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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륜 Sep 26. 2023

두 번째 퇴사, 이번엔 해고였다

회사 폐업으로 인한 비자발적 실업자 신세가 된 이야기

5년간 기자로 일했던 내용을 반추하고자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던 계획이 오래가지 못했다.

 이유는 호기롭게 언론사를 그만두고 몸담게  회사가 휘청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실업자가 되었다.

2023년 9월 26일, 2주 전 실업급여 수급자격 신청한 후 처음으로 실업급여 집체교육을 받고 왔다.

처음에 복잡해 보였던 실업급여 신청 및 구직활동 인정절차도 교육을 듣고 막상 경험해 보니 잘 이해가 됐다. 사회보험법령을 공부할 때 고용보험 납입기간에 따른 구직급여 소정급여일수를 열심히 외웠다가 사실 다 까먹고 있었는데, 내가 구직급여를 받게 되었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실업급여 집체교육으로써 1회 차 실업인정 절차를 끝이 났다. 빠르면 다음날 8일 치의 구직급여가 들어온다고 한다. 추석연휴가 껴있어 늦으면 10월 첫째 주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했다.


기억이 떠올랐다. 5년 전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로 기사 말머리에 넣을 고령 실업자(정확히는 65세 이상으로 고용보험 납입자격이 없고 반복 수급자인 분)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었다. 실업자들의 속내를 여쭤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내가 그 실업자들의 입장이 될 줄은. 알량한 선민의식이었을까. 인생의 경험 한 페이지가 늘어가는 거겠지 싶어서 조금은 덤덤했다.

(기자들은 누군가를 취재하면서 다른 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너무 감정적으로 흐르면 안 되기 때문에 적당히 선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고, 어떨 때에는 남의 불행이 기삿거리가 되었다며 신나게 반응하는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난 그게 참 싫었다.)



사실은 몇 달간 덤덤하지 않았다.

막막함, 억울함, 그리고 끝 모를 분노. 감정이 오히려 나를 파멸하는 것일까 싶었다.


아무리 개인의 삶과 회사의 일원으로서의 삶이 다르다고 해도 회사의 위기는 곧 나의 커리어의 위기이기도 했다. 잘 극복하면 커리어에 위기대응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무기가 하나 생기는 거고, 그대로 고꾸라지면 시간 낭비에 커리어를 망치는 시나리오가 대기 중이었다. 전자를 이루고 싶었으나 역시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언젠가 회사 일에 치여 힘들어 방문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정의가 승리했으면 싶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지요."



첫 번째 퇴사가 사직이었다면 두 번째 퇴사는 사실상 해고였다.

경영상 이유로 인한 해고이자 통상해고. 경영상 해고라면 회사의 존속을 전제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만 이건 회사가 아예 폐업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통상 해고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그렇지만 형식은 권고사직이었다. 근로기준법 26조에 따른 해고예고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서. 회사 사정 뻔히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어차피 몸부린 친다고 막을 수 있는 해고가 아니었다.


2019년 가을, 사업을 시작한 친구가 사세를 확장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나의 영입을 제안했다.

처음엔 농담처럼 받았들였다. 하지만 나도 기자로 일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의식과 한계를 경험하고 있었고 기자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해보는 데 호기심이 생겼다.


나의 합류 덕분에 회사의 탄탄대로가 열렸다.

2019년 당시 연매출 대비, 2020년에는 200% 2021년에는 490%가 성장했다.


그러한 배경에는 인지도 상승이 자리했다.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소비재 기업의 이름을 알리고 브랜딩을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사실 스스로 자기 업적을 뻥튀기하는 게 쑥스럽고 민망해 당시엔 티를 안 냈지만 이렇게 다 그만둔 마당에 돌이켜보면 정말 내가 없었다면 거기까지 가지도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은 스타트업 기업이란 이유로 나는 제대로 된 성과급 등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동료이자 고용관계에 있는 친구에게 나의 처우에 대해 냉정한 요구를 하기가 어려웠기도 했고, 스타트업의 특성상 정말 제대로 큰 건이 없는 상황에서 profit sharing을 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잘 알고 있었다. 겨우 나중에서야 스톡옵션을 조금 받긴 했는데 회사가 망해버렸으니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지대한 성과를 냈음에도 나의 시장 가치는 2019년 가을 이직 당시에 머물러 있고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책상 앞에 앉아 나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지난 몇 달간 책을 펴고 공부를 했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밀어닥치는 분노의 감정을 사그러뜨리기가 어려웠다.


정말 죽도록 노력했느냐 묻는다면 모르겠다고 답하겠지만 최소한 매사 최선을 다한 것은 사실이었다. 단 한 차례도 놀거나 요행을 바라거나 남에게 일을 떠넘기며 내 의무를 다하지 않는 행동을 해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그랬다. 그런데 결과가 회사가 망해 해고를 당하는 시나리오였다면 뭘 위해 그렇게 열심히 주말까지 바쳐가며 일을 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막막하고 억울하다.


내가 기자를 그만두고 회사 경영에 재미를 붙여가며 성과를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 후배는 "저도 선배처럼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고작 이직한 것뿐인데(이직이자 전직이긴 하지만) 인생 이모작이란 퇴직자들에게 붙일만한 거창한 표현이 재밌고도 웃겼다. 그렇게 이모작 농사가 제대로 망해버렸으니 30대 중반의 나이에 삼모작을 준비해야 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과연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운명처럼 다가온 亡의 기운에 그대로 굴복해 버릴 것인가 아니면 회사가 망해도 내 인생은 망한 게 아니라며 보란 듯이 다시 정상 궤도를 회복할 것인가.

2023년이 뭔가 막중한 임무를 진 해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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