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아들의손을 잡고 500m 정도 거리의 학교를 향해 걷고 있는데 운동화 속으로 빗물이 스멀스멀들어왔다.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걸음을 재촉할수록 더 많은 양의 빗물이 발을 적셔버려오직 집에 가서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져버려야겠다는 것 외엔 그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집안으로들어서자마자 문 앞에서 양말까지 죄다 벗어던지고 나니 그제야찝찝하고축축한 것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게 뭐라고 그리도 신경이 곤두섰던 건지,해결이 되고 나니 슬슬 허기가지기시작했다.
'뭐 먹을 거 없나?'
냉동실을열어보니 봉지클립에 단단히 봉해진 너겟, 냉동만두, 냉동 핫도그가 누워뒹굴고 있었다.
핫도그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2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창가에 사선으로 부딪히는 빗물을 바라보는데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비 오는 날 오후가 생각났다.
그날은 무료한 여름방학중의 한 날이었다.점심을 먹은 지 두 시간쯤 지나니 슬슬 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노릇노릇하게 튀겨내어 설탕을 하얗게 묻히고 그 위에 새콤한 케첩을꼬불꼬불 뿌린 핫도그가 먹고 싶었다.밖엔비가 오고 있었고 핫도그를 사 먹기 위해선 적어도 20분을 걸어야 했는데도기어이 먹고 싶었다.
살이 몇 개 부러진 우산을 들고 침을 꼴깍거리며 급한걸음을 걸었다. 운동화 속으로 빗물이 연신 들이쳤고빗줄기는더 굵어졌다. 돌아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바삭하고 고소한 핫도그의 맛이 발길을분식집으로 잡아끌었다.문이닫혔을까 봐염려되어 발걸음은 더 빨라졌고 서두르다 보니고여있는 빗물에 '첨벙'발을 딛고 말았다. 이런,이젠 신발이 젖을까조심할 필요가 없어졌다.저 멀리 보이는 주황색 포장마차 분식집은 마치사막에서 만난 신기루와 같았다.
문을 열린걸 보니 숨이 가빠왔고 핫도그를 사들고 나오는데 콧노래까지 흘러나왔다.한 손에는 우산을, 한 손에는 핫도그막대를 들고 입으로 뜯어가며 걷고 있는데 이번엔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쳤다. 우산은 벌써 뒤집어져 빗물을 막는역할을 하지못한 지 오래였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우산을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핫도그먹는 걸 그칠 수도 없었다.빗물에 젖어가는 핫도그를 먹고 있는내 모습이처량했던지 아니면 한심해 보였는지 저만치 지나가는 아주머니의혀 차는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머. 얘! 너는 이렇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데 그게 입에 들어가니?"
집에 돌아와질퍽해진 신발과 양말을 벗어보니발가락이 물에 불어 쪼글쪼끌 나이테가 선명했다. 몸은 으슬으슬 춥고 발은 푹젖어 미간이붙어버릴 정도로 찡그려지면서도 빗속에서 기어코 핫도그 하나를 다 먹어치웠던, 막대에 붙어있는 밀가루까지 다 뜯어먹었던기억.그날 바삭함을 잃어버린 물컹하고 축축한 핫도그는그야말로 꿀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