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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식공룡 Jun 10. 2022

나는 구속됐다(1)

평범한 회사원이 겪은 감옥 생활을 기록하다

(*실화는 아님. 지인들의 사례를 토대로 각색함)



<2020년 겨울>

 “피고인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뭐가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현실 맞나? 내가 앞으로 열 달 동안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고?’



 법정 방청석에 앉아있던 변호사(고교 동창)가 나를 바라보며 긴 탄식을 뱉는다. 법정 구석에 서 있던 교도관들은 혹여 내가 도망칠까봐 어느새 등 뒤로 다가와 서 있다. 


· 나 : “잠깐만 변호사한테 한마디만 할게요.”

· 교도관 : “짧게. 짧게 하세요.”

· 나 : “가족들한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 줘.”

· 변호사 : “그래 알았다. 일이 이렇게 됐네.”



 과음 후 필름이 끊긴 것처럼 이후 몇 분간의 기억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고, 몸뚱이는 밧줄에 묶인 채로 법무부 로고가 새겨진 파란색 버스에 실려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신호 위반 한 번 안 해본 내가 감옥에 가는 신세라니….’



 법무부 버스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출발한 지 20분 남짓, 창문 너머 구치소 입구 위로 ‘희망의 시작, 서울구치소입니다’라는 간판이 보인다.



 ‘희망의 시작?, 사람 약 올리냐?….’



 구치소 정문 옆엔 전직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지지자 한 두명이 보인다. 그 옆엔 웬 노부부가 서 있는데, 자세히 보니 우리 부모님이다. 구속된 아들의 모습을 보러 서둘러 구치소까지 오신 거다. 버스 창문에 얼굴을 밀착하며 “엄마! 엄마!” 외쳐봤지만 부모님은 나를 못 보셨나 아무 반응이 없다. 



 걸쭉한 목소리의 교도관이 짜증을 섞어 말한다.


 · 교도관 : “거기 아저씨, 밖에선 차 내부 안 보이니까 가만히 좀 있어요.”



 그렇게 버스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호송 버스는 이내 2층 높이의 거대한 철문 앞으로 들어섰다. 철문의 긴장은 분노와 슬픔 등을 가볍게 제압했다.



 ‘여기서부터 진짜 감옥이구나.’

 


버스에 탄 교도관이 철문 앞의 교도관과 대화하며 인원 체크를 한다.


· 교도관 : “총 20명, 법구 3명, 석방 1명 있어요.”


 인상 나쁜 노인 한 명이 철문 앞에서 내렸다. 순간 버스 안의 사람들이 웅성댔다. 사기를 쳤는데 집행유예 받고 풀려난 사람이라고 한다. 사기꾼은 풀어주는데 난 구속됐다. 자유를 찾은 늙은 사기꾼이 '남는 장사 했다'는 듯 씩 하고 웃는다. 이내 철문이 닫혔다. 누런 수용복을 입은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린 뒤 2열 종대로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스무 살쯤 먹은 앳된 양아치, 50대로 보이는 안경 쓴 아저씨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3명만 구치소 안 대기실로 이동했다. 이렇게 3명이 ‘법구’인가 보다. ‘법정 구속’의 줄임말.



 청록색 수용복 차림에 ‘영치’라고 적힌 주황색 조끼를 입은 대머리 아저씨가 휴대폰과 시계, 지갑까지 내가 갖고 있던 모든 물건을 걷어갔다. 다람쥐처럼 빠른 ‘영치 아저씨’의 손동작에 경탄이 나오면서도, 작년 생일에 아내가 사준 ‘오메가 씨마스터’ 시계가 저 범죄자의 손을 통해 분실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대머리 아저씨는 내 지갑에 있던 현금 11만 원을 빼내어 기록한 뒤 서류봉투에 소지품을 옮겨 담았다.



 이윽고 교도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입고 있던 양복도, 셔츠도, 팬티도, 구두도 벗었다. 대형 비닐백에 내 옷가지가 밀봉됐다. 이내 늘어진 하늘색 런닝, 고무줄이 질긴 투박한 파란색 사각팬티에 범죄 영화에서 본 익숙한 황토색 수용복이 지급됐다. 그리고 흰색 고무신도 받았다.



 재판 후 몸에서 '싸제'를 탈거하고 완전한 ‘감옥 룩’이 되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적응의 시간 따위는 고려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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