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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Aug 10. 2023

후회가 남긴 아픔

카라가 넓은 세일러복에 발목까지 오는 레이스 양말을 단정히 신고 그 위에 반짝이는 하얀 구두를 신은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 속에 별이 수만 개 들어와 박혔다.

기막힌 화음은 작은 솜털까지 쭈뼛쭈뼛 서게 할 만큼 소름 끼치게 아름다웠고 한 명 한 명 모두가 뽀얗고 곱상한 외모에 부티가 좔좔 흐르는 모습이었다.


며칠 전부터 어린이프로를 틀어놓고 밑으로 지나가는 자막을 따라 움직이는 내 눈동자는 무엇인가에 홀려있는 듯했다.'KBS어린이 합창단을 모집합니다. '라는 글귀옆에 0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무작정 외우기 시작했다. 엄마를 조를 자신도 없으면서 여러 번 되뇌며 접수날짜와 전화번호를 머릿속에 구겨 넣었다.

마감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입이 몇 번씩이나 들썩거렸으나 결국 나는 말하지 못했다. 엄마는 직장엘 다니느라  바빴고 틈을 비집고 들어갈 기회를 매번 놓쳤기 때문이었다. 말을 한다 해도 이런 대답이 돌아올게 뻔했다.

'엄만 너를 여의도까지 데리고 갈 수가 없어.'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포기했지만 아쉬움과 갈망, 후회가 한 덩어리가 되어 가슴을 막아버렸다.


"이번에 독창대회가 있는데 한 반에 한 명만 나갈 수가 있다. 나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봐"

심장이 요동치고 내 모든 기관들이 손을 들기를 바라며 예민해져 있는데도 나는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손을 번쩍  경아가 반대표로 나가는 걸 바라보아야만 했다.

'에이...... 나보다 노래 못하네. 난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렇지?'

마음속의 또 다른 나와 바보 같은 대화를 하며 스스로를 달래야만 했다.


독창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옆반 수연이는 교외대회까지 나가서 수상을 거머쥐고 음악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수연이, 수연이' 키가 크고 목소리가 멋졌던 음악선생님은 늘 수연이만 찾았고 눈에 드러나게 아꼈다. 합창대회에서도 솔로 파트는 수연이 몫이었고 그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단 하나의 별과 같았다. 반짝반짝 예쁘게도 빛을 냈다.


텔레비전 앞에 바짝 다가앉아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하모니를 이루며 노래하는 어린이합창단을 보면서, 교단에 서서 수상한 곡을 멋들어지게 부르는 수연이의 모습을 고개를 빼고 바라보면서 나는 후회했다. 어린이합창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얘기나 꺼내볼걸, 교내 독창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손을 번쩍 들었어야 는데......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후회가 얼마나 가슴이 빠개질 만큼의 아픔을 주는 것인지, 얼마나 긴 시간을 괴롭히는 것인지.




사진출처: 서울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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