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을 가르치며 매년 수능 국어를 들여다본다.
그러나 최근의 비문학 지문을 읽고 있으면, '읽기'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이 지문들이 잘 쓰인 글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문장은 정교하고 어휘는 정확하지만, 사고를 이끄는 친절함이나 생각을 머무르게 하는 여백이 없다.
학생들이 이 글을 통해 얻는 것은 이해나 통찰이 아니라, 종종 피로와 체념이다.
수능 독서 지문은 일반적인 글과 다르다.
구조는 정밀하지만 지나치게 조밀하고,
문장은 매끄럽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숨이 찬다.
낯선 개념과 정보가 한 문단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것들을 정리하기도 전에 다음 문제의 판단을 요구받는다.
이런 독서는 사색이 아니라, 속도를 요구하는 ‘경주’에 가깝다.
물론, 평가에 변별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생겼다.
왜 읽기를 잘한다는 것은, 이런 글을 견뎌내는 능력으로 환원된 걸까?
읽기란 본래 삶을 이해하고 타인의 생각에 귀 기울이는 행위다.
그러나 지금의 수능은 읽기를 통해 사고를 확장시키기보다는,
정보의 압력을 견디는 힘을 시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중반 내가 수험생이던 시절에는
지문이 지금보다 훨씬 교양적이고 일상적인 주제를 담고 있었다.
경제, 언어, 환경 같은 소재를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넓어졌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의 국어 시험은 공부를 위한 도구일 뿐 아니라,
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학생들의 독해력이 향상되고, 사교육은 정답을 찾는 기술을 제공했다.
출제자는 그 기술을 무력화하기 위해
지문을 점점 더 어렵고 낯설게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보자.
2007학년도 수능에는 다음과 같은 지문이 실렸다.
“산업을 분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생산물의 특성, 생산 방식, 그리고 생산된 제품의 용도에 따라 산업을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분류는 산업 활동을 이해하고 비교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산업 분류 체계는 정책 수립, 통계 작성, 국제 비교 등에 활용되며, 그 목적과 필요에 따라 분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분류 체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
문장은 짧고, 구조는 단순하다.
개념은 낯설지 않고, 문맥만 따라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읽는 행위가 개념을 정리하고 사고를 따라가는 일이 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2024학년도 수능에서는 이렇게 출제되었다.
“결측치는 관측값이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값이 수집되지 못한 경우를 의미하며, 이상치는 관측값이 존재하나 다른 값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차이가 나는 값이다.”
“결측치를 처리하는 방법에는 평균 대체법, 회귀 대체법, 핫덱 기법 등이 있으며, 각 방법은 데이터의 특성과 >분석 목적에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이상치의 경우에는 사전 정의된 임계값에 기반한 제거 방식, 또는 군집 >분석 기법에 기반한 판별 방식 등이 활용될 수 있다.”
한 문단 안에 낯선 개념이 여럿 등장하고,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압축과 병렬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은 문장을 따라가는 대신, 정보를 분해하고 추출해야 한다.
‘읽는다’기보다 ‘버틴다’는 감각이 먼저 드는 이유다.
읽기란 본래 삶을 이해하고 타인의 생각에 귀 기울이는 행위다.
그러나 지금의 수능은 읽기를 통해 사고를 확장시키기보다는,
정보의 압력을 견디는 힘을 시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와중에 문법 영역은 점차 자리를 잃어갔다.
문법은 어렵고 학생들이 기피한다는 이유로 비중이 줄었고,
선택 과목으로 밀려나며 평가의 중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문법은 언어의 뼈대이며, 읽기와 쓰기의 기반이다.
정답이 비교적 명확하고, 사교육 의존도가 낮은 이 영역이
‘변별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소외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독서 한 영역에만 과도한 부담이 집중되는 구조가 고착되었다.
국어라는 과목은 읽기, 문법, 문학, 작문이 조화롭게 작동할 때
비로소 언어 능력을 균형 있게 길러낼 수 있다.
학생들이 어떤 글을 만나도 의미를 읽어내고,
언어의 구조를 바탕으로 사고를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고, 공정하면서도 따뜻한 평가.
우리가 수능을 통해 지향해야 할 방향은 그런 쪽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읽기를 좋아한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의 맥락을 짚어보는 그 모든 과정은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힘이다.
그런데 지금 교육의 현실은
읽기의 의미가 가장 절실해진 순간에,
그 의미를 가장 외면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설계하고 있다.
기초적인 문해력 부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 시점에서조차,
수능은 여전히 정보의 압력을 견디는 기술을 요구한다.
이런 시험은 학생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읽기를 피하게 만드는 방식에 더 가깝다.
읽기란 결국,
누군가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조심스럽게 마주 앉는 일이다.
교육은 이제, 읽기의 본질을 다시 지켜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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