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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Aug 16. 2023

비에 젖은 핫도그를 먹어본 적 있나요?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아들의 손을 잡고 500m 정도 거리의 학교를 향해 걷고 있는데 운동화 속으로 빗물이 스멀스멀 들어왔다.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걸음을 재촉할수록 더 많은 양의 빗물이 발을 적셔버려 오직 집에 가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져버려야겠다는  외엔 그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 앞에서 양말까지 죄다 벗어던지고 나니 그제야 찝찝하고 축축한 것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게 뭐라고 그리도 신경이 곤두섰던 건지, 해결이 되고 나니 슬슬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뭐 먹을 거 없나?'

냉동실을 열어보니 봉지클립에 단단히 봉해진 너겟, 냉동만두, 냉동 핫도그가 누워 뒹굴고 있었다.

핫도그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2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창가에 사선으로 부딪히는 빗물을 바라보는데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비 오는 날 오후가 생각났다.


그날은 무료한 여름방학중의 한 날이었다. 점심을 먹은 지 두 시간쯤 지나니 슬슬 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노릇노릇하게 튀겨내어 설탕을 하얗게 묻히고 그 위에 새콤한 케첩을 꼬불꼬불 뿌린 핫도그가 먹고 싶었다. 밖엔 비가 오고 있었고 핫도그를 사 먹기 위해선 적어도 20분을 걸어야 했는데도 기어이 먹고 싶었다.


살이 몇 개 부러진 우산을 들고 침을 꼴깍거리며 급한 걸음을 걸었다. 운동화 속으로 빗물이 연신 들이쳤 빗줄기는 굵어졌다. 돌아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바삭하고 고소한 핫도그의 맛이 발길을 분식집으로 잡아끌었다. 문이 닫혔을까 봐 염려되어 발걸음은 더 빨라졌서두르다 보니 고여있는 빗물에 '' 발을 딛고 말았다. 이런, 이젠 발이 젖을까 조심할 필요가 없어졌다.  저 멀리 보이는 주황색 포장마차 분식집은 마치 사막에서 만난 신기루와 같았다.


문을 열린걸 보니 숨이 가빠왔고 핫도그를 사들고 나오는데 콧노래까지 흘러나왔다. 한 손에는 우산을,  한 손에는 핫도그막대를 들고 입으로 뜯어가며 걷고 있는데 이번엔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쳤다.  우산은 벌써 뒤집어져 빗물을 막는 역할을 하지 못한 지 오래였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우산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핫도그 먹는 걸 그칠 수도 없었다. 빗물에 젖어가는 핫도그를 먹고 있는 모습이 처량했던지 아니면 한심해 보였는지 저만치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혀 차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머. 얘! 너는 이렇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데 그게 입에 들어가니?"


집에 돌아와 질퍽해진 신발과 양말을 벗어보니 발가락이 물에 불어 쪼글쪼끌 나이테가 선명했다. 몸은 으슬으슬 춥고 발은 푹 젖어 미간이 붙어버릴 정도로 찡그려지서도 빗속에서 기어코 핫도그 하나를 다 먹어치웠던, 막대에 붙어있는 밀가루까지 다 뜯어먹었던 기억. 그날 바삭함을 잃어버린 물컹하고 축축한 핫도그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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