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 번째 죽던 날>에 담길 에세이 20편을 참 알뜰살뜰히도 써왔다. 그중 12편은 공개, 8편은 대기상태다. 어제 발행됐다 눈 깜짝할 새 저장목록으로 소환된 #13은 "이 무슨 갑분 줬다 뺏는 시추에이션?"이라며 재발행 농성 중이다.
그리하여 어떻게 살건지 그리도 가슴 웅장하게 써놓고는 왜 발행을 못해! 이 글이 내 글이다 왜 발행을 못하냐고!!
- 뭐, 이런 식의 농성.
붉은 띠를 둘러도 소용없다. 각목을 든대도 겁 안 나고.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을 앞뒀던 내 심연의 독백이 어쩐지 부끄러워졌으니까. 앞선 글들은 명함도 못 내밀만큼 앞으로의 글들은 더더욱 점입가경이니까.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걸 알고는 있었다만, 이렇게나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고나 할까.
글 하나 쓸 때마다 거듭 세포분열하는 자아가 경이로울 따름이다. 이 기이한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글을 보고 있자니... 이 또한 뜯지 않은 판도라의 택배박스구나 싶다.
이 상자, 우리 열지 말기로 해요. 그냥 물품 보관소에 두기로 해요. 내 이미지를 위해서나, 당신 안구를 위해서나 그게 맞을 듯해요.
지킬 이미지가 있었던 거냐 웃으신다면, 몹시 마상.
어떤 모습이든 감내하겠노라 어르신다면, 잠시 상상.
감내할 수 있는 독자님들을 위해 이리 해보자, 불시 협상.
스스로에게 제시한 극적 타협안은 바로 '책'이다.
<그림: 양윤정 작가님>
맺지 못한 9가지 이야기는 언젠가는 책이 되어 돌아오리라.
그때가 되면 다시 만나리라.
만나야만 하는 글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으므로.
그게 은둔당한 글의 운명이므로.
아둔한 작가가 쓴 은둔한 글은 여기까지에요. 슬프지만 잠시 안녕. 우리 책으로 다시 만나요. 꼭, 꼭, 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