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가 들어선 후 갑자기 MBC 응원하게 된 사연
내가 언론사에 지원하던 2014년엔 MBC가 기자를 뽑지 않았던 시기였다.
MBC는 MB정부를 거치면서 이상하게 망가져버린 느낌이었다. 이미 MBC하면 떠올랐던 대표 언론인 손석희는 JTBC로 간 시기였고, 그래서 오히려 중앙일보-JTBC에 가고 싶어 하는 언론사 지망생이 유독 많았던 것 같기도 했다. MBC를 지망한다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고 나 또한 MBC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
권력 비판은커녕 연성 뉴스만 보내며 권력의 시녀가 된 듯했던, 배현진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던 그때의 MBC. 그런 MBC가 요즘 연일 언론계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이든-날리면 사태 이후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더니, 오늘은 대통령 순방 시 전용기에 탑승하지 못한다는 조치를 받았다. 대통령 전용기 한번 못 타보고 기자를 그만둔 게 한(?)처럼 남은 나에게 참 충격적인 뉴스였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대한민국 국정수행의 선봉인 대통령실에서 한 결정이라니. 유치하기 짝이 없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MBC 기자 출신이고, 대통령실 부대변인으로 나와 같은 부서, 같은 팀에서 1년 간 일을 같이한 선배도 계신다. 누구보다 언론에 대한 이해가 높고 언론이 왜 그렇게 보도했는지 뻔히 아는, 즉 생태계에 몸을 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조치를 내리자 했을 때 침묵하였나? 아니면 더 신나서 앞장서 그러자고 했나? 언론계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어떠한 반응이 나올지도 예상을 못할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고, 내부의 다른 목소리에 밀려 MBC 배제 조치를 막을 힘이 없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럼에도 기어코 전용기에 MBC 기자를 태우지 않을 작정인가 보다. 대통령실 입장에서 MBC의 보도가 뼈아프고 기분이 언짢았더라도 편집되지 않은 영상을 가짜 뉴스로 치부하며 국익의 훼손을 운운하는 건 너무 과민한 반응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오버하고 있는거다.
오히려 MBC 입장에선 호재가 된 듯하다. 최고 권력에 핍박을 받는 언론사, 대통령이 가짜 뉴스라고 부르는 언론사가 되면서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이 자명하다. 나부터도 MBC가 무슨 말을 할지 주목하게 됐다. 나와 같은 시청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특히 종편 때문에 치열해진 방송 언론의 생태계에서 MBC의 존재감은 강화될 것이다. 2014년 내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때의 MBC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내가 MBC 기자였다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MBC를 응원할 날이 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정윤회 문건을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를 향해 찌라시라며 고소를 했고, 세계일보가 후폭풍을 겪어야 했던 일을 기억한다. 문건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은 경찰 공무원 한 분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유서를 쓴 채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 문건을 복사했다는 또 다른 경찰 공무원을 취재하란 지시를 받고 영문도 모른 채 그의 집 앞에서 며칠 밤을 지새웠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탓에 기자가 된 지 갓 한 달이 됐던 나는 뭘 취재해야 하는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왜 무리하게 그 경찰의 가족까지 괴롭혀가며 취재를 했어야 했나 아직도 죄송한 마음이 남아있다.
박근혜의 청와대는 2년이 지나 세계일보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고, 그로부터 몇 달 후엔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졌다. 그때 찌라시로 치부된 정윤회 문건 파동은 탄핵의 전주곡이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때의 기억이 겹친다. 언론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최고 권력의 이면에 뭔가 있는 게 아닌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MBC를 때리며 다른 국면을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건 아닌지. 며칠 전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국정 감사에서 홍보수석의 쪽지가 큰 물의를 일으켰던 것과 연관 지어 봐야 하는 것 인지.
그 쪽지 속 말을 해주고 싶어지는 밤이다.
"웃기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