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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 Jan 31. 2023

00. 핀란드에 살면 나도 행복할까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에서 나는 왜 불행했을까

헬로(HELLo) 핀란드!


그땐 몰랐다. 그저 아름답기만 하던 헬싱키(Helsinki)의 풍경이 나에게 선사해 줄 헬(HELL)월드를.

눈이 예쁘게 내린 연말의 헬싱키 풍경

2019년 8월, 한국에서의 2년 6개월 간의 짧지만 강렬했던 첫 사회생활을 마치고 나는 무지성으로 핀란드에 눌러앉았다. '남자친구가 태어난 나라를 저도 경험해보며 남자친구를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싶었어요'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는 대외적인 답변이었고 진짜 이유는 '그냥 한국이 답답해서'였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로 9년 만에 가장 출생아가 많았던 92년에 태어나 박 터지는 경쟁에 29년을 시달리며 살아온 나는 그냥 한국사회에 정이 아주 딱 떨어졌었다. 경쟁을 하기 싫은데 자꾸 경쟁을 하고 있었고, 내 시선은 항상 누구보다 빠르게 주위를 스캔하고 있었다. 이건 거의 살아남기 위해 내 DNA에 새겨진 생존 기능이었다. (자유자재로 On/Off가 안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자존감은 낮으면서 자존심은 높아서 자꾸 내 아래 누가 있는 것 같아야 맘이 놓였고, 내 위에 누가 있는 것 같으면 주눅이 들었다. 내가 하기 싫어도 이런 비교가 오토매틱으로 일어나는 환경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고, 사주를 보러 갈 때마다 들었던 '역마살'과 '해외에 나가야 잘된다'는 얘기는 결국 나를 움직였다. 그렇게 난 부푼 마음으로 핀란드로 떠났다.


도착해서 마주한 핀란드는 조용하고 희한한 나라였다. 사람들은 침묵을 즐기며 겨울은 더럽게 길고 어두워서 객관적인 환경만 놓고 보면 기분 부전 장애가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핀란드는 2019년부터 무려 4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 1등에 선정되었다. 물론 여기서 '행복함'은 GDP, 사회 보장제도, 건강한 수명 같은 객관적인 지표뿐만 아니라 얼마나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freedom to make your own life choices)나 사회적 관용과 같은 항목의 주관적 평가도 포함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매일 빵끗빵끗 행복하게 웃고 다니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겨울에는 집에 우환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더 많다. 모든 핀란드인들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사교적인 성격이라고 느껴지는 이웃나라(스웨덴, 덴마크) 사람들과는 다르게 핀란드 사람들은 스몰토크를 싫어하고 필요한 것 이외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도 잘 안 한다. (본인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나는 처음에 그래서 내가 핀란드에 왔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줄 알았다. 사회가 너무 배타적이며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너무 어려워! 같은 변명을 나자신에게 늘어놓았다. 실제로 도착하자마자 6개월 만에 코로나가 터졌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도 했지만 사실 이건 ‘진짜’ 이유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30이 다 되도록 나는 나를 몰랐다. 진짜 밑바닥에 있는 나 자신과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고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나라고 철떡 같이 믿고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어떤 걸 할 때 잘하고 행복하며, 어떤 기준으로 사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도 한없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새로운 모험과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상당한 (경기도) 오산이었다. 나는 변화에서 오는 스릴보다는 아는 것들, 아는 맛들이 주는 안정감이 좋은 ‘파워 K-집순이’였으며, 새로운 사람들이 주는 짜릿함보다는 아는 사람들과 했던 얘기 또 하는 게 좋은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아직도 알아가는 중이므로 나에 대해서 완전히 단정짓지 않으려고 한다) 짧은 교환학생 시절과 늘 로맨틱했던 여행 경험들로 외국에 나가서도 잘 살 거라는 ‘이민각’을 아주 한참 잘못 재버린 것이다.


그래서 3년 전 한국에서의 나처럼 '한국이 너무 지겹다. 외국에 나가면 좀 다르지 않을까'와 같이 막연하며 (사실은 이민을 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한)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 또는 머리가 조금 크고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후 환경을 바꾸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나의 핀란드살이 3년 ‘초기 경험담’을 공유하고 싶다. 아직 실패 또는 성공 어느 것도 하지 못했으니 그냥 ‘경험담’이라고 부르는 것이 알맞겠다.


이미 이민을 오신 분들이라며 계신 분들이라면 '아, 나만 이렇게 헤매는 건 아니구나‘ 하며 작은 공감이나 안도감을 얻으실 수 있겠고, 지금 이민을 고려하고 계신다면 '아, 이런 고민은 좀 더 진지하게 해 봐야겠구나' 하는 생각거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끼띠 모이 (Kitti Moi)

(*핀란드어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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