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면서 가지게 된 마인드셋
지난 브런치글을 쓴 지도 몇 달이 지났다..
오늘은 핀란드에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외국 살이를 하며 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마인드셋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최근에 내가 꽂힌 키워드는 #내면소통이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의 책 '내면소통'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개념인데, 외부적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만큼 우리가 내부의 자신과 어떤 소통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하는 외부와의 소통은 내면소통과 크게 다른 형태로 일어나지 않으며, 크게 보면 자신에게 하는 소통을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하게 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좀 어려운 책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어서 추천한다.)
나는 이 내면소통의 중요성을 핀란드에 와서 크게 깨달았다.
가족, 친구, 친한 직장동료들이 늘 주변에 있었던 한국에서는 나 자신과 얘기할 시간이 정말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기보다는 나 자신과 얘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핫플레이스도 가야 하고, 쇼핑도 해야 하고, 직장 얘기도 해야 하고, 콘서트도 가야 하고... 정말 끊임없이 어딘가를 가고, 사고, 듣고, 얘기하며 외부의 것들을 소비하고 또 소비했다. 나의 하루를 채울 것들이 주변에 차고 넘쳤다. 아마 조금이라도 조용하게 생각을 하는 시간은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창 밖을 보면서 사색에 빠지는 5분? 10분? 이마저도 그저 피곤한 날에 창문에 머리를 꾸벅이며 졸았다.
그런데 핀란드, 그러니까 서울보다 훨씬 덜 다이내믹하고 한마디로 노잼인 나라에 이사 오고 나서는 그렇게 끊임없이 소비하며 나를 채우던 것들의 공급이 뚝 끊겼다. 만날 친구도, 같이 얘기할 주제도, 꼭 먹고 싶고 가고 싶은 핫플레이스도 마치 모두 한 여름밤의 신기루였던 것처럼 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들이 없어도 온라인 가상의 공간으로 도피할 수는 있다. 그래서 난 이제 유튜브에 있는 가상의 지인분들과 (일방적인 친밀감으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단 한 가지 단점은 현타가 좀 자주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피하고, 현타 오고, 도피하고, 현타오고의 반복을 약 2년 정도 거치고 나자 '나는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해외에 나와서 자신만의 커뮤니티를 다시 잘 구축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나라에서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취미생활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긴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만큼 쉽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난 그랬다) 결국 바깥에서 채우는 것들의 한계를 느끼게 된 나는, 내 안의 나와 얘기를 시작했다.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니 상당히 망가진 내가 있었다. 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남에게는 늘 따뜻한 말을 자판기처럼 쏟아내면서 나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차가웠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나를 잘 다독이며 데리고 살아야 한다. 옛날 동화에 나오는 교훈처럼 재킷을 벗게 하는 건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다. 근데 나는 그동안 바깥에 있는 남에게는 봄날의 햇살이 되려고 그렇게나 노력했으면서 나 자신에게 얘기를 할 때는 청학동 훈장님 부럽지 않게 (청학동이 아직 있을까?) 엄격했다.
이런 분들 나 말고도 분명 많이 있을 거다. 그런데 이러면 사람이 어느 순간 연료가 떨어진다. 채찍질만 하고 나를 보살펴주거나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마음이 망가져서 어느 순간에는 파업을 하기 마련이다. 핀란드에 오고 난 후, 내 마음은 그렇게 파업을 한 것 같다. 다행히 파업을 선언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는 나를 인정해주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남에게 따뜻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나를 내가 제일 챙겨주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동안 살아온 관성이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내가 대견하다.
글이 너무 장황하고 길었다.
결론은 외국에 살면 더 허전할 수 있으니 나를 내가 누구보다 먼저 잘 챙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거 한입이라도 더 찾아서 먹여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한 번이라도 더 들려주고,
내가 쉬고 싶다고 하면 잘 쉬어주고, 그렇게 나를 내가 누구보다 잘 챙겨줘야 한다.
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알게 모르게 큰 스트레스일 텐데 여기서 나까지 돌보지 않고 다독이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난다. 외국에 사는 것도, 결국은 나 하나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나온 걸 텐데, 나를 잘 다독여주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물론 한국에 사시는 분들도 똑같다. 잘 다독여줘야 한다. 잘 돌아봐줘야 한다. 어쩌면 한국에는 주변에 재미있는 것들, 익숙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더 힘들 수도 있다.)
남에게 다정한 만큼 나에게도 다정해지자.
내 마음을 내가 제일 잘 알아주자.
내가 나의 제일 큰 지원자, 팬이 되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