네 따져가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계속 보다 보면, 나도 지원할 대학교를 찾아봐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생깁니다. 그렇기에 사실 수험생이 초심을 유지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ADHD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가 갈팡질팡할 때, 묵묵히 정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당신이면 됩니다.) 

저는 수험 생활 내내, 논술 강사와 담임 강사의 상담과 설득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입시가 끝나는 순간까지 전략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모의고사 점수가 예상보다 높게 나온 날이나, 낮게 나온 날에도 ‘모든 것은 수능 날 결정된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되내면서, 침착 하려 했습니다. 주변에서 입시전략이라며 대학교를 찾아보고 입시 전형을 비교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 저는 오로지 수능 날 발휘할 수 있는 ‘진짜 실력’을 쌓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한문제라도 더 풀고 지문을 하나라도 더 공부하는 것이 ‘진정한 입시 전략’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렇게 입시가 끝나는 날, 저는 웃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부화뇌동(附和雷同)하던 모습에서 부동심(不動心)의 자세로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약물치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빡빡한 일과를 실천하는 하루가 매일 반복되면서, 내부에 호연(浩然)의 기운이 쌓였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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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수험생이 아니니까 위의 이야기는 나랑 상관없네?’

☞ 성인이라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 서술한 과정은 단지 입시에서만 보여지는 양상이 아닙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자신만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의 상황을 고려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며, 그로 인한 조급함과 불안함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정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쟁취할 수 있고, 혹여 아쉽게 이루지 못했더라도 노력한만큼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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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능 날 에피소드

수능 날, 점심 도시락으로 카레를 가지고 갔습니다. 국어 시험과 수학 시험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열었는데 숟가락과 젓가락이 없었습니다. 깜빡했던 겁니다. 같은 시험장의 초면인 수험생들에게 남는 수저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아무도 여분의 수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 와본 학교였지만 급식소를 어찌어찌 찾아갔습니다. 감독관 선생님들의 점심 식사 때문인지 다행히도 급식소가 열려 있었고, 상황을 설명한 뒤 수저를 빌렸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식사를 마쳤고, 마지막 시험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락에 수저가 없는 것을 알았을 때, 이전의 저라면 당황하면서 우왕좌왕했을 만도 한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차분했습니다. 시험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과 문제가 나왔을 때도 그날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호연지기(浩然之氣)라 생각됩니다. 


☞ 실전에서 예상치 못한 일로, 준비한만큼 실력발휘가 안되는 ADHD인에게.

“당황하지 마세요. 당신만 그런 거 아닙니다. 지금 그 자리에서 당신과 같은 상황을 마주한 모든 사람들은 당혹스러울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모두가 당황할 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건 호연지기입니다. 실전에서 잘하기 위한 실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전에서 잘하는 것도 실력입니다.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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