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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 Mar 06. 2023

01. 학교는 네가 아니야. 너도 학교가 아니야.

핀란드 학생들의 행복 공식? 정답이 없는 공부를 하기 

왜 나는 OECD국가, 아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핀란드에 와서 살면서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2022년 세계 행복지수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OECD 38개 국가 가운데 한국의 행복지수는 36위였다.)


정답은 조금 뻔하지만, 나는 핀란드라는 나라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핀란드에 와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핀란드 물을 하루에 2리터씩 마신다고 슈퍼 경쟁적인 DNA를 가진 한국 사람으로 살아온 지난 30년의 세월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당연한 진리를 핀란드에 막 도착했던 지난날의 나는 아주 사뿐히 무시해 버렸다. 
 

처음엔 내가 자라온 사회와는 아주 다른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사는 핀란드인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일 년에 5주를 쉬어도 사회는 잘 돌아가는구나. 나는 왜 한국에서 고작 1년에 1주일의 휴가를 쓰기 위해 그렇게 큰 죄책감을 느꼈어야 했지?"와 같은 종류의 이제 막 회사를 퇴사한 직장인이 할 법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은 그냥 '이방인'이 한 달 살기 비슷한 것을 하고, 그 사회에 대해서 아주 얕은 관찰을 한 후 얻은 '한 줄 감상평'에 지나지 않았다. 첫 3달, 4달은 내가 떠나온 나라와 다른 것, 새로운 것을 보고 비교하고 관찰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건 관찰(observation)인 것이지 내가 그 문화와 가치관을 흡수하고 받아들이는 것과는 천지 차이로 달랐다. 오히려 그런 관찰의 기간이 지나자 나는 얼마나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적인 정서가 핀란드 사회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 라이프 스타일과 이질적인지 더 선명하고 아프게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나는 방수가 아주 잘된 고어텍스 워터프루프 재킷 위로 흘러가는 물방울처럼 핀란드 사회에 섞여들지 못했다. 



3개월이 지나자 나는 미친 듯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 내가 여기서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지금 나랑 같이 일했던 동기들은 다 연봉은 얼마 정도 벌고 이 정도의 일을 하면서 회사에서 훨씬 인정받으며 자리 잡고 있을 텐데 난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지어낸 것 같지만 정말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강박적인 생각들이 내 머리와 귓가를 맴맴 돌았다. 귀에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학교 생활을 했으니 학교 생활이 즐거울 리 없었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으며, 정해진 출근도 퇴근도 없는 그 귀중한 시간을 나는 늘 누군가에게 쫓기듯이 보냈다. 그 시간들을 제대로 온전히 즐기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뭔가 내 머릿속 프로그램이 단단히 잘못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학교에서 만난 핀란드 친구들의 몇 가지 모습들은 지난날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핀란드에 온 후, 처음 1년 반은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며 학교에서 보냈다. 비록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인 역병 탓에 학교 캠퍼스에서 실제로 핀란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시기는 매우 짧았다. 돌이켜보면 '친구'라고 편하게 연락하고 부를 수 있는 핀란드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학교 프로젝트를 통해서 핀란드에 사는 학생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마인드셋으로 공부를 하는 지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만난 핀란드 친구들도 물론 사회 전체의 핀란드인들을 대표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관찰 1) 대학의 역할: 도구 vs. 목적 

핀란드
 - 성적을 맞춰서 어떤 대학의 어떤 과에 가는 것보다 자신이 관심을 두는 분야의 공부를 위해서 또는 관심 분야를 찾기 위해 대학교를 고른다. 대학교는 대학교일 뿐 개인을 설명해 주는 큰 키워드가 아닌 것 같음.

한국 - 일단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일 순위이다. 가서 전과하면 된다. 대학에만 들어가라!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11학번인 내가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이다. 돌이켜보면 좀 무책임한 얘기였다.) 

핀란드에도 대학이 주는 네임밸류가 당연히 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느 정도는 다 비슷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이름이 그 사람에 대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다이내믹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았다. (물론 한국처럼 사립대학교가 압도적으로 많은 구조와 거의 모든 대학교가 나라에서 운영하는 핀란드의 환경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대일 비교는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대학의 타이틀이 학생들의 인생에서 가지는 무게가 한국과 비교해서 훨씬 더 가볍다고 느껴졌다. 

그 차이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핀란드 친구들은 고등학교 시절을 전부 대입을 위한 공부로만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말 부러웠다. 대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고등학교 시절 어떤 활동을 하고 보냈는지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속으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친구들과 댄스파티를 하고, 관심 있는 취미를 개발하며 학업 외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해 보면 친구들과 깔깔대며 즐겁게 웃었던 추억은 많지만 공부가 나의 주된 활동이었다. 8시에 시작해서 저녁 10시까지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서 보냈다. 수학 문제에 대한 답을 모르겠어서 머리를 싸맸던 적은 있지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또는 나는 어떤 인간인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팠던 기억은 없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나는 당시 최고의 붐이었던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1학년 첫 야자시간에 집에 있었던 영어로 된 커다란 책을 학교에 가져갔다. 문제집이 아닌 이상한 책을 책상 위에 딱 펼쳐놓고 읽고 있는데 굉장히 외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어, 얘는 뭐지?' 당황하는 야자 감독 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뭔가 그 창피했던 마음에 나는 얼른 그 책을 집어넣고 그 뒤부터는 문제집이 아닌 책은 3년 동안 잘 읽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때 했던 공부들이 내 머릿속에 모두 남아있냐 하면 절대 아니다. 지금 보면 그때 문제집만 보지 않고 좀 더 다양한 책들을 읽었더라면 훨씬 더 세상과 나에 대한 레퍼런스가 많아서 덜 헤맬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한국의 학생들은 10대 후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쌓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본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사는 것 같다. 그에 반해서 핀란드 친구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이미 어느 정도 본인에 대한 탐구를 마치고 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본인의 필요에 의해서, 본인이 어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지가 아주 옅게라도 자리가 잡힌 후에 시작하는 것이 이미 대학생활의 성질을 다르게 한다. 


반면 나는 성적 맞춰서 온 과를 다니며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생활 내내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 혼란스러움을 마주하기보다는 대학에 와서도 피하려고 했다. 전공도 부전공도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학점을 잘 받아야 해'라는 이유로는 도저히 나 스스로를 동기부여 시킬 수 없었다. 그냥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고 나를 몰아붙이거나 아니면 그냥 모든 걸 무기력하게 놓아버렸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성적은 학사경고를 받을 만큼 간당간당한 수준이었고 수업도 제대로 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가 좀 많이 불쌍하다. 한국의 학생들이 불쌍하다. 좀 더 그들이 빨리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이 행복한 사회구성원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대입을 위한 지식 외우기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학생들이 온실 속 fail-proof한 진공의 환경에서 지내기보다는 자꾸 시도하고 또 실패하고 깨지며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일찍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10대를 보낸 사람들의 30대, 40대는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상상만 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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