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쟤만 도와줘요?

-공정을 말하지만, 배려를 지우는 아이들

by 미냉

몇 해 전, 학교에서 한 학생에게 예외적으로 교문 바로 앞까지 차량 등교를 허용한 일이 있었다. 개인 차량을 이용한 등교가 많아지면서, 교문 앞 하차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 특정 학생만이 그 규칙에서 제외된 것이었다. 정확한 사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건강상의 이유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용히 내려 들어가는 그 모습이 문제였던 건 아니다. 문제는 그 조용한 예외가 너무 쉽게 불편한 시선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애도 무거운 악기 들고 다녀요.”
“쟤는 되고 우리는 안 되는 거예요?”

며칠 안 가 항의가 들어왔고, 학교는 예외 조항을 철회했다. 그 학생도 다시 지정된 위치

에서 걸어와야 했다. 규칙은 회복되었고, 모두가 똑같아졌다. 누군가에게 돌아갔던 작은 배려는 사라졌다.
공정은 실현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학생에게는 어떤 감정이 남았을까.
어쩌면 그는 ‘도움을 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학교는 또 한 번, 누구도 다치지 않기 위해,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효행상 시상식 때도 있었다.
조손가정에서 자라며 또래보다 훨씬 책임감 있게 행동하던 학생에게 학교에서 효행상을 수여했다. 발표 직후, 어떤 학생이 조용히 말했다.

“나도 그런 상황이면 상 받았겠네요.”

그 말은 짧았지만, 묵직했다.
그는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보다, 그 상을 받지 못한 자신을 먼저 떠올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산 것’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이니까 상을 받은 것’처럼 해석해 버린 것이다.

아이들은 ‘차이를 보완하는 배려’조차 특혜로 간주한다.
누군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도움을 나는 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한다.
문제는, 그것이 이제 정당한 감정인 것처럼 표현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로렌스 콜버그의 도덕 발달 이론은 이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그는 인간의 도덕 판단이 여섯 단계에 걸쳐 발달한다고 보았는데, 오늘날 교실에서 자주 관찰되는 모습은 2단계(보상 중심)와 4단계(절차 중심)의 판단 방식이다.

2단계: 도덕은 손익 계산이다.
→ “쟤는 상 받았고, 나는 못 받았으니 불공평하다.”

4단계: 규칙은 절대적이다.
→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으면 정의가 아니다.”


그러나 더 높은 윤리 판단, 즉 5단계(사회계약 중심)나 6단계(보편 윤리 원칙 중심)의 시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
5단계에서는 법과 규칙조차 공공의 이익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본다.
6단계는 보편적 정의, 인권, 양심 같은 원칙에 따라 판단한다.
하지만 지금 교실에서는 ‘왜 도와줘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쟤만 도와줘요?’라는 질문만이 살아 있다.

모두에게 같은 도움을 줄 것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이 정의가 되어버렸다.

비슷한 일은 대학 입시에서도 반복된다.
소위 명문대에서 농어촌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조롱감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 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불리함을 딛고 공부했는지는 지워지고,
오직 나보다 적게 노력한 것 같은데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지점만 분노의 근거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맥락 없는 경쟁 감정만을 공정이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규칙 안에서 살아가지만,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그 규칙의 예외가 되어야 할 수 있다.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 놓일 수도 있다.

그때 누군가의 배려가 있었기에 조금 덜 외로웠다는 기억이 남는다면, 그것은 단지 ‘특혜’가 아니라, 공동체가 작동한 흔적일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런 상상을 가르쳐야 한다.


“너도 언젠가 배려받아야 할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감각.


그것이 윤리의 시작이다.

규칙은 분명 중요하다. 공정도 지켜야 할 가치다.
하지만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자르는 순간, 그 가치는 방향을 잃는다.
‘같은 기준’이 ‘같은 조건’이라는 착각 아래, 차이는 불편한 것이 되고, 예외는 부당한 것이 된다.
결국 남는 것은 모두가 똑같이 불편한 상태다.
우리는 지금 그런 교실을 만들고 있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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