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을 생각하다 보니 엄청 살고 싶어 진다. 이번에도 부활할 테니 인생 마지막 페이지는 안 본 걸로, 하며 호기롭게 도달한 화두가-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어/떻/게 살/것/인/가.
40년을 살아 놓고도 일곱 글자 존재론적 자문 앞에선 언제나 막막하고 먹먹해진다.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거룩하면서도 때론 거북한 일이므로. 몸져누웠을 때 아니고서야 이다지도 형이상학적 사고를 할 틈도, 이유도 없으므로. 그러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답 찾겠나’ 싶어 재차 브레인 시냅스를 자극해 본다.
‘논리냐, 갬성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좌, 우뇌의 치열한 밀당 사이, 그 중간 어디쯤에 철학적 명답이 있지 않겠나 싶다가 이내 두뇌회전을 멈춘다. 그렇다. 철학적 접근은 너무 무겁다. 내 인생 지론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접근법이랄까. 아, 내 모토가 뭐냐고?
무거운 건 지루하다.
지루하면 재미없다.
재미없으면 의미도 없다.
-이다. 고로 재미있는 인생이 되려면 가볍게, 경박하지 않을 정도로, 딱 고정도로만 가볍게 살아야 한다. 자, 이렇게 기름기 쫙 뺀 삶을 논할 때면 으레 등장하는 아이템이 있었으니! 바로바로 버/킷/리/스/트!!
“뭐, 다들 버킷 리스트 한 장쯤은 품고 다니지 않나? 사직서랑 같이 고이 접어서.”
- 라며 잔뜩 허세 부리려다 입꾹 모드가 된다. 그 흔한 버킷 리스트, 한 번도 써본 적 없으니까. 24시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죽음을 논할 여력이 있었겠나...라고 대꾸하려다 이번엔 머쓱타드 모드다. 우주 대스타도 안 할 가소로운 변명 따위 개나 줘버리자는 심산으로 생애 첫 버킷 리스트 작성에 돌입한다.
깔끔하게 한 10개 어때? 이거 넘어가면 ‘a.k.a 방학 앞두고 생활계획표 짜기’ 겠거니. 계획만 휘황찬란하고 실천 가능성은 제로 되는 거. 100살은 너무 길다. 80까지 산다 치고, 4년마다 하나씩 해치우면 10개쯤 무난히 달성하지 않을까.
머릿속에 버킷 리스트 메모장을 만든다. 호기롭게 1번 항목을 채워나가... 기는 커녕,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1순위가 없는데, 2순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3순위는 두 말하면 잔소리.
와, 이렇게 또 한 번 놀란다. 내가 그 무섭다는, 세상만사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 인간이었다니! 이 말인 즉, 일평생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단 말이거나, 머릿속이 순백이란 말이거나- 모 아니면 도 둘 중 하나란 말이렷다.
죽은 듯 몸져누워있을지언정 곧 죽어도 존심이란 게 있지, 차마 후자형 인간이라곤 못하겠다. 내가? 이렇게나 생각이 차고 넘치는데 백치라고?? 설마, 그럴 리가 - 하며 거푸 콧방귀를 뿜어댄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던 인간이란 뜻인데- ‘퍽이나. 니가 무슨 재벌집 막내딸도 아니고.’,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신다면 이렇게 일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