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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배 안 하는 여자의 스트레스 해소법

나의 이상야릇한 버릇들

조급하다. 가끔 그렇다. 아니 자주 그렇다. 뭔가 자꾸 이뤄놓고, 마무리해 놓고 쉬어야 할 같은 순간들이 있다. 매사에 그런 것은 아니다. 아마 늘 그랬다면 지금 난 여기에 없을지도 모른다. 서울대는 껌이었겠지?

아이가 어릴 땐 대충 안고 토닥이다 같이 잠들어도 되는데, 그러면 버릇된다고 꼭 잠들면 바로 눕히려 애썼다. 안긴 채로 자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거 습관 된다고 아이가 영원히 아기일 것도 아닌데 말이다. 뭘 위해 그랬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강박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등센서 예민한 아이를 겨우 잠든 그 아이를 홀로 재우려 내려놓다 깨우고 내려놓다 깨우고를 반복했고, 신나게 고생하다 보니 아이는 커 있었다. 그때의 고민은 부질없이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집안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반짝반짝 윤이 나고 소파의 쿠션까지 각을 잡고 딱 정돈된 상태가 된다. 부엌도 마찬가지. 물기가 다 마르고 그릇들도 제자리에 반듯하게 놓여있다. 그럼 그 상태를 깨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시 사용하려고 치우고 정리한 건데, 그 상태를 어그러뜨리질 못 한다. 그렇게 편치 못하게 쉬다 보면 아이들이 돌아오고, 5분이 뭐야 3분만 지나면 다시 아침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아이들이 있어서 내가 사람답게 사는 건지도.

밤에 주방 셔터가 내려가면 이후에 다시 여는 게 싫다. 저녁 먹고 설거지하고 싹 닦아 놓은 싱크대에 남편이 사과껍질이라도 돌돌 깎아 내버려 둔 걸 아침에 발견할 때, 새벽에 라면을 먹었는지 국물이 묻은 채 물을 흘려보내지 않아 벌겋게 기름이 그대로 굳어 있는 걸 발견할 때, 기분이 참 별로다. 그것보다 약소한 경우도 그렇다. 주방이란 뭘 해 먹으려고 존재하는 곳인데, 내가 자꾸 치우려고 존재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 같다. 집이든 거실이든 싹 치워놓고 더 이상 어지르려 하지 않는 내 모습들이 참 이상하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금방 성과가 나길 바란다. 성질 급한 한국인들 중 대다수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성공한 사람들은 안 그랬을 것 같다. 무언갈 오랫동안 '꾸준히' 하다가 결국에 입소문이 나고, 그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 '꾸준히'라는 기간이 참 버겁다. 몇 주만 해도 와 오래 한 것 같은데 아직이네, 뭐가 문제지 싶고, 이대로 해도 좋을까 고민되고 싫증도 난다. 하지만 막상 한걸음 멀리 떨어져 지켜보면 얼마 안 됐다. 고작 몇 주. 아직 멀었는데 빠른 성과를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이다. 최근엔 그걸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루틴을 지켜보려 애쓰고 있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종종 번아웃 비슷한 게 온다. 그러면 사실 잠시 쉬는 게 제대로 된 진단법이라 들었다. 하지만 성질 급한 나는, 자꾸만 버둥댄다. 아예 확 제대로 쉬어 줘야 회복이 빠를 텐데, 자꾸 찔끔찔끔하던 일을 계속 건드린다. 결과적으로 멘붕과 번아웃이 길어진다. 지금 딱 이 상태다. 쉴 틈 없이, 시간표를 잘못 짰다. 루틴대로 돌다 보니 홀로 편히 쉬는 시간이 부족했고, 시기적으로 아직 성과가 나올 때가 아니니 보상도 없었다. 술 담배도 하지 않으니 발산할 구멍이 없었다. 예전엔 어떻게 살아왔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니 수다로 풀었다. 공통 관심사와 고민을 가진 친구와의 대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의 상황과 고민을 공유하고,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꽉 막힌 속이 좀 뚫리고 개운해지는, 때론 깊은 고민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수다인데. 요즘 나에겐 수다 상대가 없었다. 있긴 있어도 공통 관심사가 조금씩 달랐다. 온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고민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할 찐 수다메이트가 절실하다. 온라인 말고 찐으로 만나고 통화하고, 서로의 얘기를 이해할 상대가 필요하다. 그런데 없다. 없다고 죽으란 법은 없다. 결국 나도 예전엔 이해하지 못하던, 내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찐 외향형이던 옛 성향으론 온전한 이해가 어렵던 부분이다. 하지만 내향이 많이 섞인 지금은 너무나 이해가 가는 것. 카페에 혼자 갔는데 노트북이 없으니 공책에 빼곡히 손으로 글을 썼다. 타자가 아닌 손글씨로 글 쓰는 처자가 특이한지 길 가던 아저씨도 멈춰 서서 미소 띤 얼굴로 구경하다 가셨다.(내가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다)  내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빼곡하게 글을 쓰고 나니 얼얼한 손과는 반대로 기분이 풀려왔다. 누군가에게 내 속얘기를 다다다다 털어놓은 느낌, 무슨 느낌인가 했더니 수다 한판 하고 난 기분이었다. 한 가지 조금 아쉬운 건, 길 가던 아저씨가 아닌 '오빠'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글 쓰는 날 누가 보고 있어서 0.1초간 설렜는데, 그렇게 아줌마의 마음을 떨리게 한 분이 나이 지극하신 아저씨였다니. 그분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혼자 이러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나도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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