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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읽고 쓰는 사람
Oct 22. 2024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
늙어도 예뻐, 아름다운 우리 엄마
엄마와 나는 가성비 좋은 파스타집에서 점심을 때우고 스벅 1층 소파에 앉았다. 산책하고 데이트하기 딱 좋은 날. 카페의 통유리로 스며드는 햇살조차 가을스럽다. 어릴 때처럼 매번 엄마에게 얻어먹기 미안해 점심은 내가 샀다. 그랬더니 당연한 듯 커피값을 계산하는 엄마.
숏사이즈 아메리카노 두 잔을 앞에 놓고 모녀는 창을 향해 나란히 앉았다. 마주 보고 앉는 게 익숙한 장면일 수 있지만 이런 날씨에 창을 등지고 앉는 건 좀 억울하다. 엄마가 여기 앉으라고, 옆 자리 시트를 손으로 두드렸다.
집에서부터 이어진 수다가 식당을 지나 카페에 올 때까지 끊어질 줄 모른다. 같이 얘기를 나누면서도 엄마가 부러운 건 뭐지. 그래, 딸이 있는 게 부러운 것 같다. 다른 딸들처럼 싹싹하고 야무지고 엄마를 잘 챙기진 못하지만, 아직도 늘 받기만 하는 딸이지만서도 그렇다. 수다를 떨면서 가끔은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도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가끔 우리의 대화 주제가 된다. 경기도긴 하지만 아직도 시골스러운 곳. 내가 어릴 땐 더 시골이었고 엄마가 자랄 땐 더더 시골이었다. 시골은 촌스럽다는 그 시절 편견 속에 서울로 시집와선 독한 시집살이에 마음고생도 꽤 했었지만, 깔끔하고 유복하게 자란 엄마는 자존감도 높고 아름답다. 서울에서 캠퍼스가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대학으로 진학해 축제에 놀러 왔던 당시 다른 학교 학생이던 아빠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한눈에 반해 결국 강의실 뒷문으로 꽃다발을 들고 와 데이트 신청을 했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아직도 종종 전해 듣는다. 영화의 소재들은 다 현실에서 가져온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 일화. 당시 사진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참 늘씬하고 예쁜 긴 생머리의 그녀.
50대엔 40대로 보였고 60대엔 50대로 보였다. 지금도 연세에 비해 늘 젊어 보이는 엄마지만 내년 칠순을 앞두니 세월의 흔적을 아예 숨길 수는 없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안경이다. 눈이 좋아 늘 맨눈으로 다니던 엄마는 5년 전부턴 예쁜 목걸이처럼 생긴 돋보기를 목에 걸고 다니더니 2-3년 전부턴 아예 안경을 쓰고 다닌다. 아직도 일을 다니시고 운전을 하고 서류를 들여다 보기에, 초점을 자주 바꾸며 글씨를 선명히 읽고 신호를 잘 보기 위해서다. 안경을 쓰고 나서 예쁜 얼굴이 가려졌고, 그 몇 년 사이 주름이 짙어졌다. 하지만 안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정신 차리고 보니 엄마가 좀 늙어 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휴대폰을 집어든다. 카메라를 켜더니, 셀카모드로 화면을 요리조리 돌리다가 나에게 내민다.
"네가 해봐."
일반 카메라지만 햇살이 좋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어 각도를 조절했다. 카메라 위치를 상기시켜 주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한번 봐봐."
사진첩에 들어가 방금 찍은 사진을 함께 봤다. 엄마 표정이 영 아니다. "나이 드니까 사진도 별로다~" 엄마는 남이 조금 멀리서 제대로 찍어주는 사진이 훨씬 예쁘다. 셀카를 찍으면 늘 각도가 엉망이라. 그런데 지금은 내가 찍었는데? 엄마가 뒤로 살짝 빠져있어서 이게 최선이긴 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한 마디 했다. "나이 들면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잖어~ 다 그래~ 이뻐~~" 웃으며 털털한 딸의 역할을 해냈다. 나도 예전 같지 않다고, 당연한 거라고. 말을 뱉고 나니 엄마가 혹시 서운해하진 않을까 급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하하, 그러네 그래. 외할머니도 예전에 사진 찍기 싫다 얘, 하셨어. 호호호~" 엄마의 호호 웃음에 나도 같이 팟 하고 터졌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웃는 우리. 좋은 기억, 사랑했던 사람은 아름답게 기억되니까 말이다.
청년, 중년기의 얼굴은 오래 가는데 노년의 얼굴은 왜이리 빨리 변할까. 12년 전 내가 결혼했을 때 쯤의 사진첩을 가끔 열어 보는데, 볼때마다 놀라곤 한다. 남편과 나의 얼굴은 지금과 비슷한데, 우리 엄마 아빠와 시부모님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젊으셨다니. 언제 이리 늙으신거지?
노화, 늙음.. 이런 것들에만 촛점을 맞춰 생각하면 영 서글퍼진다. 오지 않은 앞날을 걱정하고 예전과 다른 푸석함을 슬퍼하는 일은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고개를 젓고 힘차게 엄마 팔짱을 끼며 카페를 나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마는 종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도 함께 기쁘다.
지금 이 순간이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젊고 빛나는 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이들어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엄마처럼, 나 역시 늘 웃으며 가장 예쁜 오늘을 지내보려 한다. 셀카는 앱으로 찍으면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